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읽기]
1 <나아만이 고침을 받다> 시리아 왕의 군사령관 나아만 장군은, 왕이 아끼는 큰 인물이고,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주께서 그를 시켜 시리아에 구원을 베풀어 주신 일이 있었다. 나아만은 강한 용사였는데, 그만 b) 나병에 걸리고 말았다. (b. 히브리어 차라앗 이나 메초라 는 각종 악성 피부질환을 가리키는 말로서, 반드시 나병만을 뜻하는 말은 아님.)
2 시리아가 군대를 일으켜서 이스라엘 땅에 쳐들어갔을 때에, 그 곳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잡아 온 적이 있었다. 그 소녀는 나아만의 아내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3 그 소녀가 여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 어른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한 예언자를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분이라면 어른의 나병을 고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4 이 말을 들은 나아만은 시리아 왕에게 나아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온 한 소녀가 한 말을 보고하였다.
5 시리아 왕은 기꺼이 허락하였다.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편지를 써 보내겠으니, 가 보도록 하시오." 나아만은 은 열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옷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왕의 편지를 이스라엘 왕에게 전하였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내가 이 편지와 함께 나의 신하 나아만을 귀하에게 보냅니다. 부디 그의 나병을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7 이스라엘 왕은 그 편지를 읽고 낙담하여, 자기의 옷을 찢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말하였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 이렇게 사람을 보내어 나병을 고쳐 달라고 하니 될 말인가 ? 이것은 분명 공연히 트집을 잡아 싸울 기회를 찾으려는 것이니, 자세히들 알아보도록 하시오."
8 이스라엘 왕이 낙담하여 옷을 찢어다는 소식을,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듣고,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어찌하여 옷을 찢으셨습니까 ? 그 사람을 나에게 보내 주십시오.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음을 그에게 알려 주겠습니다."
9 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와서, 엘리사의 집 문 앞에 멈추어 섰다.
10 엘리사는 사환을 시켜서 나아만에게 요단 강으로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장군의 몸이 다시 깨끗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11 나아만은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발길을 돌렸다. "적어도,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정중히 나를 맞이하고, 주 그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상처 위에 직접 안수하여, 나병을 고쳐 주어야 도리가 아닌가 ?
12 다마스쿠스에 있는 아마나 강이나 바르발 강이, 이스라엘에 있는 강물보다 좋지 않다는 말이냐 ? 강에서 씻으려면, 거기에서 씻으면 될 것 아닌가 ? 우리나라의 강물에서는 씻기지 않기라도 한다는 말이냐 ?" 하고 불평하였다. 그렇게 불평을 하고 나서, 나아만은 발길을 돌이켜 분을 참지 못하여 떠나갔다.
13 그러나 부하들이 그에게 가까이 와서 말하였다. "장군님, 그 예언자가 이보다 더한 일을 하라고 하였다면,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 다만 몸이나 씻으라는데, 그러면 깨끗해진다는데, 그것쯤 못할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
14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나님의 사람이 시킨 대로, 요단 강으로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었다. 그러자 그의 살결이 어린 아이의 살결처럼 새 살로 돌아와, 깨끗하게 나았다.
15 나아만과 그의 모든 수행원이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와, 엘리사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야 나는 온 세계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디, 어른의 종인 제가 드리는 이 선물을 받아 주십시오."
16 그러나 엘리사는 "내가 섬기는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나는 그것을 받을 수가 없소." 하고 사양하였다. 나아만이 받아 달라고 다시 권면하였지만, 엘리사는 끝내 거절하였다.
17 나아만이 말하였다. "정 그러시다면, 나귀 두어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어른의 종인 저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어른의 종인 저는, 이제부터 주님 이외에 다른 신들에게는 번제나 희생제물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18 그러나 한 가지만은 어른의 종인 저를 주께서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모시는 왕께서 림몬의 성전에 예배드리려고 그 곳으로 들어갈 때에, 그는 언제나 나의 부축을 받아야 하므로, 나도 허리를 굽히고 림몬의 성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림몬의 성전에서 허리를 굽힐 때에, 주께서 이 일 때문에, 어른의 종인 저를 벌하지 마시고,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19 그러자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말하였다. "좋소, 안심하고 가시오." 이렇게 하여 나아만은 엘리사를 떠나 얼마쯤 길을 갔다.
20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시의 시종인 게하시가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의 주인께서는 이 시리아 사람 나아만이 가져와 손수 바친 것을 받지 않으셨구나.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내가 그를 뒤쫓아가서 무엇이든 좀 얻어 와야 하겠다."
21 그래서 게하시는, 곧 나아만을 뒤쫓아 달려갔다. 나아만은 자기를 뒤쫓아 달려오는 사람을 보고, 그를 맞이하려고 수레에서 내려 "별일 없지요 ?" 하고 물었다.
