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2장

2019년 1월 18일

욥기 22장



*말씀읽기

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2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자기에게 유익할 따름이니라

3 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

4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5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6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7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8 권세 있는 자는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는 거기에서 사는구나

9 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10 그러므로 올무들이 너를 둘러 있고 두려움이 갑자기 너를 엄습하며


11 어둠이 너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고 홍수가 너를 덮느니라

12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냐 보라 우두머리 별이 얼마나 높은가

13 그러나 네 말은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며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랴

14 빽빽한 구름이 그를 가린즉 그가 보지 못하시고 둥근 하늘을 거니실 뿐이라 하는구나

15 네가 악인이 밟던 옛적 길을 지키려느냐


16 그들은 때가 이르기 전에 끊겨 버렸고 그들의 터는 강물로 말미암아 함몰되었느니라

17 그들이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하며 또 말하기를 전능자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실 수 있으랴 하였으나

18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그들의 집에 채우셨느니라 악인의 계획은 나에게서 머니라

19 의인은 보고 기뻐하고 죄 없는 자는 그들을 비웃기를

20 우리의 원수가 망하였고 그들의 남은 것을 불이 삼켰느니라 하리라


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22 청하건대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23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면 네가 지음을 받을 것이며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하리라

24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

25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시며 네게 고귀한 은이 되시리니


26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27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을 네가 갚으리라

28 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치리라

29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30 죄 없는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 네 손이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건지심을 받으리라


*말씀묵상

엘리바스의 세 번째 주장입니다. 욥의 말에 대해 계속해서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라는 충고를 계속하는 중입니다. 같은 내용과 논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세 친구와 욥의 대화에서 많은 사람들이 친구들의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욥은 잘못이 없다고 하고 옆에서 듣자 하니 잘난 척을 하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주장하는 엘리바스의 이야기도 너무도 타당한 내용입니다. 네가 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하나님을 유익하게 하겠느냐? 그리고 지금 너의 모습을 볼 때 그 꼴이 너의 경건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리하신 것인가? 하고 묻습니다. 너의 악이 크고 죄악이 끝이 없는 이유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욥이 잘못했을 것 같은 내용을 나열합니다(6-9절).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았기에 회개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고 말씀을 마음에 두고 전능자에게로 돌아오라는 결론을 맺습니다.

철저한 인과율의 세계관으로 판단하기에 엘리바스는 욥의 삶을 단정적으로 정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욥기 처음에 욥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설명한 내용(1:1,8)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지금의 모습으로 과거의 삶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흔하게 생각하는 방식입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그 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는 식의 말을 합니다. 반대의 상황이 되면 뭔가 잘못했다, 조상의 업보다는 식의 말도 합니다. 하지도 않은 일을 추측하고 가정해서 정죄하는 지경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기를 통해 확인하듯이 이러한 기준과 관점은 하나님의 일하심과 목적, 계획에서 얼마나 어긋나 있는 모습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신자들에게도 많은 사람들이 원리 원칙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것에 어긋나는 것에 대해 용납하지를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정죄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말하지만 그것은 기준에 합당할 때에 한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반면에 원칙주의에 반하여 관용주의로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늘 부족함과 연약함에 대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강조합니다. 잘못한 것이 있어도 용서와 덮어줌으로 먼저 움직이지 비판하며 정죄하는 쪽으로 가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쪽에 서 있습니까? 전자는 물론 엘리바스나 욥의 친구들의 입장입니다. 후자는 욥이 아니라 전자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입장입니다. 욥은 관용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원칙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원칙이 하나님의 일하심에 근거하여 있었기에 정죄하는 쪽으로 기울지 않았던 것입니다.

신자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모습입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은혜가 필요하며 은혜로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렇다고 원칙이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그 원칙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것도 죄인을 향한 주권적인 일하심입니다. 참으로 독특한, 인간의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하심입니다. 인간 입장에서는 놀랍고도 안심이 되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경외심과 찬양이 나오게 됩니다. 욥이 깨닫고 지지하며 스스로를 살피는 이유였습니다. 원칙이 있어야 하고 겸손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가 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과 신뢰로 오늘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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