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읽기]
1 <이스라엘과 모압의 전쟁> 유다의 여호사밧 왕 제 십팔년에 아합의 아들 a) 요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두 해 동안 다스렸다. (a. 1:17절의 주를 볼 것)
2 그는 주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지만, 그의 부모처럼 악하지는 않았다. 그는,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우상들을 철거하였다.
3 그러나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린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저지른 것과 같은 죄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그로부터 완전히 돌아서지도 못하였다.
4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사람이었는데, 이스라엘 왕에게 암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조공으로 바쳤다.
5 그러다가 아합이 죽은 뒤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하였다.
6 그 때에 요람 왕은 그 날로 사마리아로부터 행군하여 나와서, 이스라엘 군대 전체를 점검한 다음에,
7 전쟁터로 가면서, 유다의 여호사밧 왕에게 사절을 보내어 물었다. "모압 왕이 나를 배반하였습니다. 나와 함께 모압을 치러 올라가시겠습니까 ?" 여호사밧이 대답하였다. "물론 함께 올라가겠습니다. 우리는 서로 한 몸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아닙니까 ? 나의 군대는 곧 임금님의 군대이고, 나의 군마는 곧 임금님의 군마가 아닙니까 ?"
8 이에 요람이 "그러면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 하고 물으니 여호사밧은 에돔의 광야 길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였다.
9 그래서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과 에돔 왕이 함께 출정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길을 돌아 행군하는 이레 동안에, 군대와 함께 간 가축들이 마실 물이 바닥났다.
10 이스라엘 왕이 탄식하였다. "아, 큰일났구나 ! 주께서 우리 세 왕을 모압의 손에 넘겨 주시려고 불러내신 것이 아닌가 !"
11 그러나 여호사밧은 "여기에는 주의 예언자가 없습니까 ? 이 일을 주께 물을 예언자가 없습니까 ?" 하고 물었다. 그 때에 이스라엘 왕의 신하 가운데 하나가 대답하였다. "사밧의 아들 엘리사라는 사람이 여기에 있습니다."
12 그러자 여호사밧이 말하였다. "그에게서 주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과 여호사밧과 에돔 왕이 그에게로 내려갔다.
13 그러나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에게 말하였다. "무슨 일로 나에게 오셨습니까 ? 임금님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예언자들에게나 가 보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말하였다.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주께서 우리들 세 왕을 불러내셔서, 모압의 손에 넘겨 주시려고 하십니다."
14 그제야 엘리사가 말하였다. "내가 섬기는 만군의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가 유다 왕 여호사밧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요람 임금님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임금님을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15 이제 나에게 거문고를 타는 사람을 데려 오십시오." 그리하여 거문고를 타는 사람이 와서 거문고를 타니, 주의 권능이 엘리사에게 내렸고,
16 엘리사는 예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계곡에 도랑을 많이 파라.
17 주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바람이 부는 것도 보지 못하고, 비가 내리는 것도 보지 못하겠지만, 이 계곡은 물로 가득 찰 것이며, 너희와 너희의 가축과 짐승이 마시게 될 것이다.
18 그렇습니다. 이런 일쯤은 주님께서 보시기에는 너무나 가벼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모압을 임금님들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19 그러므로 임금님들께서는 요새화된 모든 성읍과 모든 아름다운 성읍을 치실 것이고, 모든 좋은 나무를 쓰러뜨리며, 물이 솟는 모든 샘을 막을 것이며, 모든 기름진 밭을 돌짝밭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20 그 다음날 아침에, 제물을 드릴 때에, 물이 에돔 쪽을 따라 흘러내려서, 그 땅을 물로 가득 채웠다.
21 다른 한편, 모든 모압 사람들은, 여러 왕들이 자기들과 싸우려고 올라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군복을 입을 만한 사람, 징집 연령이 된 사람은 모두 소집되어서, 위로 올라와, 국경에서 그 왕들과 대치하였다.
22 모압 사람들이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해가 물 위에 비쳐서 반대편 물이 온통 피와 같이 붉게 물든 것을 보았다.
23 그래서 그들은 "아, 이것은 피다 ! 분명 저쪽 왕들이 서로 싸우고 서로 치다가 흘린 피일 것이다. 자, 모압 사람들아, 약탈하러 가자 !" 하고 소리쳤다.
24 그러나 막상 그들이 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군인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모압 군인들을 쳤다. 그래서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니, 이스라엘 군인들은 모압 진 안에까지 쳐들어가서, 모압 군인들을 무찔렀다.
25 그들은 또 성읍들을 파괴하고, 기름진 밭에는 모두 돌을 던져서, 돌로 가득 채웠다. 물이 나는 샘을 모두 메우고, 좋은 나무를 모두 쓰러뜨려서 길하레셋의 돌담만 남겼는데, 그 곳도 무릿매꾼들이 포위하고 공격하였다.
