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7장

2021년 5월 22일

요한계시록 17장



[말씀읽기]

큰 창녀에게 내릴 심판

1 대접 일곱 개를 가진 그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가 와서, 나에게 "이리로 오너라. 큰 바다 물 위에 앉은 큰 창녀가 받을 심판을 보여 주겠다.

2 세상의 왕들이 그 여자로 더불어 음행을 하였고, 땅에 사는 사람들이 그 여자의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3 그리고 그 천사는 성령으로 나를 휩싸서, 빈 들로 데리고 갔습니다. 나는 한 여자가 빨간 짐승을 타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짐승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로 가득하였고, 머리 일곱과 뿔 열 개가 달려 있었습니다.

4 이 여자는 자주색과 빨간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는 금잔을 들고 있었는데, 그 속에는 가증한 것들과 자기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였습니다.

5 그리고 이마에는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물건들의 어머니, 큰 바빌론'이라는 비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6 그리고 나는 그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하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그 여자를 보고 크게 놀라니,

7 그 때에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왜 놀라느냐? 나는 이 여자의 비밀과, 이 여자를 태우고 다니는 머리 일곱과 뿔 열이 달린 그 짐승의 비밀을, 너에게 말하여 주겠다.

8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으며, 장차 아비소스에서 올라와서, 나중에는 멸망하여 버릴 자다. 그리고 땅 위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창세 때로부터 생명책에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사람들은, 그 짐승을 보고 놀랄 것이다. 그것은, 그 짐승이 전에는 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다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9 여기에 지혜를 가진 마음이 필요하다. 머리 일곱은 그 여자가 타고 앉은 일곱 산이요, 또한 일곱 왕이다.

10 그 가운데서 다섯은 이미 망하고, 하나는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이 나타날지라도, 잠깐밖에 머물지 못할 것이다.


11 또 전에 있다가 지금은 없는 그 짐승은 여덟 번째인데, 그것은 그 일곱 가운데 속한 것으로서, 마침내 멸망하여 버릴 자다.

12 네가 본 열 뿔은 열 왕이다. 그들은 아직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였지만, 그 짐승과 함께 한동안 왕권을 차지할 것이다.

13 그들은 한 마음이 되어서, 그들의 능력과 권세를 그 짐승에게 내줄 것이다.

14 그들이 어린 양에게 싸움을 걸 터인데, 어린 양이 그들을 이길 것이다. 그것은, 어린 양이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기 때문이며, 어린 양과 함께 있는 사람들이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신실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15 천사가 또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본 물, 곧 그 창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들과 무리들과 민족들과 언어들이다.


16 그리고 네가 본 그 열 뿔과 그 짐승은 그 창녀를 미워해서 비참하게 만들고 벌거벗은 꼴로 만들 것이다. 그들은 그 창녀의 살을 삼키고, 그 여자를 불에 태울 것이다.

17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이루실 때까지, 당신의 뜻을 행하려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셔서, 그들이 한 마음이 되어,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셨기 때문이다.

18 네가 본 그 여자는 세상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가진 큰 도시를 가리킨다."


[말씀묵상]

17-18장은 큰 성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 설명합니다. 17장은 바벨론의 정체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1절을 보면 음녀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라고 합니다. 3절에서는 이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다고 합니다.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음녀가 의미하는 바는 15절에서 해설해 주듯이 세상에 있는 나라와 민족을 지배하고 있는 세력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이 짐승에게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습니다.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고 뿔은 왕이라고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 짐승은 사탄의 휘하에 있는 세상의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17장에서 묘사하고 있는 내용은 짐승과 함께 세상을 미혹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힘과 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5절의 내용처럼 세상이 추구하던 부와 명예, 눈에 보이는 가치들로 세상을 만들어간 것입니다. 이마에 이름이 있는데 비밀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비밀이라는 의미일 수 있지만 세상 속에서 이들의 존재와 행하는 일이 숨겨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음녀와 짐승이 세상을 향하여 하는 모든 일들에 대해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현재의 세상을 보아도 그런 것 같습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사람들은 그대로 따릅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유익과 만족은 엄청나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당연히 세상을 좇게 되고 이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며 대항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죄인지, 아닌지 전혀 감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추구하고 목적하는 것이 세상이 가고 있는 방향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세상을 거스르는 자들이 신자인 것입니다. 당연히 고난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6절에 그 모습이 묘사되는데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했다는 것입니다. 일차적으로 순교를 의미하지만 성도들이 겪는 어려움을 말해 줍니다. 이 세상에서 신자들은 세상 사람들이 얻는 만족, 행복 등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음녀가 보여준 것들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짐승의 비밀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짐승을 탄 음녀가 미혹하고 추구하는 것을 같이 따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신자들은 세상에 예수의 증인들로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음녀와 함께 할 때 성경은 음행하였다고 표현합니다.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증인으로 사는가 아니면 음행하고 있는가?

역설 같지만 신자들은 이 세상에 사는 이유가 죽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입니다. 개인의 삶이 죽을 뿐만 아니라 증인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죽임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든 오래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자들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이든 증인으로 존재하기를 애쓰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세상에서 죽임을 당하는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삶의 기준과 근거가 오직 하나님의 구원하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것이 죽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6절에 보면 요한이 짐승에 탄 여인이 성도들과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지금 요한은 이 음녀가 받을 심판을 보여 주시겠다고 하고 광야로 가서 이 화려한 음녀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망해야 할 음녀는 엄청난 권력과 권세를 가진 짐승과 함께 하고 있고 거기에 성도와 증인들의 피에 취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앞서 12:6절에 나온 여자가 광야로 도망해서 1260일간 양육받기 위해 예비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양육이 바로 세상으로부터 증인으로 성도로서 살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싸움을 하고 있는가요? 죽임을 당하고 있나요? 세상과 짝하고 있던 내 삶과 목적이 다 빼앗기고 있나요? 단순히 빼앗기고 없어지고 가난해지라는 말이 아니라 증인으로 살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신자들의 삶이 광야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 가나안에 대한 약속, 구원받은 자라는 사실, 약속만이 이끌어 가는 삶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핍박과 고난은 반기독교 국가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과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도 경험하는 것입니다. 내 삶이 세상의 기준으로 사는가, 예수의 증인으로 사는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 싸움을 하며 증인으로 사는 삶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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