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장

최종 수정일: 2021년 5월 4일

2021년 5월 1일

요한계시록 2장



[말씀읽기]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말씀

1 "에베소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 보내어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시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말씀하신다.

2 나는 네가 한 일과 네 수고와 인내를 알고 있다. 또 나는, 네가 악한 자들을 참고 내버려 둘 수 없던 것과,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 낸 것도, 알고 있다.

3 너는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견디어 내고, 낙심한 적이 없다.

4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그것은 네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다.

5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 내서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을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

6 그런데 네게는 잘 하는 일이 있다. 너는 니골라 당이 하는 일을 미워한다. 나도 그것을 미워한다.

7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 사람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주어서 먹게 하겠다.'"


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말씀

8 "서머나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 보내어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9 나는 네가 당한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너는 부요하다. 또 자칭 유대 사람이라는 자들에게서 네가 비방을 당하고 있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유대 사람이 아니라 사탄의 무리다.

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보아라, 악마가 너희를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감옥에다 집어 넣으려고 한다.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할 것이다. 죽도록 충성하여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주겠다.

11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 사람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말씀

12 "버가모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 보내어라. '날카로운 양날 칼을 가지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13 나는 네가 어디에 거주하는지를 알고 있다. 그 곳은 사탄의 왕좌가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너는 내 이름을 굳게 붙잡고, 또 내 신실한 증인인 안디바가 너희 곁, 곧 사탄이 살고 있는 그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14 그러나 나는 네게 몇 가지 나무랄 것이 있다. 너희 가운데는 발람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발람은 발락을 시켜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 올무를 놓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음란한 일을 하게 한 자다.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16 그러니 회개하여라.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속히 너에게로 가서, 내 입에서 나오는 칼을 가지고 그들과 싸우겠다.

17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 사람에게는, 내가 감추어 둔 만나를 주겠고, 흰 돌도 주겠다. 그 돌 위에는 새 이름이 적혀 있는데, 그 돌을 받는 사람 밖에는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는 말씀

18 "두아디라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 보내어라. '그 눈이 불꽃과 같고, 그 발이 놋쇠와 같으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19 나는 네 행위와 네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오래 참음을 알고, 또 네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안다.

20 그러나 네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이세벨이라는 여자를 용납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예언자로 자처하면서, 내 종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미혹시켜서 간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자다.

21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는 자기 음행을 회개하려 하지 않았다.

22 보아라, 나는 그를 병상에다가 던지겠다.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그와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을 당하게 하겠다.

23 그리고 나는 그의 자녀들을 반드시 죽게 하겠다. 그러면 모든 교회는 내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살피는 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아 주겠다.

24 그러나 두아디라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 곧 사탄의 깊은 흉계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인 너희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다.

25 다만 내가 올 때까지, 너희가 가지고 있는 그것을 굳게 붙잡고 있어라.

26 이기는 사람, 곧 내 일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에게는,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

27 「그는 쇠막대기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고, 민족들은 마치 질그릇이 부수어지듯 할 것이다.」

28 이것은 마치, 내가 나의 아버지께로부터 권세를 받아서 다스리는 것과 같다. 나는 그 사람에게 샛별을 주겠다.

29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말씀묵상]

2-3장에서는 일곱교회에 대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여러 모양의 교회들을 대표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지금 예수님께서 교회를 향한 말씀을 하실 때 중요한 표현을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어떤 분이 교회에 얘기를 하시는가를 표현하신 것입니다. 즉 말씀하시는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표현하면서 교회를 향해 말씀하신다는 말입니다.

에베소 교회에는 오른손에 있는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 서머나 교회에는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설명합니다. 다른 교회에서도 각기 다른 표현으로 말씀하시는 이를 설명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사실은 바로 계시록이 보여주고 있는 기독론을 잘 이해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을 이해함에 있어서 기독론, 예수님에 대한 고백은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런데 이 고백이 바로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당연히 주님에 대한 고백은 베드로를 통해서 약속을 해 주셨듯이 주님에 대한 고백은 바로 교회를 세우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고백이 있지 않으면 교회는 세워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바른 고백을 하지 못한다면 교회가 될 수 없다는 말도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고백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에 대한 바른 고백은 무엇입니까? 그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을 이끌고 계신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말씀의 요점은 무엇입니까? 에베소는 아주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행위 수고 인내가 뛰어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과 고백으로 행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 속에서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수준있는 교회로 보였고 실제 그렇게 행한 교회였는데 그것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뒤돌아보며 생각하고 회개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에베소교회의 모습은 거의 모든 교회의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모습이며 겉모습만 남은 모습이고 바리새인과 같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고백을 회복하고 삶에 확인하는 훈련이 필요할 때입니다. 신자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하심에서 시작될 뿐 아니라 유지되는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그렇듯이 고난과 핍박이 항상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신앙을 지키며 이단의 공격을 견뎠습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계속되는 고난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옥에 던질 시험을 받는데 죽도록 충성하라는 권면을 받습니다. 그러면 생명의 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위로라고 할 수 없는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당연히 교회는 세상의 기준과 가치로 그 존재 가치를 드러내지 않는 것임을 말합니다. 고난과 핍박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지 실패와 저주의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충성하라는 맡은 일을 열심히 하라는 의미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의 기준으로 신실하게 살아가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개인의 능력이나 힘, 의지가 아닌 은혜와 사랑으로 주어진 삶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신자의 삶입니다. 그러한 자들에 생명의 관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도 견디면 주고 아니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가 있는 자들에게 주어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버가모 교회 역시 고난과 핍박 속에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는 칭찬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발람의 교훈을 지키며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발람의 교훈은 꾀임에 빠져 우상 숭배를 한 모습을 말합니다. 세상을 향하며 재물에 어두워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과 짝하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명예와 자리, 즐거움, 만족을 발람은 포기하지 못했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보다도 세상을 선택하는 죄악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순교신앙을 드러내는 환경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과 승리는 모두의 것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순교하는 자인가 우상숭배자인가? 하나님을 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것도 함께 가지고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에베소 교회와는 반대로 행위와 수고와 인내와 섬김들이 있었는데 이러한 처음 행위만이 아니라 나중 행위까지 잘 했다고 합니다. 끝까지 믿음의 삶을 지키고 유지했다는 말인데 그러한 교회가 이세벨을 용납하여 행음하고 우상을 제물을 먹게 되었다고 합니다. 버가모 교회처럼 믿음의 삶과 우상 숭배의 삶이 같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중성은 신자들이 늘 돌아보며 말씀 앞에 서야 할 숙제인 것입니다. 이세벨의 유혹은 세상의 유혹을 말합니다. 세상적 성공과 명예, 가치와 만족들이 믿음의 삶에서 드러난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의 위험은 그렇게 사는 것이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삶이 괜찮은 것처럼 여깁니다. 세상으로 배를 채우는 삶은 신자의 모습이 아님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들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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