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9장

2020년 2월22일

역대하 19장



*말씀읽기

[대하 19] 1 유다 왕 여호사밧이 평안히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그의 궁으로 들어가니라

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3 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애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하였더라

4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에 살더니 다시 나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까지 민간에 두루 다니며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고

5 또 유다 온 나라의 견고한 성읍에 재판관을 세우되 성읍마다 있게 하고

6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하여 할 것인지 여호와를 위하여 할 것인지를 잘 살피라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심이니라


7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 하니라

8 여호사밧이 또 예루살렘에서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족장들 중에서 사람을 세워 여호와께 속한 일과 예루살렘 주민의 모든 송사를 재판하게 하고

9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진실과 성심을 다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라

10 어떤 성읍에 사는 너희 형제가 혹 피를 흘림이나 혹 율법이나 계명이나 율례나 규례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와서 송사하거든 어떤 송사든지 그들에게 경고하여 여호와께 죄를 범하지 않게 하여 너희와 너희 형제에게 진노하심이 임하지 말게 하라 너희가 이렇게 행하면 죄가 없으리라

11 여호와께 속한 모든 일에는 대제사장 아마랴가 너희를 다스리고 왕에게 속한 모든 일은 유다 지파의 어른 이스마엘의 아들 스바댜가 다스리고 레위 사람들은 너희 앞에 관리가 되리라 너희는 힘써 행하라 여호와께서 선한 자와 함께 하실지로다 하니라


*말씀묵상

본문은 여호사밧이 아합과 연합하여 길르앗 라못을 빼앗기 위해 아람과 전쟁을 한 후 돌아와 왕궁에 거할 때 선견자 예후가 나아가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왜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받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인간의 한계성을 보여 줍니다. 그렇게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한 왕이지만 여전히 세상의 기준과 만족에 자신을 맡기는 일개 죄인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평안과 풍요가 주어졌지만 그 영광을 자랑하기에 급급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적 기준이 자리를 잡게 되면 그 대상이 악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거절하지 못하며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3절을 보면 왕이 선한 일을 행한 것에 대해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이 말도 이해를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과응보의 법칙으로 반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그의 뜻과 약속으로 이끌어 가심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앞으로 나오는 모든 왕들의 역사 속에서도 똑같습니다. 이들은 세상을 좇는 악행으로 인하여 멸망하게 되고 포로로 잡혀가서 70년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성전을 다시 짓고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일하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실 약속의 성취를 향하고 있습니다.

간혹 왕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모습을 보일 때 하나님께서 약속된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것은 그들이 잘했기에 베푸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약속하신 것을 맛보도록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것만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마음을 알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하게 되면 벌을 주십니다. 인과응보처럼, 권선징악의 원리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모습은 이제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삶의 모습에 의해 복과 저주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율법적인 결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제거되었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성령의 생명의 법이 신자들을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삶의 내용에 의해 인과응보적인 저주가 아니라 이러한 것들을 완전하게 타파해 버린 은혜의 십자가가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사는 삶이 아닌 내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모습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원하심과 인도하심을 고백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신자로서의 내 삶을 자세히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아무리 봐도 별 볼 일이 없습니다. 여전히 죄 가운데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했다손 치더라도 민망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럼 망합니까? 아무 것도 없는데? 십자가의 은혜가 이끌 뿐입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그게 모든 것입니다. 구원이며 새생명을 소유한 것이며 천국을 사는 것입니다.

4절 이후를 보면 여호사밧이 또 다른 개혁을 합니다. 잘한 것이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이끕니다. 이것은 겁을 먹어서, 벌을 내릴까봐, 경고를 받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다스리는 나라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런 자로 살아가는 것이 신자의 삶입니다. 은혜와 기쁨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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