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1장

2018년 12월 27일

욥기 11장



*말씀읽기

1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말이 많은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3 네 자랑하는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

4 네 말에 의하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께서 보시기에 깨끗하다 하는구나

5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6 지혜의 오묘함으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너의 죄를 잊게 하여 주셨음을 알라

7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

8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무엇을 하겠으며 스올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9 그의 크심은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10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재판을 여시면 누가 능히 막을소냐


11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하지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12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의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

13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14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

15 그리하면 네가 반드시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16 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 네가 기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

17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둠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18 네가 희망이 있으므로 안전할 것이며 두루 살펴보고 평안히 쉬리라

19 네가 누워도 두렵게 할 자가 없겠고 많은 사람이 네게 은혜를 구하리라

20 그러나 악한 자들은 눈이 어두워서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리니 그들의 희망은 숨을 거두는 것이니라


*말씀묵상

욥의 세 번째 친구인 소발이 욥에게 하는 첫 번째 대답입니다. 소발은 욥이 말하는 자신의 의롭다함과 하나님의 이유 없는 형벌 주장에 대해 책망합니다. 욥이 그렇게도 자신이 잘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비하심과 오묘하심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며 욥을 많이 봐주셨다고 합니다(6절).

앞서 엘리바스는 도덕율과 인과응보에 의해 욥의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욥은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반드시 그러한 원칙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합니다. 빌닷의 경우는 경험과 전통에 따른 법칙, 틀, 자연법칙에 의해 욥을 책망하며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권고했습니다. 여기서도 욥은 그러한 것은 나도 다 아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자 소발이 욥에게 바로 그 하나님의 깊고 크심을 어찌 알 수 있겠느냐고 질문하면서 그걸 깨달을 생각하지 말고 죄를 인정하고 주님께 항복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소발도 강조점이 좀 다를 뿐이지 욥의 상태가 죄악의 결과라는 인과율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임을 보여 줍니다.

일차적으로 소발이 말하는 하나님의 깊고 오묘하신 섭리, 일하심에 대한 주장은 신자들도 분명하게 가지고 있어야할 내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러한 모습은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멀리 계신 분으로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크고 깊고 넓다는 사실이 작고 보잘 것 없는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믿음으로는 고백하지만 실제 나의 삶 속에 있는 하나님의 간섭이나 인도하심에 대해서는 먼 것처럼 느끼는 것입니다. 우주를 운행하시고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분명하게 고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모든 삶의 상황에 대해 하나님의 구체적인 역사를 고백해 낼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지혜나 지식이 한계가 있고 무디고 미련하여 느끼지도 못할 때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없거나 역사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 하나님에 대해 믿음이 없어도 된다는 말은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무지함을 인하여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소말의 책망은 정답입니다.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누구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지금 사단에게 이 일을 허락하시고 가만히 계신 하나님을 우리는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가 경험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내가 이해하고 만족할 만한 경우에 한해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 외의 것, 그 이상의 것은 모르는 일이라고 합니다. 신앙이 인간의 기준과 합하게 되면 미신적 신앙이 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내가 원할 때, 내가 만족하는 것으로 주어져야 합니다. 소발의 충고는 이렇게 변질되기 쉽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가 외치는 회개가 그렇게 변질될 우려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만, 이해하는 것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오직 그의 뜻과 목적을 이루십니다. 그것도 죄인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크고 깊으심을 드러냄과 함께 죄인을 향한 사랑하심과 구원하심이 드러난 현장입니다. 내 기준으로 신앙생활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해 못할 일이 훨씬 더 많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담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담아내고 계십니다. 흔적을 남기십니다. 나의 삶에서 십자가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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