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9장

2020년 7월 22일

에스겔 9장



[말씀읽기]

1 또 그가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이르시되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이 각기 죽이는 무기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2 내가 보니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부터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죽이는 무기를 잡았고 그 중의 한 사람은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3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 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5 그들에 대하여 내 귀에 이르시되 너희는 그를 따라 성읍 중에 다니며 불쌍히 여기지 말며 긍휼을 베풀지 말고 쳐서


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7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8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었는지라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아하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9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여호와께서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들의 행위대로 그들의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


11 보라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이 복명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 하더라


[말씀묵상]

하나님의 질투를 부르는 유다의 범죄로 인하여 분노의 심판이 9장에서 집행됩니다.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을 불러서 심판을 행하도록 하십니다. 6명이 나오는데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는 천사들로 이해합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그릇을 찼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읍에서 가증한 일로 인해 탄식하며 우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그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읍의 모든 자들에게 심판을 행할 때 이들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고 살려 두라고 하십니다.

다른 선지서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은 거의 모두 심판의 대상이 될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디 하나 회개하고 구원을 얻는 경우가 없습니다. 복과 저주가 선포되지만 복을 얻는 것이 아닌 다 저주를 받게 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지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세상으로부터 얻는 것을 하나님보다 더 좋아합니다. 범죄한 죄인들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자신들의 행하는 것으로는 심판을 면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이 말은 죄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밖에 방법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긍휼이 베풀어지기 위해서는 죄인들이 철저하게 버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존재임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버려짐의 모습을 불쌍히 여기지도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고 큰 소리로 부르짖더라도 듣지 아니하겠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8:18). 그리고 그 결과는 70년간 포로로 잡혀가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바로 이렇게 자신이 얼마나 죄악 중에 사는 자인가를 고백함으로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70년의 포로 생활은 범죄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지만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하신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드러낸 하나님의 역사가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구원의 증거이지만 죄인이 받아야 할 처참한 심판의 자리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본래 죄인이 있어야 할 자리이며 모습임을 극적으로 확인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나를 향한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서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고 하십니다. 이 표를 받은 자들은 모든 자들이 죽임을 당할 때 해를 당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되는 대상을 말하는데 그 이유가 가증한 일에 대해 탄식하며 우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죄악에 대해 마음 아파했다는 말입니다. 마치 소돔성에 있던 롯이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했던 것과 같습니다(벧후2:7).

그런데 죽음의 사람이 성읍을 치는데 에스겔이 보기에 하나도 남을 것 같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하는 청원(8절)을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그대로 진행됩니다. 어느 누구도 죄악에 마음 아파한 자들이 없었던 것입니다. 렘5:1을 보면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고 하십니다.

먹그릇을 찬 사람이 이마에 표를 한 사람이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완전히 망해야 할 존재들임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이스라엘만의 모습일까요? 혹시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가요? 세상을 보며, 교회를 보며, 성도를 보며, 나를 보며 탄식하며 울고 있는지요? 아니면 세상의 즐거움으로 인해 기뻐하며 감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신자들은 당연히 이마에 구원의 표가 있는 자들입니다.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 표는 내가 어떠한 은혜를 받은 자인지를 고백하는 증거이지 안위를 주고 자랑하는 근거는 아닙니다.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며 십자가를 붙들고 긍휼을 구하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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