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9장


2019년 1월 15일

욥기 19장

*말씀읽기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3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

4 비록 내게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느냐

5 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만하며 내게 수치스러운 행위가 있다고 증언하려면 하려니와


6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

7 내가 폭행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고 도움을 간구하였으나 정의가 없구나

8 그가 내 길을 막아 지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앞길에 어둠을 두셨으며

9 나의 영광을 거두어가시며 나의 관모를 머리에서 벗기시고

10 사면으로 나를 헐으시니 나는 죽었구나 내 희망을 나무 뽑듯 뽑으시고


11 나를 향하여 진노하시고 원수 같이 보시는구나

12 그 군대가 일제히 나아와서 길을 돋우고 나를 치며 내 장막을 둘러 진을 쳤구나

13 나의 형제들이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낯선 사람이 되었구나

14 내 친척은 나를 버렸으며 가까운 친지들은 나를 잊었구나

15 내 집에 머물러 사는 자와 내 여종들은 나를 낯선 사람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


16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간청하여야 하겠구나

17 내 아내도 내 숨결을 싫어하며 내 허리의 자식들도 나를 가련하게 여기는구나

18 어린 아이들까지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19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원수가 되었구나

20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몸 뿐이로구나


21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22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박해하느냐 내 살로도 부족하냐

23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24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

28 너희가 만일 이르기를 우리가 그를 어떻게 칠까 하며 또 이르기를 일의 뿌리가 그에게 있다 할진대

29 너희는 칼을 두려워 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장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


*말씀묵상

오늘 본문에서 욥이 자신의 입장을 표현하는 말 중에 아주 중요한 내용이 나의 상황과 모습은 어떤 죄악의 결과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인한 것이다는 말입니다. 모든 경험하는 것들이 하나님의 무관심과 버리심의 결과이며 가족과 친척 지인들의 버림도 하나님의 치심으로 인한 것이라고 합니다.

최악의 상황, 일어날 수도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욥은 하나님을 향하여 질문을 하며 자신의 잘못에 의해 주어지는 일들이 아님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이점이 친구들과 분명하게 다른 점입니다. 무고함에도 하나님으로부터 고난이 주어졌다는 사실과 죄와 같은 원인이 없이는 하나님의 형벌이 주어지는 경우는 결코 없다는 사실이 대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힘든 싸움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욥의 친구들이 가진 믿음의 기준이 전혀 틀린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잘 하면 복을 주시고 잘못하면 벌을 주시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우주만물의 주인이시고 인도자이신 하나님께 그의 원하심을 따라 열심을 다하는 것이 합당한 책임이며 그럴 때 복을 얻게 된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며, 반면에 그러한 하나님의 원하심을 따르지 못할 경우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의 명령에 대항하는 것이기에 응당한 값을 치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늘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이미 앞서서 밝힌 대로 사단이 가지고 있었던 고소의 기준이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잘해주시니 믿음이 좋은 것이었고 살만하니까 그렇게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고 열심히 제사도 드리고 선행도 했던 것이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그러한 외적 조건들을 싹 제거한 후에도 욥의 고백은 계속되었고 이제는 친구들에 의해 그 고백이 잘못된 것이라고 공격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단이나 친구들의 판단 기준이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욥기는 이러한 기준보다 더 크고 깊은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늘 욥이 그러한 내용을 고백합니다. 모든 것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고 자신의 상황을 대신 보상하실 분이 있음을 고백합니다(25절). 대속자라는 말은 대신 값을 치르실 분이라는 말입니다. 구원자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고백이 나오는 이유는 육체의 한계, 죽음을 앞두고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렇게 죽는 것으로 끝일 수 없다는 믿음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고백이 부활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가(대속자) 땅위에 서실 것인데 내가 가죽을 벗김을 당한 뒤에도(죽은 다음에) 욥 자신도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26절).

죄악으로 주어진 고난이 아니며 그래서 죽는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이 죽음을 이기도록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이것을 하나님께서 대신 감당하실 분을 통하여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결국 고난을 통한 믿음의 고백은 대속과 부활 신앙으로 나아가도록 함을 보여 줍니다. 현실에 대한 해결이나 환경의 변화가 아닌 그 속에서 드러내야 할 신자로서, 하나님을 믿는 자, 의지하는 자로서 갖는 가치에 진짜 삶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러한 고백이 삶에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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