26 그제야 모압 왕은, 전쟁이 자기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칼 잘 쓰는 사람 칠백 명을 뽑아서, 에돔 왕이 있는 쪽으로 돌파하여 나가려고 하였으나, 그 일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27 그래서 모압 왕은, 자기를 대신하여 왕이 될 장자를 죽여, 성벽 위에서 번제로 드렸다. 이것을 본 이스라엘 사람들은 크게 당황하여, 그 곳을 버리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말씀묵상]
아하시야 왕이 죽고 형제인 요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둘 다 아합의 아들들입니다. 그는 부모와는 다르게 아버지가 만든 바알 주상을 없애지만 여로보암의 길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바알 상을 없앴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데로 이어지지 못하고 우상을 섬겼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합니다. 조공 바치던 것을 멈춘 것입니다. 그래서 요람은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함께 모압 정벌에 나설 것을 제안합니다.
이에 여호사밧은 함께 가겠다고 하면서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다고 합니다. 같은 한 민족이며 한 마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한 말은 앞에서 아합에게도 똑같이 했던 말입니다(왕상22:4). 여호사밧이 이렇게 이스라엘과 가깝게 지내는 것은 아합의 딸인 아달랴를 며느리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아달랴는 지금의 이스라엘 왕인 요람, 그리고 앞선 왕 아하시야와 남매지간입니다. 이러한 관계로 인해 여호사밧은 이스라엘의 전쟁에 함께 동참하며 도왔던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동맹은 그렇다 하더라도 신앙적인 면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반대하거나 지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분명 여호사밧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도록 보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관계로 인해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자들의 현실 속에서도 자주 경험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관계로 인해 신자로서의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친인척일 경우 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봅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신자의 삶은 여러 관계를 통하여 사명을 감당하도록 보냄 받은 자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어려움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자들은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감당하는 자들로 있지 이웃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사는 자들이 아님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모압을 정벌하기 위해 이스라엘 왕 요람은 유다왕 여호사밧과 에돔왕과 연합합니다. 그러나 함께 모압을 향해 간 지 7일 만에 물이 다하였고 더 이상 연합군이 힘을 합해 공격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에 요람 왕이 여호와께서 우리를 모압에게 넘기려고 한다는 한탄을 하자, 여호사밧은 혹시 하나님께 물을 만한 선지자가 없느냐고 질문을 했고 엘리사가 그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세 왕은 엘리사에게 내려갔고 처음에 엘리사는 외면하는 듯 하지만 결국 엘리사의 도움으로 기갈을 해결하고 모압을 물리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그렇게 간단한 내용이 아닙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보면 승리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세 왕이 연합하여 모압을 공격하는 것은 당연히 인간의 욕심에 의한 것입니다. 모압이 조공바치기를 거부하고 배반하자 그를 치자고 모인 자들입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고 연합군에 합류합니다. 요람은 문제가 생기자 오히려 적반하장이 됩니다. 10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세 왕을 불러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신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모습에 대해 정당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책임을 넘기고 있습니다. 뭔가 잘 되지 않을 때 인간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보다는 남을 원망하게 됩니다. 요람은 바알 주상을 없앴다고 자신의 생각과 계획이 하나님께서 도우셔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죄인들이 가장 많이 착각하는 내용입니다. 믿음은 자랑도 훈장도 아닙니다. 우상을 없앴다고 승리를 주시고, 봉사했다고 성공하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지만, 신자들의 삶은 오직 은혜로 주어지는 것들입니다. 주님의 구원하심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그럼 왜 엘리사를 통하여 도와 주시는 것입니까? 엘리사는 요람 왕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자임을 말합니다. 당신들이 섬기는 선지자에게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유다왕 여호사밧으로 인하여 듣겠다고 합니다. 요람은 전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이지만 여호사밧을 인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고 합니다. 여호사밧은 유다 왕으로서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왕이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야만 하는 왕이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가 모든 신자들에게도 베풀어졌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승리가 약속되었고 거침없이 모압을 연합군이 물리치게 됩니다. 그런데 궁지에 몰린 모압왕이 자기의 맏아들을 번제로 드리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27절을 보면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여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보고합니다. 패배한 것입니다. 모압왕의 비문이 발견되었는데 자기들의 신 그모스의 승리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이들의 종교심에 놀라 돌아간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들의 신앙심에 눌린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신자들이 종종 경험하는 모습입니다. 이들의 거침과 분위기에 기가 꺾이는 것입니다. 이슬람의 신앙심, 무속 종교나 미신, 세상신, 맘몬주의 등에 꼬리를 내리고 삽니다. 승리하고도 두려움 속에 돌아간 이스라엘의 모습이 현대를 사는 신자들에게도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나를 향한 약속과 성취의 증거입니다. 신자의 삶의 근거입니다. 기쁨과 담대함이 넘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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