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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1장

  • 작성자 사진: 주언약교회
    주언약교회
  • 2024년 1월 27일
  • 3분 분량


[말씀읽기]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내니라

2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우리를 치니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모든 기적으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 하니

3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대답하되 너희는 시드기야에게 이같이 말하라

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너희가 성 밖에서 바벨론의 왕과 또 너희를 에워싼 갈대아인과 싸우는 데 쓰는 너희 손의 무기를 내가 뒤로 돌릴 것이요 그것들을 이 성 가운데 모아들이리라

5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진노와 분노와 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


6 내가 또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 성에 있는 것을 다 치리니 그들이 큰 전염병에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후에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의 신하들과 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전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과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측은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너는 이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느니라

9 이 성읍에 사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워싼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 것이나 그의 목숨은 전리품 같이 되리라

1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얼굴을 이 성읍으로 향함은 복을 내리기 위함이 아니요 화를 내리기 위함이라 이 성읍이 바벨론 왕의 손에 넘김이 될 것이요 그는 그것을 불사르리라


11 유다 왕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정의롭게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악행 때문에 내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골짜기와 평원 바위의 주민아 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오리요 하거니와 나는 네 대적이라

14 내가 너희 행위대로 너희를 벌할 것이요 내가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모든 주위를 사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말씀묵상]


시드기야 왕 때에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위기가 왔을 때 바스훌과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내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뜻은 바벨론에 의해 공격을 당할 것이고 큰 전염병에 죽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전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측은히 여기지 않고 바벨론에게 넘겨줄 것이고 긍휼히 여기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그래도 하나님께 찾아 온 자들에게 뭔가 희망의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지만 지금 이들의 모습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지금의 고난을 어떻게 피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온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말만 듣다가 정작 바벨론이 공격하자 식겁하여 뭔가 큰 일을 하나님께서 해주십사 한 것입니다.

2절을 보면 여호와께 간구하는 이유가 모든 기적으로 우리를 도우시면 바벨론이 우리를 떠나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와 자신들의 불신앙과 거짓된 마음을 회개할 생각이 아니라 어려움을 피해 보려는 수단으로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신앙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신뢰하는 자들의 모습이 아닙니다. 세상과 다름이 없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세상은 자신의 삶에 있는 어려움과 고난을 피하는 것이 삶의 지혜이며 목적입니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자신의 능력을 만들어 갑니다. 그리고 결정적일 때는 종교를 이용합니다. 인간의 능력보다 더 큰 힘을 사용하려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는 어려움을 이길 더 큰 힘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힘이 결국은 세상의 주관자인 것을 모르는 소치입니다.


문제는 신자들이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김이 이러한 의도나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드기야처럼 말입니다. 신앙이 삶의 수단이나 목적이 될 때 미신이 되어버립니다. 자기 삶을 위한 믿음은 결국 세상의 목적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러한 요청을 하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결국 하나님의 선포가 나옵니다.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살려고 하지 말고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적군에 항복하는 것에 있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당연히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확정적임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결국 포로 생활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알겠지만 현실 속에서 이러한 상황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지금 나에게 뭔가 성취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해야 한다는 욕심 때문입니다.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은 늘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뜻은 하나님과 우리가 너무 다를 뿐입니다. 다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 있지만 늘 사망의 길을 가는 자들입니다. 이미 가나안을 앞두고 주셨던 신명기의 말씀(신30:14-19)이 지금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과 복이 아닌 사망과 화가 이제 성취되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이 생명의 길이 이미 주어진 자들입니다. 이제 확인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지, 누가 주인인지,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의 은혜로 살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내가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손에 붙잡혀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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