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1장

2019년 1월 17일

욥기 21장



*말씀읽기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너희는 내 말을 자세히 들으라 이것이 너희의 위로가 될 것이니라

3 나를 용납하여 말하게 하라 내가 말한 후에 너희가 조롱할지니라

4 나의 원망이 사람을 향하여 하는 것이냐 내 마음이 어찌 조급하지 아니하겠느냐

5 너희가 나를 보면 놀라리라 손으로 입을 가리리라


6 내가 기억하기만 하여도 불안하고 두려움이 내 몸을 잡는구나

7 어찌하여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하냐

8 그들의 후손이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9 그들의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들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10 그들의 수소는 새끼를 배고 그들의 암소는 낙태하는 일이 없이 새끼를 낳는구나


11 그들은 아이들을 양 떼 같이 내보내고 그들의 자녀들은 춤추는구나

12 그들은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

13 그들의 날을 행복하게 지내다가 잠깐 사이에 스올에 내려가느니라

14 그러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우리가 주의 도리 알기를 바라지 아니하나이다

15 전능자가 누구이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는구나


16 그러나 그들의 행복이 그들의 손 안에 있지 아니하니 악인의 계획은 나에게서 멀구나

17 악인의 등불이 꺼짐과 재앙이 그들에게 닥침과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하게 하심이 몇 번인가

18 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 같이, 폭풍에 날려가는 겨 같이 되었도다

19 하나님은 그의 죄악을 그의 자손들을 위하여 쌓아 두시며 그에게 갚으실 것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20 자기의 멸망을 자기의 눈으로 보게 하며 전능자의 진노를 마시게 할 것이니라


21 그의 달 수가 다하면 자기 집에 대하여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2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높은 자들을 심판하시나니 누가 능히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

23 어떤 사람은 죽도록 기운이 충실하여 안전하며 평안하고

24 그의 그릇에는 젖이 가득하며 그의 골수는 윤택하고

25 어떤 사람은 마음에 고통을 품고 죽으므로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도다


26 이 둘이 매 한 가지로 흙 속에 눕고 그들 위에 구더기가 덮이는구나

27 내가 너희의 생각을 알고 너희가 나를 해하려는 속셈도 아노라

28 너희의 말이 귀인의 집이 어디 있으며 악인이 살던 장막이 어디 있느냐 하는구나

29 너희가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묻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의 증거를 알지 못하느냐

30 악인은 재난의 날을 위하여 남겨둔 바 되었고 진노의 날을 향하여 끌려가느니라


31 누가 능히 그의 면전에서 그의 길을 알려 주며 누가 그의 소행을 보응하랴

32 그를 무덤으로 메어 가고 사람이 그 무덤을 지키리라

33 그는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기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보다 앞서 갔으며 모든 사람이 그의 뒤에 줄지었느니라

34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헛되이 위로하려느냐 너희 대답은 거짓일 뿐이니라


*말씀묵상

지금까지 욥의 항변을 보면 친구들의 지적과는 달리 죄인으로서, 혹은 악인으로서 자신을 말하지 않고 있고, 따라서 자신의 허물과 잘못과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사실은 그가 의인이며 죄를 하나도 짓지 않고 살았다는 교만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로 인해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께서 자신의 잘못을 가지고 형벌을 내리시고 고난을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욥과 친구들과의 치열한 공방은 회개의 유무에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빨리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도록 밀어붙였고 욥은 회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일하심이 우리의 모습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잘못하면 벌주고 회개하면 다시 회복시키는 식의 반응을 보이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과 함께 욥은 악인의 형통을 예로 듭니다.

그들이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지를 말합니다. 소발 네가 나를 보며 악인으로 단정하고 있는데 세상에 있는 악인들에게는 왜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없느냐고 묻습니다. 장수, 권세, 자손번성, 평안, 두려움이 없음, 하나님의 징계도 없음, 재산의 번성, 연락을 즐김 등 세상에서 얻고자 하는 것들을 다 가지고 즐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을 부정하며 필요없다고까지 합니다. 자기 스스로 잘 해내고 살고 있으니 전능자도, 기도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욥이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것입니다. 너희들의 말처럼 악인들이 죄값으로 나처럼 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을 더 많이 보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악인들의 미래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대로 늘 하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가 깊이 알 수 없다, 그러니 하나님께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고 욥은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헛된 위로를 하고 있고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선언합니다.

계속 확인한 것이지만 인과율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설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대항하고 거부하며 무시하는 인간적 기준임을 보여 줍니다. 흔히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능력으로 얻어지는 것에 대해 세상은 정당한 가치이며 당연한 기준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아가 거부하는 것이 되는 것일까요? 내가 해 낸 것이 되어 내가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신이 기준이 된 것을 율법주의라고 합니다. 성경은 이 율법주의를 철저하게 배격합니다. 자기의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신자에게 존재와 가치의 기준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있습니다. 죄인을 향한 사랑, 찾아오심, 은혜 베푸심, 구원하심, 십자가 대속 등입니다. 이것이 신자됨을 확인하는, 신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기준입니다. 여기에 인과율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죄인을 사랑하시는데 인과율은 헛된 기준입니다. 인과율에 의하면 죄인은 죄값을 치르던지 죽어야지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은 죄인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 은혜입니다. 성령의 생명의 법이 신자의 기준입니다. 여전히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며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역사가 있는 삶입니다. 이 사실을 늘 기억하며 사시는 하루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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