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6장

2019년 1월 10일

욥기 16장




*말씀읽기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

3 헛된 말이 어찌 끝이 있으랴 네가 무엇에 자극을 받아 이같이 대답하는가

4 나도 너희처럼 말할 수 있나니 가령 너희 마음이 내 마음 자리에 있다 하자 나도 그럴 듯한 말로 너희를 치며 너희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 수 있느니라

5 그래도 입으로 너희를 강하게 하며 입술의 위로로 너희의 근심을 풀었으리라


6 내가 말하여도 내 근심이 풀리지 아니하고 잠잠하여도 내 아픔이 줄어들지 않으리라

7 이제 주께서 나를 피로하게 하시고 나의 온 집안을 패망하게 하셨나이다

8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나의 파리한 모습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내 앞에서 증언하리이다

9 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적대시 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원수가 되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보시고

10 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나를 모욕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


11 하나님이 나를 악인에게 넘기시며 행악자의 손에 던지셨구나

12 내가 평안하더니 그가 나를 꺾으시며 내 목을 잡아 나를 부숴뜨리시며 나를 세워 과녁을 삼으시고

13 그의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사정 없이 나를 쏨으로 그는 내 콩팥들을 꿰뚫고 그는 내 쓸개가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

14 그가 나를 치고 다시 치며 용사 같이 내게 달려드시니

15 내가 굵은 베를 꿰매어 내 피부에 덮고 내 뿔을 티끌에 더럽혔구나


16 내 얼굴은 울음으로 붉었고 내 눈꺼풀에는 죽음의 그늘이 있구나

17 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

18 땅아 내 피를 가리지 말라 나의 부르짖음이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

19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20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


21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

22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


*말씀묵상

엘리바스의 말에 욥은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지고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나도 너희들처럼 그럴 듯한 말로 너희를 치고 머리를 흔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입으로라도 너희를 강하게 하고 근심을 풀어 주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너희들은 나를 괴롭히고 있고 오히려 더 힘들게 하고 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욥의 상황은 친구들의 공격과 하나님의 침묵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임을 토로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렇게도 못살게 하시고 망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나를 향하여 원수처럼 강한 적대감을 품고 대적하시며 주변 사람들에게 심한 모욕을 당하게 하시고 나의 내장이 파열되는 듯한 아픔을 겪게 하십니다. 이러한 욥의 경험은 참으로 답답하고 힘든 과정으로 보입니다. 단순한 고통이 아니고 하나님 앞으로 오지만 답이 없는 상황임을 인정하게 합니다.

하나님께만 하소연을 할 수밖에 없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고 그렇다고 다른 어떤 곳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보통은 이럴 때 신앙을 포기하기도 할 것입니다. 당연히 슬럼프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혹은 사람을 의지하던지, 무속 신앙에 관심을 갖기도 할 것입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할 것인가는 신자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단순히 기도하면, 열심히 섬기면, 치성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고 갚아주실 것이라는 감언이설은 기독교의 진리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욥의 세 친구들이 주장하며 욥에게 요구해 왔던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욥의 친구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지식이 풍부하고 계시를 받는 영적 체험도 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말에 대해 감히 말도 안 된다, 틀렸다, 전혀 위로가 안 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웬만하면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핀 대로 그들의 충고는 분명 위로가 아니었고 바른 말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듯이 그들은 틀렸던 것입니다(42:7-8).

지금 욥이 경험하는 어려움은 해결을 해야 하는 고난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해결 방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유없는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난과 어려움이 신자들에게도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 고난은 결코 나로부터, 나의 환경으로부터 해결되는 고난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해결해 주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해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도구이며 기회이고 이유인 것입니다. 히5:8-9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 십자가, 하나님의 버리심이 결국 하나님께 순종하고 신뢰하는 근거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신자들은 이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난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가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인 것입니다.

신자들은 반드시 이 길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애굽, 광야, 가나안의 싸움 등이 없이는 하나님의 백성됨을 확인할 수 없고 그 과정으로 하나님의 백성됨을 드러내게 됩니다. 답이 없다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십자가만이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왜 나를 버리셨나를 느끼지만 내가 허락한 것이다를 확인하는 은혜가 있는 환경입니다. 이 대속의 은혜를 깨닫고 주님만을 신뢰하는 삶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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