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0장

2018년 12월 26일

욥기 10장



*말씀읽기

1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2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

3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

4 주께도 육신의 눈이 있나이까 주께서 사람처럼 보시나이까

5 주의 날이 어찌 사람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해와 같기로


6 나의 허물을 찾으시며 나의 죄를 들추어내시나이까

7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

8 주의 손으로 나를 빚으셨으며 만드셨는데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9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10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1 피부와 살을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엮으시고

12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13 그러한데 주께서 이것들을 마음에 품으셨나이다 이 뜻이 주께 있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14 내가 범죄하면 주께서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시고 내 죄악을 사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5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는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내 눈이 보기 때문이니이다


16 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젊은 사자처럼 나를 사냥하시며 내게 주의 놀라움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

17 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를 바꾸어 나를 치시며 나를 향하여 진노를 더하시니 군대가 번갈아서 치는 것 같으니이다

18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찌함이니이까 그렇지 아니하셨더라면 내가 기운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

19 있어도 없던 것 같이 되어서 태에서 바로 무덤으로 옮겨졌으리이다

20 내 날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잠시나마 평안하게 하시되


21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

22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


*말씀묵상

10장은 계속해서 욥이 하나님께 항변을 하는 내용입니다. 욥의 신앙이 어떠한 것인지를 엿볼 수 있는 고백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의문을 갖기 시작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가 원인을 자신의 죄나 허물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기준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절에서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변론하시려는지를 알게 해달라고 합니다. 사람처럼 보시며 판단하시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계속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처음부터 욥은 죄와는 상관이 없는 자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즉 행위로 판단받는 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잘 해서 복 받고 말씀에 순종해서 형통하고 예배를 잘 드려서 자녀들이 잘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모습이 나왔지만 사단이 하나님과 나눈 이야기와 그로 인한 고난은 그것과 관계없는 것들임을 증명하기 위해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따라서 욥의 하소연은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 온 믿음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해줍니다. 적어도 내가 잘못했다고 그것으로 벌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나를 빚으시고 만드셨는데, 그것만이 아니라 생명과 은혜를 주시고 내 영을 지켜 주셨는데, 나를 이제 일부러 죽이시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13절). 그런데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하며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각과 고백은 신자들에게도 당연한 고백의 내용입니다. 욥이 따지듯이 말하고 있는 것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을 때 누구나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왜 생겼을까 하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가, 죄인을 구원하시고 자녀 삼으셨는데, 죽어야 할 나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하셨다는데, 어찌 이러한 상황을 당하도록 하신다는 말인가 하는 고민을 토로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민은 신자로서의 가치를 깨닫는 것입니다.

흔히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준은 나의 모습에 의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좌우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신자나 불신자나 다 가지고 있는 기준입니다. 천벌을 받는다든지, 지성이면 감천이라든지 하는 말이 그러한 기준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실제 성경에서도 불순종하는 자에게 3-4대까지 벌을 주고 순종하는 자에게 천 대까지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생각합니다(출34:7, 신5:9-10). 이 말씀의 참의미는 누구도 말씀을 순종할 자들이 없으며 따라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만 온전한 은혜와 복이 주어질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이 어떠한 자가 되는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기준이 되어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에 초점이 아니라 여전히 티끌같은 자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걸 이끄신다는 사실을 붙잡고 있는가에 초점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믿음과 인내가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에 대한 믿음은 인내할 수 있는 이유가 됩니다.

우리는 참으로 급하게, 인내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금방 화내고 후회하고 회개하고, 또 참지 못하고 일을 저지르고 후회하는 삶입니다. 이럴 때 욥의 모든 상황 가운데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허락하셨습니다. 아니 그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인 그리스도를 드러내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신자의 승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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