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7장

2020년 8월 4일

에스겔 17장



[말씀읽기]

1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2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비유를 들어 말하여라.

3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큰 독수리 한 마리가 레바논으로 갔다. 큰 날개, 긴 깃, 알록달록한 깃털을 가진 그 독수리는 백향목 끝에 돋은 순을 땄다.

4 독수리는 그 연한 햇순을 잘라서, 상인들의 땅으로 물고 가서, 상인들의 성읍에 놓아 두었다.

5 그리고 그 땅에서 난 씨앗을 가져다가 옥토에 심었다. 시냇가에다가 버드나무를 심듯, 물이 많은 시냇가에 그 씨앗을 심었다.

6 그 씨앗은 싹이 나고, 낮게 퍼지며 자라서, 무성한 포도나무가 되었다. 그 가지들은 독수리에게로 뻗어 올라갔고, 그 뿌리는 땅에 박고 있었다. 그 씨가 포도나무가 되어, 가지를 내뻗고, 덩굴손을 뻗쳤다.

7 다른 큰 독수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날개가 크고 깃이 많은 독수리다. 그런데 보아라, 이 포도나무가 뿌리를 그 독수리에게로 뻗고, 가지도 그 독수리에게로 뻗는 것이 아닌가! 이 포도나무는 새로 나타난 그 독수리를 보고 옥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물을 대달라고 하였다.

8 그 포도나무를 옥토 곧 물이 많은 곳에 심은 것은,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가 되도록 한 것인데, 이 모양이 되고 말았다.'

9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전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그 포도나무가 무성해질 수 있겠느냐? 그 뿌리가 뽑히지 않겠느냐? 그 열매가 떨어지거나, 그 새싹이 말라 죽지 않겠느냐? 그 뿌리를 뽑아 버리는 데는, 큰 힘이나 많은 군대를 동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10 그러므로 그것을 심어 놓았지만 무성해질 수가 있겠느냐? 동쪽 열풍이 불어 오면 곧 마르지 않겠느냐? 자라던 그 밭에서 말라 버리지 않겠느냐?'"

11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12 "너는 저 반역하는 족속에게, 이 비유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하겠느냐고 물어 보고, 그들에게 일러주어라. 바빌로니아 왕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왕과 지도자들을 붙잡아 바빌로니아로 끌어 갔고,

13 이 나라의 왕족 가운데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그와 언약을 맺고, 그에게 맹세를 시킨 다음에, 이 나라의 유능한 사람들을 붙잡아 갔다.

14 이것은 바빌로니아가 이 나라를 굴복시켜 독립하지 못하게 하고, 그 언약을 지켜야만 명맥을 유지해 나가도록 하려 한 것이다.

15 그런데도 그는 바빌로니아 왕에게 반역하여, 이집트로 사람을 보내서, 자기에게 많은 군마와 군인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가 성공할 수 있겠느냐? 그런 일을 한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느냐? 언약을 어긴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느냐?

16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그는 분명히 죽을 것이다. 바빌로니아 왕이 그를 왕으로 세워 주었는데, 그 왕에게 한 맹세를 무시하고, 그와 맺은 언약을 깨뜨렸으니, 왕의 땅인 바빌로니아에서 그와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다.

17 바빌로니아 군대가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 그의 성읍 옆에 흙 언덕을 쌓고 높은 사다리를 세울 때에는, 이집트의 바로가 강력한 군사력과 많은 군사로도 전쟁에서 그를 도울 수가 없을 것이다.

18 그가 맹세를 무시하고 언약을 깨뜨렸다. 그가 언약을 어기고 이런 모든 일을 하였기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그는 나의 이름을 두고 한 맹세를 업신여겼으며, 나의 이름을 걸고 맺은 언약을 깨뜨렸으므로, 내가 벌을 주어서, 그 죄를 그의 머리로 돌리겠다.

20 내가 그물을 쳐서 그를 망으로 옭아 바빌로니아로 끌고 가서, 거기에서 내가 나를 반역한 그의 반역을 심판하겠다.

21 그의 모든 군대 가운데서 도망한 사람들은 모두 칼에 쓰러질 것이며, 살아 남은 사람들은 모두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이렇게 말한 것이 나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22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백향목 끝에 돋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겠다. 내가 그 나무의 맨 꼭대기에 돋은 어린 가지들 가운데서 연한 가지를 하나 꺾어다가, 내가 직접 높이 우뚝 솟은 산 위에 심겠다.

