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읽기]
1 <세 친구에 대한 욥의 대답> 욥이 비유로 말하였다.
2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다. 그분께서 나를 공정한 판결을 받지 못하게 하시며,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몹시 괴롭게 하신다.
3 내게 호흡이 남아 있는 동안은, 하나님이 내 코에 불어 넣으신 숨결이 내 코에 남아 있는 한,
4 내가 입술로 결코 악한 말을 하지 않으며, 내가 혀로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
5 나는 결코 너희가 옳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죽기까지 내 결백을 주장하겠다.
6 내가 의롭다고 주장하면서 끝까지 굽히지 않아도, 내 평생에 양심에 꺼림칙한 날은 없을 것이다.
7 내 원수들은 악한 자가 받는 대가를 받아라. 나를 대적하는 자는 악인이 받을 벌을 받아라.
8 하나님이 경건하지 않은 자의 생명을 끊고, 그의 영혼을 불러 가실 때에, 그의 희망이란 과연 무엇이겠느냐?
9 환난이 그에게 닥칠 때에, 하나님이 그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시겠느냐?
10 그들은 전능하신 분께서 주시는 기쁨을 사모했어야 했고, 그분께 기도했어야 했다.
11 날더러는 하나님의 응답이 얼마나 큰지 가르치라고 해 보아라. 전능하신 분께서 계획하신 바를 설명하라고 해 보아라.
12 그러나 그만 두겠다. 이런 일은 너희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그처럼 터무니없는 말을 하느냐?
13 a)하나님이 악한 자에게 주시는 벌이 무엇인지, 전능하신 분께서 폭력을 행하는 자에게 주시는 벌이 무엇인지 아느냐 ? (a. 13-23절에 소발의 이름이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소발의 말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음)
14 비록 자손이 많다 해도, 모두 전쟁에서 죽고 말 것이다. 그 자손에게는 배불리 먹을 것이 없을 것이다.
15 살아 남은 사람은 또 염병으로 죽어 매장되니, 살아 남은 과부들은 기가 막혀서 울지도 못할 것이다.
16 돈을 셀 수도 없이 긁어 모으고, 옷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아도,
17 엉뚱하게도 의로운 사람이 그 옷을 입으며, 정직한 사람이 그 돈더미를 차지할 것이다.
18 악한 자들이 지은 집은 거미집과 같고 발을 지키는 일꾼의 움막과 같다.
19 부자가 되어서 잠자리에 들지만, 그것으로 마지막이다. 다음날에는 눈을 떠 보면, 이미 알거지가 되어 있다.
20 두려움이 홍수처럼 그들에게 들이닥치며, 폭풍이 밤중에 그들을 쓸어 갈 것이다.
21 동풍이 불어와서 그들을 그 살던 집에서 쓸어 갈 것이다.
22 도망치려고 안간힘을 써도, 동쪽에서 오는 폭풍이 사정없이 불어 닥쳐서, 그들을 날려 버릴 것이다.
23 도망 가는 동안에 폭풍이 불어 닥쳐서, 무서운 파괴력으로 그들을 공포에 떨게 할 것이다.
[말씀묵상]
욥의 대답이 31장까지 길게 이어집니다. 세 친구들의 책망이나 조언은 더 이상 없습니다. 포기한 듯한 인상이 듭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이듯이 욥은 자신의 정당성과 온전함을 계속 주장합니다. 자신의 말에 거짓이 없고 불의가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마음에서 나오는 내용이 하나님에 대한 이상한 고백입니다. 자신의 정당함을 물리치시고 영혼을 괴롭히신 하나님인데 전능자라는 고백을 합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그의 백성에게 있는 고난과 아픔을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전능하심에 대한 이해가 하나님의 일하심이 기준이 아니라 나의 상황과 나의 만족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의 고백은 자신의 상황이 분명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온 우주를 섭리하시고 이끄시는데 불합리함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이 고백을 분명하게 하기 위한 고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인되심, 그의 신실하신 일하심, 모든 것이 그의 뜻하심과 목적하심에 따라 인도됨을 깨닫고 믿고 의지하는 것이 그의 백성들에게 있을 뿐입니다.
물론 지금 욥은 이런 하나님에 대해 고백하지만 답을 찾지 못해서 마지못해 하는 고백입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모습에 대해 의문을 갖습니다. 인과율로 공격하는 친구들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그렇게 일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하지만, 나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원인이나 이유를 알 수 없기에 괴로움 역시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된 것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신앙 생활에서 이 당연함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만족할 때만 하나님께 영광이지 불편하고 엉키고 답답할 때는 하나님께 원망이 없으면 다행입니다. 아담으로부터 고난은 필연적으로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필연적이지만 신자들에게는 수동적 필연이 아닌 사명적 필연으로 감당하게 됩니다. 사명적이라고 뭔가 해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고난을 통하여 자신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욥이 그 과정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의 인생은 신자가 만들어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의 뜻과 목적을 향하여 이끄십니다. 때로 후회, 한탄, 분노 등이 있기도 합니다. 좌절과 실패도 경험하게 하십니다. 죄인의 본성적 삶을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항상 함께 하시면서 인도하신다는 것이 성경이 보여주는 약속입니다. 야곱이 사기를 치고 도망할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약속을 주십니다. 돌아올 때까지 떠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이 약속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사기를 쳐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두려워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경고와도 같습니다.
지금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인가요? 뭔가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나요? 괴롭게 하시는 전능자를 의지하십시오. 그분이 약속을 이루시는 중이며 그 속에서 자신을 알고 하나님 앞에 항복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오늘도 이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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