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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21장

  • 작성자 사진: 주언약교회
    주언약교회
  • 2023년 3월 23일
  • 4분 분량


[말씀읽기]


1 <욥의 대답> 욥이 대답하였다.

2 너희는 내 말을 건성으로 듣지 말아라. 너희가 나를 위로할 생각이면,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그것이 내게는 유일한 위로이다.

3 내게도 말할 기회를 좀 주어라. 조롱하려면, 내 말이 다 끝난 다음에나 해라.

4 내가 겨우 썩어질 육신을 두고 논쟁이나 하겠느냐? 내가 이렇게 초조해하는 데에는, 그럴 이유가 있다.

5 내 곤경을 좀 보아라.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가 막혀 손으로 입을 막고 말 것이다.


6 내게 일어난 일은 기억에 떠올리기만 해도 떨리고, 몸에 소름이 끼친다.

7 어찌하여 악한 자들이 잘 사느냐 ? 어찌하여 그들이 늙도록 오래 살면서 번영을 누리느냐?

8 어찌하여 악한 자들이 자식을 낳고, 자손을 보며, 그 자손이 성정하는 것까지 본다는 말이냐?

9 그들의 가정에는 아무런 재난도 없고, 늘 평화가 깃들며, 하나님마저도 채찍으로 치시지 않는다.

10 그들의 수소는 틀림없이 새끼를 베게 하며, 암소는 새끼를 밸 때마다 잘도 낳는다.


11 어린 자식들은, 바깥에다가 풀어 놓으면, 양 떼처럼 뛰논다.

12 소구와 거문고에 맞춰서 목청을 돋우며, 피리 소리에 어울려서 흥겨워하는구나.

13 그들은 그렇게 일생을 행복하게 살다가, 죽을 때에는 아무런 고통이 없이 조용하게 a)스올에 내려간다. (a. 또는 무덤, 또는 죽음)

14 그런데도 악한 자들은, 자기들을 그냥 좀 내버려 두라고 하나님께 불평을 한다. 이렇게 살면 되지, 하나님의 뜻을 알 필요가 무엇이냐고 한다.

15 전능하신 분이 누구이기에, 그를 섬기며, 그에게 기도한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한다.


16 그들은 자기들의 성공이 자기들 힘으로 이룬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그들의 생각을 용납할 수 없다.

17 악한 자들의 등불이 꺼진 일이 있느냐? 과연 그들에게 재앙이 닥친 일이 있느냐? 하나님이 진노하시어, 그들을 고통에 빠지게 하신 적이 있느냐?

18 그들이 바람에 날리는 검불과 같이 된 적이 있느냐? 폭풍에 날리는 겨와 같이 된 적이 있느냐?

19 너희는 하나님이 아버지의 죄를 그 자식에게 갚으신다 하고 말하지만 그런 말 말아라 ! 죄지은 그 사람이 벌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가 제 죄를 깨닫는다.

20 죄인은 제 스스로 망하는 꼴을 제 눈으로 보아야 하며, 전능하신 분께서 내리시는 진노의 잔을 받아 마셔야 한다.


21 무너진 삶을 다 살고 죽을 때가 된 사람이라면, 제 집에 관해서 무슨 관심이 더 있겠느냐?

22 하나님은 높은 곳에 있는 자들까지 심판하시는 분이신데, 그에게 사람이 감히 지식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 ?

23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도 기력이 정정하다. 죽을 때에도 행복하게, 편안하게 죽는다.

24 평소에 그의 몸은 어느 한 곳도 영양이 부족하지 않으며, 뼈마디마다 생기가 넘친다.

25 그러나 어떤 사람은 행복하고는 거리가 멀다. 고통스럽게 살다가, 고통스럽게 죽는다.


26 그러나 그들 두 사람은 다 함께 티끌 속에 눕고 말며, 하나같이 구더기로 덮이는 신세가 된다.

27 너희의 생각을 내가 다 잘 알고 있다. 너희의 속셈은 나를 해하려는 것이다.

28 너희의 말이 세도 부리던 자의 집이 어디에 있으며, 악한 자가 살던 집이 어디에 있느냐? 한다.

29 너희는 세상을 많이 돌아다닌 견문 넓은 사람들과 말을 해 본 일이 없느냐 ? 너희는 그 여행자들이 하는 말을 알지 못하느냐?

30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아라.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재앙을 내리셔도, 항상 살아 남는 사람은 악한 자라고 한다.


31 그 악한 자를 꾸짖는 사람도 없고, 그가 저지른 대로 징벌하는 이도 없다고 한다.

32 그가 죽어 무덤으로 갈 때에는, 그 화려하게 가꾼 무덤으로 갈 때에는,

33 수도 없는 조객들이 장례 행렬을 따르고, 골짜기 흙마저 그의 시신을 부드럽게 덮어 준다고 한다.

34 그런데 어찌하여 너희는 빈말로만 나를 위로하려 하느냐 ? 너희가 하는 말은 온통 거짓말뿐이다.


[말씀묵상]


지금까지 욥의 항변을 보면 친구들의 지적과는 달리 죄인으로서, 혹은 악인으로서 자신을 말하지 않고 있고, 따라서 자신의 허물과 잘못과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사실은 그가 의인이며 죄를 하나도 짓지 않고 살았다는 교만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로 인해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께서 자신의 잘못을 가지고 형벌을 내리시고 고난을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욥과 친구들과의 치열한 공방은 회개의 유무에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빨리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도록 밀어붙였고 욥은 회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일하심이 우리의 모습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잘못하면 벌주고 회개하면 다시 회복시키는 식의 반응을 보이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과 함께 욥은 악인의 형통을 예로 듭니다.


그들이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지를 말합니다. 소발 네가 나를 보며 악인으로 단정하고 있는데 세상에 있는 악인들에게는 왜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없느냐고 묻습니다. 장수, 권세, 자손번성, 평안, 두려움이 없음, 하나님의 징계도 없음, 재산의 번성, 연락을 즐김 등 세상에서 얻고자 하는 것들을 다 가지고 즐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을 부정하며 필요없다고까지 합니다. 자기 스스로 잘 해내고 살고 있으니 전능자도, 기도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욥이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것입니다. 너희들의 말처럼 악인들이 죄값으로 나처럼 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을 더 많이 보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악인들의 미래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대로 늘 하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가 깊이 알 수 없다, 그러니 하나님께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고 욥은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헛된 위로를 하고 있고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선언합니다.


계속 확인한 것이지만 인과율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설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대항하고 거부하며 무시하는 인간적 기준임을 보여 줍니다. 흔히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능력으로 얻어지는 것에 대해 세상은 정당한 가치이며 당연한 기준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아가 거부하는 것이 되는 것일까요? 내가 해 낸 것이 되어 내가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신이 기준이 된 것을 율법주의라고 합니다. 성경은 이 율법주의를 철저하게 배격합니다. 자기의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신자에게 존재와 가치의 기준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있습니다. 죄인을 향한 사랑, 찾아오심, 은혜 베푸심, 구원하심, 십자가 대속 등입니다. 이것이 신자됨을 확인하는, 신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기준입니다. 여기에 인과율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죄인을 사랑하시는데 인과율은 헛된 기준입니다. 인과율에 의하면 죄인은 죄값을 치르던지 죽어야지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은 죄인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 은혜입니다. 성령의 생명의 법이 신자의 기준입니다. 여전히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며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역사가 있는 삶입니다. 이 사실을 늘 기억하며 사시는 하루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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