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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4장

2018년 5월 15일

요나 4장

*말씀읽기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말씀묵상

참으로 간사한 요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왠지 낯설지가 않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북한을 보는 우리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들이 멸망하기를 바라다가 요즘 사이가 갑자기 좋아지는 상황에서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좀 맛을 보여 줬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여전히 있다는 말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니느웨 성에 멸망을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건성으로 전했고 멸망하기를 바라며 전했는데 놀랍게도 이들이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었고 그러한 니느웨 성읍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살려 주기로 하신 것입니다. 요나는 멸망할 것을 기대하고 전한 것인데 반대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살아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요나는 부아가 난 것입니다. 1절에 싫어하며 화를 냈다고 합니다.

2절을 보면 그가 화를 낸 이유가 나옵니다. 자기에게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졌을 때 순종치 않고 다시스로 도망한 이유가 이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베풀어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니 천하의 죄악을 저지른 니느웨라 하더라도 이들에게까지도 멸하지 아니하시는 은혜를 베푸실 것 같아 그들에게 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제대로 깨달았는데 그러한 하나님은 나에게만, 이스라엘에게만 그렇게 하셔야 하는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선지자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진 생각은 인간적인 한계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내기준, 나중심의 하나님 이해에서 벗어나자 화를 내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한편으로 전혀 이해되지 않는 요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인간의 일반적인 생각이며 삶의 기준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가진 특권, 자격, 능력, 행위, 여러 모를 볼 때 다른 사람과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하나님을 위해 한 것이 얼마인데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못된 짓을 해온 니느웨 같은 자들이 은혜를 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이 기준이 아니라 그 은혜로 인해 하고 있던 나의 모습이 행위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고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업적과 조건과 특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의 비유 중에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0장을 보면 이른 아침에 채용된 일꾼과 마감 1시간을 앞두고 채용된 일꾼이 일당을 받게 되는데 늦게 온 자에게 1데나리온을 주자 이른 아침에 온 일꾼이 더 받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입니다. 무려 11시간을 더 일했으니 11데나리온은 아니어도 1데나리온보다는 더 받으리라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1데나리온을 주자 화를 냈던 것입니다. 천국이 은혜로 모든 자에게 어떠한 인간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동일하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신 비유입니다. 이런 은혜가 아니라면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가 구원받은 강도를 인하여 화를 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심성에 이 요나의 마음이 그대로 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용서, 여유, 풍요함, 너그러움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은혜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깨닫도록 하나님께서는 뒤틀려 있는 요나에게 박넝쿨을 준비하시고 또한 사라지게 하심으로 깨닫게 하십니다. 이런 박넝쿨로 인해 아까운 생각을 갖는다면 니느웨 성의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12만의 생명이 아깝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혹시 우리 주변에 망했으면 하는 자들이 있습니까? 나도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아무리 죽을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자일뿐입니다. 그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는 자들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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