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9장

2019년 11월 6장

예레미야 39장



*말씀읽기

1 유다의 시드기야 왕의 제구년 열째 달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2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넷째 달 아홉째 날에 성이 함락되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매

3 바벨론의 왕의 모든 고관이 나타나 중문에 앉으니 곧 네르갈사레셀과 삼갈네부와 내시장 살스김이니 네르갈사레셀은 궁중 장관이며 바벨론의 왕의 나머지 고관들도 있더라

4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모든 군사가 그들을 보고 도망하되 밤에 왕의 동산 길을 따라 두 담 샛문을 통하여 성읍을 벗어나서 아라바로 갔더니

5 갈대아인의 군대가 그들을 따라 여리고 평원에서 시드기야에게 미쳐 그를 잡아서 데리고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로 올라가매 왕이 그를 심문하였더라


6 바벨론의 왕이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눈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족을 죽였으며

7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고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8 갈대아인들이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었고

9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자기에게 항복한 자와 그 외의 남은 백성을 잡아 바벨론으로 옮겼으며

10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 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


1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레미야에 대하여 사령관 느부사라단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2 그를 데려다가 선대하고 해하지 말며 그가 네게 말하는 대로 행하라

13 이에 사령관 느부사라단과 내시장 느부사스반과 궁중 장관 네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모든 장관이

14 사람을 보내어 예레미야를 감옥 뜰에서 데리고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넘겨서 그를 집으로 데려가게 하매 그가 백성 가운데에 사니라

15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6 너는 가서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이 성에 재난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한 나의 말이 그 날에 네 눈 앞에 이루리라

1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아니하리라

18 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가 노략물 같이 네 목숨을 얻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더라


*말씀묵상

바벨론이 공격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한 지 약 1년 6개월여 만에 결국 예루살렘 성이 함락됩니다. 유다가 망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이미 선포된 내용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느냐였습니다. 바벨론에 항복하라, 그것이 사는 길이다는 말씀이었는데 어느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 계속 외치던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다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기준이었고 선포하던 거짓 예언의 근거였습니다. 대단한 믿음으로 보이지만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깨닫지 못한 거짓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끝까지 지켜주신다, 혹은 망하지 않는다는 믿음은 그 기준이 세상적 가치라면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여기서 세상적 가치란 수명이나 생존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됨이고, 망하지 않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 나라이며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은 신실하신 약속의 성취입니다. 이것이 유지되는 이상 빨리 죽느냐, 생존에 위협이 있느냐, 나라가 위험하냐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예레미야가 외쳤던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었습니까? 항복하면 산다는 게 말이 됩니까? 자신의 죄악을 깨달으라는 말입니다. 망하는 이유가 나에게 있음을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가라는 것은 너희들의 죄가 얼마나 큰 지를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지었다고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모습은 외면한 채 선민의식만 가지고 예루살렘은 망하지 않으며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니 지켜주실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이었습니다.

이런 헛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끝까지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려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시드기야 왕과 모든 군사가 야반도주를 꾀한 것입니다. 5절 이후의 모습은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이 모습은 유다의 죄악상을 보여 주는 심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에 대한 심판입니다. 반면에 10절을 보면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바벨론의 사령관인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들에게 포도원과 밭은 나누어준 것입니다. 무엇에 대한 심판입니까? 겉으로는 정복국이 행하는 유화정잭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없는 자, 가난한 자, 과부, 고아를 돌보지 않은 죄악에 대한 심판입니다.

11절에서는 정복국 왕의 명령에 의해서 예레미야가 구출됩니다. 물론 느부갓네살 왕이 예레미야에 대해 듣고 행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입니다. 15절에서는 38장에서 나왔던 에벳멜렉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나옵니다. 지금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멸망한 내용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한 부류도 함께 보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전혀 하나님을 알지 못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깨달아졌고 하나님에 대한 반응으로 그대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얼마나 다른 모습인지를 대조하는 것입니다. 멸망함이 죄에 대한 심판이듯이 구원은 말씀의 성취임을 보이신 것입니다.

유다의 멸망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멸망을 예표합니다. 세상을 섬기는 죄악을 드러내시고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자리를 분명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바른 믿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하나님만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오직 주님만으로 살아가는 삶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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