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5장

2019년 11월 30일

예레미야애가 5장



*말씀읽기

1 여호와여 우리가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받은 치욕을 살펴보옵소서

2 우리의 기업이 외인들에게, 우리의 집들도 이방인들에게 돌아갔나이다

3 우리는 아버지 없는 고아들이오며 우리의 어머니는 과부들 같으니

4 우리가 은을 주고 물을 마시며 값을 주고 나무들을 가져오며

5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우리의 목을 눌렀사오니 우리가 기진하여 쉴 수 없나이다


6 우리가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배불리고자 하였나이다

7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8 종들이 우리를 지배함이여 그들의 손에서 건져낼 자가 없나이다

9 광야에는 칼이 있으므로 죽기를 무릅써야 양식을 얻사오니

10 굶주림의 열기로 말미암아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으니이다


11 대적들이 시온에서 부녀들을, 유다 각 성읍에서 처녀들을 욕보였나이다

12 지도자들은 그들의 손에 매달리고 장로들의 얼굴도 존경을 받지 못하나이다

13 청년들이 맷돌을 지며 아이들이 나무를 지다가 엎드러지오며

14 노인들은 다시 성문에 앉지 못하며 청년들은 다시 노래하지 못하나이다

15 우리의 마음에는 기쁨이 그쳤고 우리의 춤은 변하여 슬픔이 되었사오며


16 우리의 머리에서는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 때문이니이다

17 이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들이 어두우며

18 시온 산이 황폐하여 여우가 그 안에서 노나이다

19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대대에 이르나이다

20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


2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22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참으로 크시니이다


*말씀묵상

5장은 멸망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기도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절부터 간절함이 묻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받은 치욕을 살펴봐달라는 간구를 합니다. 살펴보다는 말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본다는 말입니다. 자신들의 형편을 깊이 살펴달라는 것입니다. 죄인들이 주권자이시며 심판자이신 분께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청원하는 말입니다. 자신의 비천함을 깨닫고(1:11) 치욕을 당함으로 완전히 무능력한 처지에서 하나님을 의지할 때 나오는 고백입니다.

구원을 얻은 신자들이 하나님 앞에 당당한 존재가 된 자들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죄인이 아닌 그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은 맞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죄라는 장벽이 허물어졌고 사탄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지 이제 하나님을 등에 없고 세상에서 어깨에 힘주고 사는 자가 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는 은혜를 입은 자일뿐입니다. 즉 아무 가치가 없음을 깨달은 자이며 그의 인도하심과 붙드심이 없으면 아무 존재도 아닌 자인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선지자의 고백은 죄인으로서 자신들이 하나님 밖에는 아무도 의지할 자가 없음을 고백할 때뿐만 아니라, 그의 은혜를 힘입어 사는 신자들 역시 이 고백을 가지고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늘 절망과 비관주의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습을 보며 여전히 무너지고 없어져야 할 것들로 나를 세워가고 있는 자신에 대해 질책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확인되지 않고 인정되지 않는다면 신자로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지금 멸망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의도가 바로 이러한 자신을 보며 긍휼을 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물론 선지자만 이 사실을 깨닫고 대표적으로 고백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도 고백들을 살펴보면 지금의 노예같은 처지가 이방을 의지하고 그들로 만족하려고 했다는 것(6절), 조상들의 범죄의 결과라는 것(7절), 또한 자신들의 범죄함 때문(16)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각은 놀랍게도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무궁하심, 영원하심을 고백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19절 이후입니다.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반대로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요구를 합니다. 무슨 근거로 이러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되심과 이스라엘의 왕되심, 이들을 다스리심, 그의 백성 만드심. 결국 여기로 오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포로에서의 풀려남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함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자들이 역시 세상 속에서 살 수 있는 근거입니다. 이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죄로부터 살려 내시고 돌이키도록 하셔서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죄, 심판, 용서, 회복, 사랑이 드러났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진정한 삶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언제나 함께 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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