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3장

2019년 1월 2일 업데이트됨

2018년 12월 29일

욥기 13장




*말씀읽기

1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깨달았느니라

2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하지 않으니라

3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4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 없는 의원이니라

5 너희가 참으로 잠잠하면 그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


6 너희는 나의 변론을 들으며 내 입술의 변명을 들어 보라

7 너희가 하나님을 위하여 불의를 말하려느냐 그를 위하여 속임을 말하려느냐

8 너희가 하나님의 낯을 따르려느냐 그를 위하여 변론하려느냐

9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임 같이 그를 속이려느냐

10 만일 너희가 몰래 낯을 따를진대 그가 반드시 책망하시리니


11 그의 존귀가 너희를 두렵게 하지 않겠으며 그의 두려움이 너희 위에 임하지 않겠느냐

12 너희의 격언은 재 같은 속담이요 너희가 방어하는 것은 토성이니라

13 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 무슨 일이 닥치든지 내가 당하리라

14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15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16 경건하지 않은 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

17 너희들은 내 말을 분명히 들으라 내가 너희 귀에 알려 줄 것이 있느니라

18 보라 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내가 정의롭다 함을 얻을 줄 아노라

19 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

20 오직 내게 이 두 가지 일을 행하지 마옵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얼굴을 피하여 숨지 아니하오리니


21 곧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시오며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마실 것이니이다

22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내가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23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24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

25 주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을 놀라게 하시며 마른 검불을 뒤쫓으시나이까


26 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내가 젊었을 때에 지은 죄를 내가 받게 하시오며

27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며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점검하시나이다

28 나는 썩은 물건의 낡아짐 같으며 좀 먹은 의복 같으니이다


*말씀묵상

친구들의 조언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욥으로 하여금 분노를 만들어 내었다고 합니다. 친구들이 주장하던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12장에서 역시 고백합니다. 나도 다 알고 깨달은 것들이라고 주장합니다. 너희는 거짓말쟁이고 쓸모없는 의원이라 조용히 있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합니다.

지금 욥이 반박하는 내용은 반복되는 듯한 모습이지만 아직 답이 나오지 않았기에 친구들의 충고에 대한 분노와 거절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친구들의 이야기는 답이 아닙니다.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보편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한 설명과 주장은 누구나 아는 것이고 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친구들의 말대로 잘못을 찾아내어 하나님께 회개한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삶이 회복되고 병이 낫는다고 한다면 그것 역시 욥은 당황하게 되며 그렇게 된 이유를 지금 못지 않게 고민하며 찾아야 합니다.

욥은 지금 보편적인 상황이 아니라 그만이 겪고 있는 특별한 상황임을 말하고자 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이러한 상황에서 힘들어 합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지금까지의 경험과는 다른, 단순하게 설명되지 않는 상황들입니다. 욥의 친구들이 아무리 얘기 한들 의미없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 그래서 원칙만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칙은 해법이 아닙니다. 늘 가지고 있는 테두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하심의 내용과 범위는 그러한 것들 안에 있지 않습니다. 더 넓기도 하지만 그것과 전혀 다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번성하게 하고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약속이 왜 이방의 객으로 살아야 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그것이 증거라고만 주실 뿐입니다. 왜 그러시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하나님 마음이라고 밖에 대답할 것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이 없어서, 야곱이 거짓말만 해서 후손이 그런 꼴이 되었다고 누가 말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고 자녀로서 이 세상에 살도록 하셨는데 가족들이 비명횡사하고 하던 일이 일시에 망하는 이유를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일을 경험하지 않은 자들로서 무슨 이유가 있겠지, 아마 무슨 잘못을 하지 않았을까,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겠지, 등등의 말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옆에서 함께 하는 것밖에 할 수 없습니다.

신자들에게 일어나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신자들의 잘잘못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벌주시고 상주시고 하셨다는 것 역시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다만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그것을 통해 오직 하나님의 목적하심만이 성취되고 그의 백성들에게 은혜가 베풀어질 뿐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20절 이후에는 욥의 기도가 나옵니다. 하나님께 대한 항변이기도 하지만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달라는 하소연으로 보입니다. 나를 부르시면 대답하겠고, 내가 말할 수 있다면 그에 대해 대답을 해달라고 합니다. 그것밖에 그의 백성들은 할 것이 없습니다.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고백도 합니다(25, 28절). 흥미로운 것은 욥도 자신의 죄로 인해 일어난 것이라면 알게 해달라는 요청을 합니다(23, 26절). 물론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십니다. 그래야 고난입니다. 답이 있으면 고난이 되질 않습니다. 없어야 소망이 생기고 믿음이 드러납니다. 욥기를 통하여 드러나는 내용입니다. 욥이 얼마나 소망도 믿음도 없었는지를 확인합니다. 답을 알아 이해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인도와 목적을 의지하며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이신 십자가를 의지하는 것만이 욥의 고난과 같은 상황을 감당하는 길일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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