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3일
에베소서 2장
*말씀읽기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말씀묵상
2장에서는 신자들의 현 위치가 어떻게 주어진 것인지를 과거의 상태를 비교하며 설명합니다. 먼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 모습이 2-3절입니다. 세상을 좇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우리에게 사랑으로 나타나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의 은혜가 베풀어진 것입니다.
11절에서는 이러한 상태에 있었던 자들임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12절에서는 좀 더 적나라하게 지적합니다.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던 자였다고 합니다. 지금 에베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이니까 당연히 이방인으로서 이해되는 말입니다. 우리 또한 이 말에 대해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정말 내가 그러했다고 생각합니까? 약속을 가진 자와는 다른 사람이었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이 살고 있었다는 말입니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을 알기 전 어떤 상태였고 모습이었는지를 깨닫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그래야 구원을 받고 약속을 소유한 자로서 하나님과 가까워졌고 화평하게 된 자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통분모를 가지고 서로가 가까워지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내용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것은 사랑과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입니다. 그것은 죄로 말미암은 인간의 상태가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회복될 수 없고 이 회복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회복이 어떻게 일어났는가인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되었다고 합니다.
피로 되었다는 말은 여러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세상적인 수단이 아닌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방법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결과가 서로 가까워지고 화평하게 된 것입니다. 서로의 어떤 능력이나 조건에 의한 것이 아니기에 가까워진 것에 대해 누구도 그 호불호를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구를 향해 돌을 던질 수도 없습니다. 15절에 한 새사람을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이며 새로운 관계, 존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19절에서는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누가 제외되고 특별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다 똑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나의 어떤 것으로도, 저 사람의 무엇으로도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영향을 준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의 모습과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하나입니다. 한가지이며 한통속이며 한 목적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래서 화평하게 된 자들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결과,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의 새로운 존재라는 근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십자가의 보혈이 만들어낸 놀라운 결과입니다. 결국 이러한 자들에 의해 성전이 되어가고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성도 하나 하나가 성전을 이루는 요소들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성전인 이유는 서로 함께 지어지는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는 성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지는 존재, 이미 된 것도 아닌 함께 지어지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각자의 위치를 확인하고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며 사명과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완전하게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진 자들로서 오늘도 그 가치를 감당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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