22 게하시가 대답하였다. "별일은 없습니다만, 지금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면서, 방금 에브라임 산지에서 예언자 수련생 가운데서 두 젊은이가 왔는데,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3 그러자 나아만은 "드리다뿐이겠습니까 ? 두 달란트를 드리겠습니다." 하고는 게하시를 강권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자루에 넣고, 옷 두 벌을 꺼내어서 두 부하에게 주어, 게하시 앞에서 메고 가게 하였다.
24 언덕에 이르자, 게하시는 그들의 손에서 그것을 받아 집 안에 들여 놓고, 그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25 그리고 그가 들어가서 주인 앞에 서자, 엘리사가 그에게 물었다. "게하시야, 어디를 갔다 오는 길이냐 ?" 그러자 그는 "어른의 종인 저는 아무데도 가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6 그러나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너를 만나려고 수레에서 내릴 때에, 내 마음이 너와 함께 거기에 가 있지 않은 줄 알았느냐 ? 지금이 은을 받고 옷을 받고, 올리브 기름과 포도나무와 양과 소와 남녀 종을 취할 때냐 ?
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로 옮아갈 것이고, 네 자손도 영원히 그 병을 앓을 것이다." 게하시가 엘리사에게서 물러나오니, 나병에 걸려 피부가 눈처럼 하얗게 되었다.
[말씀묵상]
아람 장군 나아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왜 갑자기 이방 나라의 한 인물에 초점이 되었을까요? 4장에서 여러 가지 기적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얼마나 하나님과 멀어져 있는 상황인지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은 여전하며, 이들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심을 깨닫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적, 우상숭배의 나라, 게다가 이스라엘을 공격해서 한 가정을 파괴시키며 소녀를 데리고 와 종으로 부리는 군대장관에게 관심을 보이시고 그의 병을 고쳐주심으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들을 보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자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믿음의 삶을 살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나아만의 치료를 통하여 왜 저런 자를 고쳐주시는 것인가 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도 그와 다르지 않은 자들이야 라는 책망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런 자까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베풀어진다면 너희야 얼마나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겠느냐를 고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신자의 지위이며 가치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기준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신자들이 그러한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인과응보의 세계관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베풀어진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도 그와 같은 역사가 일어난 자이기 때문입니다.
나아만이라는 자는 이스라엘로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 하나님의 간섭이 있었다고 저자는 서술합니다.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어떤 전쟁인지를 모르겠지만 그의 업적이 개인적인 능력이나 전략으로 이룬 것이 아닌 하나님의 역사였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목적하심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을 가진 자로 포로로 잡혀온 소녀가 등장합니다. 잡혀 와서 억울함도 없는지, 주인의 병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 앞에 자기 주인이 있었더라면 나병을 고쳤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걸 왜 가르쳐 주는 것입니까? 그냥 죽게 놔두어야지? 그러나 소녀의 생각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선지자 엘리사를 믿었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시각과 반대되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는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나아만이 아람왕의 편지를 가지고 엘리사가 아닌 왕에게 간 것입니다. 7절을 보면 이 편지를 보고 기겁을 하며 내가 하나님이냐, 나보고 나병을 고치라는 것이냐 하며 시비를 걸어 싸우려고 한다는 오해를 합니다. 하나님도, 선지자 엘리사도 의지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나아만과 같이 나병이 걸려 있었던 것입니다. 나아만도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자들일 뿐입니다.
이 사실을 안 엘리사는 나아만을 자기에게로 보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나아만이 어떤 자인지를 보여 줍니다. 그는 존귀한 자이며 한 나라의 군대 장관으로 그 지위와 위엄이 대단했습니다. 그는 평범한 그러나 높은 세상 사람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으로 사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에게 엘리사가 나와 보지도 않고 요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하자 그는 화를 내며 돌아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병이 낫는 것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아무 것도 아닌 자임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자로 낮아져야 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깨달아야 할 모습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수종드는 자들이 독려하여 나음을 얻게 됩니다.
치유를 받은 나아만은 대가로 예물을 주려고 하지만 엘리사는 거절합니다. 이에 나아만은 흙을 가져가서 여호와께만 제사를 드리겠다는 다짐을 보입니다. 나름대로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살겠다고 한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단과 벧엘에 금 송아지를 놓고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사실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나아만은 자신이 우상숭배하는 모습을 발견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것에 반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우상의 역사로 바꾸어 죄악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모습을 게하시가 보여줍니다.
나아만의 예물이 거절되고 그냥 가져가자 종 게하시의 욕심이 발동된 것입니다. 20절을 보면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까지 합니다. 자기 욕심을 정당화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뒤따라가서 마치 엘리사의 심부름인양 제자들에게 줄 것이라고 하며 은 한 달란트와 옷 두벌을 요구합니다. 이로 인해 게하시는 나병이 들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가진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고 세상의 가치로 채우고 있는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모습입니다. 다시 나에게 있는 은혜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은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전 생애와 바꾼 것임을 기억하시고 이 은혜를 찬양하는 삶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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