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4장

2019년 1월 22일

욥기 24장



*말씀읽기

1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

2 어떤 사람은 땅의 경계표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아 기르며

3 고아의 나귀를 몰아 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 잡으며

4 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서 학대 받는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

5 그들은 거친 광야의 들나귀 같아서 나가서 일하며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하니 빈 들이 그들의 자식을 위하여 그에게 음식을 내는구나


6 밭에서 남의 꼴을 베며 악인이 남겨 둔 포도를 따며

7 의복이 없어 벗은 몸으로 밤을 지내며 추워도 덮을 것이 없으며

8 산중에서 만난 소나기에 젖으며 가릴 것이 없어 바위를 안고 있느니라

9 어떤 사람은 고아를 어머니의 품에서 빼앗으며 가난한 자의 옷을 볼모 잡으므로

10 그들이 옷이 없어 벌거벗고 다니며 곡식 이삭을 나르나 굶주리고


11 그 사람들의 담 사이에서 기름을 짜며 목말라 하면서 술 틀을 밟느니라

12 성 중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하시느니라

13 또 광명을 배반하는 사람들은 이러하니 그들은 그 도리를 알지 못하며 그 길에 머물지 아니하는 자라

14 사람을 죽이는 자는 밝을 때에 일어나서 학대 받는 자나 가난한 자를 죽이고 밤에는 도둑 같이 되며

15 간음하는 자의 눈은 저물기를 바라며 아무 눈도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고 얼굴을 가리며


16 어둠을 틈타 집을 뚫는 자는 낮에는 잠그고 있으므로 광명을 알지 못하나니

17 그들은 아침을 죽음의 그늘 같이 여기니 죽음의 그늘의 두려움을 앎이니라

18 그들은 물 위에 빨리 흘러가고 그들의 소유는 세상에서 저주를 받나니 그들이 다시는 포도원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라

19 가뭄과 더위가 눈 녹은 물을 곧 빼앗나니 스올이 범죄자에게도 그와 같이 하느니라

20 모태가 그를 잊어버리고 구더기가 그를 달게 먹을 것이라 그는 다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니 불의가 나무처럼 꺾이리라


21 그는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를 박대하며 과부를 선대하지 아니하는도다

22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능력으로 강포한 자들을 끌어내시나니 일어나는 자는 있어도 살아남을 확신은 없으리라

23 하나님은 그에게 평안을 주시며 지탱해 주시나 그들의 길을 살피시도다

24 그들은 잠깐 동안 높아졌다가 천대를 받을 것이며 잘려 모아진 곡식 이삭처럼 되리라

25 가령 그렇지 않을지라도 능히 내 말을 거짓되다고 지적하거나 내 말을 헛되게 만들 자 누구랴


*말씀묵상

계속되는 욥의 항변입니다. 악한 자들에 대한 고발을 합니다. 왜 이들의 악행이 계속되고 있는가,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그냥 놔두실 것인가, 약한 자들이 당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돌아보시지 않으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무관심하심을 토로하는 내용입니다. 억울한 일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되어지는 상황들 속에서 계속 한탄하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욥의 고통이 실은 모든 신자들에게 있는 내용들입니다.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이해하며 믿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냥 믿음이라는 말로, 은혜라는 말로 넘어가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믿음과 은혜가 악한 세상에서 들어나도록 신자들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느끼며 불합리함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불합리함을 당함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드러내도록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상적인 말이라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지금 악한 자들이 멸망하고 댓가를 치러야 속이 시원하고 하나님이 계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계획하시고 일하시며 드러내시는 것이 상황에 따라, 그것도 상대적으로 선하다고 하는 자들의 형편에 의해 좌우된다면 늘 나 자신만이 기준이 되어 움직이셔야 만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직 하나님만이 이루십니다. 그는 하나님이시며 주관자이십니다. 욥의 하소연에 대해 우리가 공감하더라도 정작 나에게 일이 벌어지면 친구들과 비슷해지거나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정하는 것, 두 가지밖에 없는 것입니다.

18절 이후로 욥은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합니다. 하소연할 때는 언제고 이제 이들은 하나님께서 손을 보실 것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 심판은 현실 속에서 눈에 보이듯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 일어날 하나님의 공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악인의 형통과 그들의 공격을 안고 간다는 말입니다. 인생이 힘들고 어렵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친구들의 기준과 분명 다른 것입니다. 악인이 있다면 욥처럼 망해야 하는 것이 인과율입니다.

그러나 욥은 이들이 반드시 멸망할 것이지만 세상에서 여전히 득세한다는 사실을 보고 있습니다. 모든 신자들이 가지고 살아가야할 중요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자들의 삶을 인도하시며 약속으로 이끄시지만 악인을 제거해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시키시고 당하도록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담에게, 아벨에게, 노아에게, 아브라함에게, 야곱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든 믿음의 선진들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이끄심을 분명하게 확인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결국 십자가를 허락하셨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내셨습니다.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인 것입니다. 죄인은 당연히 욥이나 친구들의 바람처럼 바로 죽든지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도록 하셨고 그들 역시 그대로 심판 때까지 함께 있도록 하셨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마13:30). 증인으로, 하나님의 백성다움으로, 약속을 소유한 자로, 종말을 깨닫고 믿는 자로, 그리고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아는 자로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오늘도 이 사실을 드러내며 기쁨이 넘치는 하루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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