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2장

2019년 2월 1일

욥기 32장



*말씀읽기

1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이 말을 그치니

2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화를 내니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3 또 세 친구에게 화를 냄은 그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함이라

4 엘리후는 그들의 나이가 자기보다 여러 해 위이므로 욥에게 말하기를 참고 있다가

5 세 사람의 입에 대답이 없음을 보고 화를 내니라


6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연소하고 당신들은 연로하므로 뒷전에서 나의 의견을 감히 내놓지 못하였노라

7 내가 말하기를 나이가 많은 자가 말할 것이요 연륜이 많은 자가 지혜를 가르칠 것이라 하였노라

8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9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내 말을 들으라 나도 내 의견을 말하리라


11 보라 나는 당신들의 말을 기다렸노라 당신들의 슬기와 당신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노라

12 내가 자세히 들은즉 당신들 가운데 욥을 꺾어 그의 말에 대답하는 자가 없도다

13 당신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진상을 파악했으나 그를 추궁할 자는 하나님이시요 사람이 아니라 하지 말지니라

14 그가 내게 자기 이론을 제기하지 아니하였으니 나도 당신들의 이론으로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리라

15 그들이 놀라서 다시 대답하지 못하니 할 말이 없음이었더라


16 당신들이 말 없이 가만히 서서 다시 대답하지 아니한즉 내가 어찌 더 기다리랴

17 나는 내 본분대로 대답하고 나도 내 의견을 보이리라

18 내 속에는 말이 가득하니 내 영이 나를 압박함이니라

19 보라 내 배는 봉한 포도주통 같고 터지게 된 새 가죽 부대 같구나

20 내가 말을 하여야 시원할 것이라 내 입을 열어 대답하리라


21 나는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아니하며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리니

22 이는 아첨할 줄을 알지 못함이라 만일 그리하면 나를 지으신 이가 속히 나를 데려가시리로다


*말씀묵상

욥의 네 번째 친구인 엘리후가 갑자기 나타나서 욥과 세 친구를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본 장에서는 엘리후의 주장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의 대화가 진행되지 않음을 보고 분노의 연설을 시작하게 됩니다. 자신이 가장 연소하여 감히 대화에 끼어들지 못했는데 전능자께서 깨달음을 주시니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누구의 편을 들지도 않을 것이고 아첨하는 말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우선 엘리후의 등장으로 잠잠하던 분위기가 다시 활기를 띠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연설에 대해 욥도 세 친구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엘리후의 연설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그도 세 친구들과 같이 욥을 괴롭히는 정도의 사람인지, 아니면 엘리후의 연설 뒤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는데 이것을 예비하도록 하는 사람인지 이해가 엇갈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엘리후는 세 친구들과 분명하게 관점이 다르게 책망하는 것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그의 주장을 통하여 정확한 답을 얻는 것이기 보다는 고난과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를 얻도록 한다는 사실입니다. 엘리후의 연설은 꽤 길게 되어 있습니다. 37장까지인데 주제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인도하심은 분명한 의미와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육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어떤 의미가 고난 가운데 있다는 말입니다. 세 친구들의 관점과는 분명 다른 이해입니다.

무조건 죄를 지었고 그것을 회개하면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인과율로 일관하던 세 친구들로부터 벗어난 이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욥이 스스로 의롭다고 우기는 모습에 대해 화를 내며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려는 것은 엘리후 역시 자신의 의에 기준이 되어 있는 모습임을 보여 줍니다. 나이 많은 자가 말하고 연륜이 많은 자가 지혜를 가르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았다고 합니다. 자기가 보기에 나이가 많은 욥과 친구들이 어리석어 보였던 것입니다. 자기가 욥을 꺾고 하나님 앞에 굴복하도록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친구들이 욥을 설득할 수 없다고 포기한 것에 대해서도 책망을 합니다. 사람은 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것 같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13절). 그러면서 자기는 당신들의 이론으로, 기준으로 말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자기 안에 있는 영(성령)이 강권하는 대로 말하겠다고 합니다(18절). 그리고 낯을 보고 판단하지 않고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겠다고 합니다(21절). 이렇게 엘리후는 앞의 세 친구들의 기준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합니다.

이러한 엘리후의 연설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물론 엘리후의 말이 전부 옳다는 것으로 받아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계속 살피겠지만 그의 주장이 욥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앞의 친구들과 관점은 다르지만 그도 역시 옳은 말을 할 뿐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말들이 다 옳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옳다는 것이 해답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기준과 관점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사건과 환경보다 훨씬 위에서 크고 넓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 안에 있는데 내 앞의 상황과 내 경험만으로 판단하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어리석음이 인간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32장에서 보이는 엘리후의 모습은 또 하나의 도전같아 보입니다. 욥이 다시 감당하며 감래해야 할 것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금 위에서 웃으시며 바라보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 풍성함과 너그러움과 품어주심을 생각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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