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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26장

2019년 1월 24일

욥기 26장



*말씀읽기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 주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도 구원하여 주는구나

3 지혜 없는 자를 참 잘도 가르치는구나 큰 지식을 참 잘도 자랑하는구나

4 네가 누구를 향하여 말하느냐 누구의 정신이 네게서 나왔느냐

5 죽은 자의 영들이 물 밑에서 떨며 물에서 사는 것들도 그러하도다


6 하나님 앞에서는 스올도 벗은 몸으로 드러나며 멸망도 가림이 없음이라

7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

8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9 그는 보름달을 가리시고 자기의 구름을 그 위에 펴시며

10 수면에 경계를 그으시니 빛과 어둠이 함께 끝나는 곳이니라


11 그가 꾸짖으신즉 하늘 기둥이 흔들리며 놀라느니라

12 그는 능력으로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며 지혜로 라합을 깨뜨리시며

13 그의 입김으로 하늘을 맑게 하시고 손으로 날렵한 뱀을 무찌르시나니

14 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


*말씀묵상

빌닷의 충고에 대해 욥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비아냥거립니다. 힘없는 자, 기력 없는 팔, 지혜없는 자로 자신을 비하하면서 그런 자에게 참으로 똑똑한 말을 하는데 그게 하나도 의미가 없는,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소리임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나서 5절부터 욥은 하나님의 창조주되심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러한 욥의 주장은 빌닷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빨리 무릎을 꿇고 회개하라는 충고에 분명한 자기 의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느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이 다스리시는 세상이다, 그 속에는 엄청난 역사들이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지식을 넘어서는 일들이 있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의 잘못이나 행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훨씬 더 큰 하나님의 섭리로 이끄시고 계시다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둘의 주장이 비슷한 이유를 얘기하고 있지만 그 기준과 적용에 있어서 완전히 상반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온전하신 분인데 너에게 일어난 일이 괜히 일어난 것이 아니다는 주장에 반해 욥은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해서 일어나는 일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이 더 크고 깊은 것이 있다는 데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아무리 봐도 잘못을 가지고 징벌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욥기의 전제가 의인인 모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에게 원인이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욥은 이 사실을 알아가고 있는 상황이고 친구들은 경험하지 않았으니 자신들의 사고와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욥도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신의 상황 속에서 구름잡듯이 헤매고 있는 중입니다. 단지 인과응보의 법칙으로 일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중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일하심이 기계적일 수는 없습니다. 욥기가 가르치려고 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신론(理神論, Deism)이라는 사상이 있습니다. 세상을 창조한 신이 세상의 법칙대로 움직이도록 하고 떠나 있는 신관입니다. 인본주의의 바탕이 되는 철학사상입니다. 세상은 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고 인과율에 의해 모든 결과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 원칙을 잘 알아 살아가는 것이 지혜이며 능력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분명 일하신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능력과 지혜로 세상의 원리를 많이 안다 한들 다 파악된 것이 아닙니다. 욥이 설명하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친구들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14절에 자연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에 대한 엄청난 지혜도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며 그것도 속삭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조금 깨우친 것이라는 말입니다. 누가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헤아리겠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을 누구도 잘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흔히 이 알 수 없다는 사실로 기독교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맹신한다는 것이죠. 무식하게 믿는다고 합니다. 인과율에 붙잡혀 내 안에 하나님을 가두고 있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롬11:33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모르는 것이 비판이나 책망의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며 높이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미련함이 있지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훼손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찬양과 감사와 경배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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