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4장

2019년 10월 16일

예레미야 24장



*말씀읽기

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를 내게 보이셨는데

2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있더라

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쁘니이다 하니

4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 고관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이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리되

9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 흩어서 그들에게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에게 내가 쫓아 보낼 모든 곳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며 말 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

10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 그들이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말씀묵상

24장의 내용은 시간적으로 앞의 22장에 연결되어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붙잡혀간 1차 바벨론 포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무화과가 담긴 두 광주리 환상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는 광주리와 다른 하나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담긴 광주리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을 하나님께서 해 주십니다. 5절을 보면 예루살렘으로부터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좋은 무화과라고 하시고, 8절에서는 시드기야와 고관들과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 애굽에 있는 자들에 대해 나빠서 먹을 수 없는 나쁜 무화과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왜 포로로 끌려간 자들을 좋은 무화과라고 하시고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남아 있는 자들, 다른 곳에 사는 자들을 나쁜 무화과라고 하시는지 일반적인 생각과 기준에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망하게 하고 잡혀간 자들과 어떻게 하든지 남아 있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완전히 상반된 내용으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진의가 무엇일까요? 설명해 주시는 내용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먼저 끌려간 자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잘 돌볼 것이라고 하십니다. 6절에 그들을 좋게 하시고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7절에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심으로 돌아오도록 하시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끌려간 자들이 하나님께서 만들어 내시는 자들임을 보여 주십니다. 자신들에 의해 어떠한 삶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끌려갔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앞으로의 삶도 전적인 하나님의 주도하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당연히 좋은 무화과인 것입니다.

반면에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은 자신의 의지와 힘과 능력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이들의 계획과 능력은 앞서 22장에서 잘 보여 주었습니다. 22:14절을 보면 자기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짓고 창문을 냅니다. 다 자기를 위하여입니다. 그리고 가장 악한 죄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늘 반대표를 던지며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오히려 다른 민족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스스로 살 길을 여는 자들입니다. 이들을 나쁜 무화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기준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어디에 있느냐는 사실 별 중요한 점이 아닙니다. 누가 그들을 이끌고 있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비록 포로로 잡혀갔을지라도 그들을 주도하고 이끄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그들이 좋은 무화과인 것입니다. 뭔가 잘 순종하고 열심을 다했기에 좋은 무화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아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남았기에, 침략자인 바벨론에 끌려가지 않았기에 좋은 무화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을 주도하고 있는 존재가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이었기에 나쁜 무화과인 것입니다.

한국의 상황에서 착각하기 쉬운 모습입니다. 남한의 신자들은 좋은 무화과이고 북한의 신자들은 나쁜 무화과일까요? 당연히 아님을 알 것입니다. 통일이 왜 필요합니까? 한 민족이니까 소원이고 당연한 사실입니다. 북한의 고생하는 신자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기준을 가진 신앙관이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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