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42장
- 주언약교회
- 2024년 6월 7일
- 3분 분량
[말씀읽기]
1 그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북쪽 뜰로 가서 두 방에 이르니 그 두 방의 하나는 골방 앞 뜰을 향하였고 다른 하나는 북쪽 건물을 향하였는데
2 그 방들의 자리의 길이는 백 척이요 너비는 쉰 척이며 그 문은 북쪽을 향하였고
3 그 방 삼층에 회랑들이 있는데 한 방의 회랑은 스무 척 되는 안뜰과 마주 대하였고 다른 한 방의 회랑은 바깥뜰 박석 깔린 곳과 마주 대하였으며
4 그 두 방 사이에 통한 길이 있어 너비는 열 척이요 길이는 백 척이며 그 문들은 북쪽을 향하였으며
5 그 위층의 방은 가장 좁으니 이는 회랑들로 말미암아 아래층과 가운데 층보다 위층이 더 줄어짐이라
6 그 방은 삼층인데도 뜰의 기둥 같은 기둥이 없으므로 그 위층이 아래층과 가운데 층보다 더욱 좁아짐이더라
7 그 한 방의 바깥 담 곧 뜰의 담과 마주 대한 담의 길이는 쉰 척이니
8 바깥뜰로 향한 방의 길이는 쉰 척이며 성전 앞을 향한 방은 백 척이며
9 이 방들 아래에 동쪽에서 들어가는 통행구가 있으니 곧 바깥뜰에서 들어가는 통행구더라
10 남쪽 골방 뜰 맞은쪽과 남쪽 건물 맞은쪽에도 방 둘이 있는데
11 그 두 방 사이에 길이 있고 그 방들의 모양은 북쪽 방 같고 그 길이와 너비도 같으며 그 출입구와 문도 그와 같으며
12 이 남쪽 방에 출입하는 문이 있는데 담 동쪽 길 어귀에 있더라
13 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쪽과 남쪽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에서 먹을 것이며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니 이는 거룩한 곳이라
14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므로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 바로 바깥뜰로 가지 못하고 수종드는 그 의복을 그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백성의 뜰로 나갈 것이니라 하더라
15 그가 안에 있는 성전 측량하기를 마친 후에 나를 데리고 동쪽을 향한 문의 길로 나가서 사방 담을 측량하는데
16 그가 측량하는 장대 곧 그 장대로 동쪽을 측량하니 오백 척이요
17 그 장대로 북쪽을 측량하니 오백 척이요
18 그 장대로 남쪽을 측량하니 오백 척이요
19 서쪽으로 돌이켜 그 장대로 측량하니 오백 척이라
20 그가 이같이 그 사방을 측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길이가 오백 척이며 너비가 오백 척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말씀묵상]
42장으로 성전을 측량하던 것이 마무리됩니다. 제사장이 사용하는 방들을 측량하는데 위치, 크기, 모양, 용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내용은 13절에서 말하듯이 이 방들이 거룩한 방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연한 내용이지만 거룩한 이유를 세 가지 들고 있습니다. 첫째는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소제, 속죄제, 속건제의 제물)을 먹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지성물을 두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제사장의 의복을 보관하고 갈아입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하여 제사장은 자신이 얼마나 구별된 거룩한 자이며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가 거룩한 자임을 잊지 않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러한 제사장의 자세는 지금의 성도인 신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줍니까? 당연히 거룩한 존재로서 자신을 늘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에서 부름을 받은 자로서 거룩함이 드러나고 있는지 말입니다. 이 거룩함은 어떤 모습이나 삶을 통해 만들어내는 거룩이 아니라, 그렇게 부름받은 존재라는 사실로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된 자들로서 주님이 주인되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로서 힘씀과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신약의 성도들이 왕같은 제사장(벧전2:9)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왕이며 제사장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두 개념이 상반된 것입니다. 왕은 다스리는 자이지만 제사장은 희생하며 섬기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왕같은 존재가 되었지만 십자가의 능력으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의 거룩함, 구별됨이 여기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군림하는 존재가 아닌 밀알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15절 이후에서는 성전을 둘러 싸고 있는 담을 측량합니다. 사방 같은 길이(500척, 약250미터)로 정사각형 모양의 담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담의 역할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이라고 합니다(20절). 이 그림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에베소서의 이해로 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져 가는 자들입니다.
지금 거룩함을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지만 그렇게 거룩해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으로 인해 크게 실망하고 있을 포로 생활에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다시 세우실 성전을 소망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삶이 결코 실패나 절망의 상황이 아닌 약속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분명하게 의지하도록 주신 시간임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들에게도 하나님의 약속은 현실을 이기게 하는 근거가 됩니다. 미래의 불확실한 상황에서 더욱 말씀을 붙잡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막연히 견디고 참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계획하시고 뜻하신 대로,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 가신다는 믿음이 바로 구별된 자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를 이끌고 있음을 잊지 마시고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자들로서 살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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