23 이스라엘의 높은 산 위에 내가 그 가지를 심어 놓으면, 거기에서 가지가 뻗어 나오고, 열매를 맺으며,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온갖 새들이 그 나무에 깃들이고, 온갖 날짐승들이 그 가지 끝에서 보금자리를 만들 것이다.

24 그 때에야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주가, 높은 나무는 낮추고 낮은 나무는 높이고 푸른 나무는 시들게 하고 마른 나무는 무성하게 하는 줄을, 알게 될 것이다. 나 주가 말하였으니, 내가 그대로 이루겠다."


[말씀묵상]

17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수수께끼 같은 비유로 말씀시고(1-10절), 후반부(11-21절)는 그 비유를 해석해 주십니다. 이스라엘은 포로로 잡혀가는 상황에서도, 잡혀간 상황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였습니다. 세상을 의지하고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에 대해 수수께끼와 비유로 상태를 드러내고 계십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비유는 두 마리의 독수리와 백향목, 그리고 포도나무입니다. 화려하고 큰 독수리가 백향목 높은 가지를 꺾은 것은 바벨론이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잡아간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의 종자를 꺾어 심은 것은 여호야긴을 폐하고 시드기야를 왕으로 삼아 유다를 다스리게 한 사건입니다. 그가 유다를 다스리도록 하고 독수리를 향하고 뿌리는 독수리의 아래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다른 큰 독수리 하나를 향하여 뿌리를 뻗고 가지가 퍼져간 것입니다. 즉 바벨론을 배반하고 애굽을 향하여 동맹을 맺었던 것입니다. 바벨론은 8절의 목적을 유다로 하여금 맺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 의도도 이루어내지 못하고 결국 예루살렘은 멸망하고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는 사로잡혀 감으로 유다 왕국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유다가 바벨론에게 잡혀가게 된 것은 스스로 서지 못하게 하고 언약을 지켜야 설 수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14절).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했던 그들의 모습을 바벨론으로 하여금 스스로 아무 것도 아니며 바벨론의 통치 하에서 존재해야 함을 보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깨닫지는 않고 오히려 애굽으로 도움을 요청하며 바벨론을 배반하였으니 결코 살 수 없게 되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19절).

어떤 면에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유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의지하며 보이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 본능임을 보여 줍니다.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더 있을 뿐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개의치 않고 살아 갑니다. 계속해서 말씀하시며 깨닫도록 하시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상황을 유지하려는 고집합니다. 나의 계획과 목적을 유지하기 위해 힘쓰지 하나님께로 시선과 의지가 바뀌지 않습니다. 시드기야는 결국 눈이 뽑히고 놋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아들들은 그의 보는 앞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말씀을 안들은 결과라는 말이 아니라 이렇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고 자신의 고집과 목표를 포기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도 분명한 하나님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된다 안 된다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디로 이끄시는 것인지를 깨달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을 떠나지 않으시고 인도하시며 주도하시는데 때로는 멸망하여 포로가 되는 상황을 허락하십니다. 북한과 같은 상황을 허락하시고, 그리스도인만 죽는 일도 허락하십니다. 포로 상황에서 주권도 신앙도 온데간데없어지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뜻으로 믿고 순응할 수 있을까요? 걱정할 내용이 아닙니다. 모든 것의 주도자는 하나님이시며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선포되고 있었습니다. 들을 귀는 듣는 것입니다. 나를 향하여 계획하시고 뜻하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이루시기로 하십니다.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시는 것입니다(22절). 연한 가지로 설명되는데 이것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메시야적 표현으로 이사야는 연한 순(53:2), 싹(11:1), 한 가지 등으로 표현합니다. 이것이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이 백향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모든 열국이 여호와야말로 통치하시는 분, 불가능이 없으신 분,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입니다(24절). 그만이 그의 하신 말씀대로 이루시는 분, 신실하신 분,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사명이며 정체성이며 본질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존재하게 하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 그래서 그의 말씀이 살아 있음을 드러내는 것, 그는 통치자이시며 만물의 주관자이심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23절의 모습은 겨자씨 비유에서도 확인됩니다. 천국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는 삶입니다. 내가 만들거나 세상의 가치에 의해 만들어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되는 모습입니다. 오늘도 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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