야고보서 4장

2020년 4월23일

야고보서 4장



*말씀읽기

[약 4]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말씀묵상

세상적인 욕심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기에 싸우게 됩니다. 이 싸움은 자기 유익, 만족을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구하여도 받지 못한다고 야고보는 단호하게 말합니다(3절). 많은 신자들이 세상적인 조건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착각합니다.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내가 기준이 되고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라면 은혜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며 하나님과 원수된 것임을 지적합니다.

욥이 경험한 고난은 이러한 세상적인 조건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제일의 조건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미물과 같은 나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모든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실제의 삶 속에서는 그러지 못하고 있기에 야고보는 계속 믿음의 내용을 깊이 새기도록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의 내용, 예배의 목적, 헌신의 이유 등을 깊이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뜻이 목적이며 이유입니까? 5절을 보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시기하시까지 사모하신다고 합니다. 우리는 성령이 거하시는 전인데(고전6:19), 성령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뜻을 목적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목적을 위해 살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목적은 그러니까 성령을 좇아 살라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6절에서 더욱 큰 은혜라고 합니다.

세상에서의 출세나 영광이 은혜가 아니라 교만을 물리치시고 겸손하게 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시는 결과입니다. 우리의 사모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성령께서 계속 고백하며 간구하시는 바입니까? 야고보는 7절에서부터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며 그를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손을 깨끗이 하고 두 마음이 아닌 성결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라고 합니다. 주 앞에서 낮추는 자를 높여 주신다고 합니다. 이것이 더욱 큰 은혜입니다. 이런 모습이 정말 은혜임을 고백하십니까? 아니면 고통과 두려움으로 느껴집니까? 신자는 이 싸움을 평생하며 사는 자입니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도록 하셔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도록 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가진 신자들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부연 설명합니다. 비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결코 이웃을 판단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너는 아무 존재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네 자신에 대해 책임질 수도 없는 존재임을 말합니다. 미래의 계획을 세우며 잘 살아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를 지적합니다.

이러한 말씀에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비관주의, 허무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헛됨, 인간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오직 창조주이시며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이야기입니다. 허탄한 것을 자랑한다는 말은 허풍선이를 말합니다. 안개와 같은 인생인데 섭리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또 착각합니다.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 영원한 나라의 상속권을 얻었기에 하나님과 동급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잊은 모습입니다. 구원받은 신자도 여전히 안개와 같은 자입니다. 긍휼과 은혜로 사는 자일뿐입니다. 야고보가 편지 처음에 소개한 대로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강조하는 나그네들입니다. 대충 살라는 것이 아니라 그 분께 붙잡혀 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의 뜻대로 사는 존재들(15절)임을 기억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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