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3장

2019년 2월 2일

욥기 33장



*말씀읽기

1 그런즉 욥이여 내 말을 들으며 내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노라

2 내가 입을 여니 내 혀가 입에서 말하는구나

3 내 마음의 정직함이 곧 내 말이며 내 입술이 아는 바가 진실을 말하느니라

4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5 그대가 할 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


6 나와 그대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

7 내 위엄으로는 그대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손으로는 그대를 누르지 못하느니라

8 그대는 실로 내가 듣는 데서 말하였고 나는 그대의 말소리를 들었느니라

9 이르기를 나는 깨끗하여 악인이 아니며 순전하고 불의도 없거늘

10 참으로 하나님이 나에게서 잘못을 찾으시며 나를 자기의 원수로 여기사


11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하였느니라

12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그대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

13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여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

14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

15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16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17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18 그는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시느니라

19 혹은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20 그의 생명은 음식을 싫어하고 그의 마음은 별미를 싫어하며


21 그의 살은 파리하여 보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던 뼈가 드러나서

22 그의 마음은 구덩이에, 그의 생명은 멸하는 자에게 가까워지느니라

23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

24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25 그런즉 그의 살이 청년보다 부드러워지며 젊음을 회복하리라


26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의 공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27 그가 사람 앞에서 노래하여 이르기를 내가 범죄하여 옳은 것을 그르쳤으나 내게 무익하였구나

28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29 실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30 그들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이끌어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심이니라


31 욥이여 내 말을 귀담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말하리라

32 만일 할 말이 있거든 대답하라 내가 기쁜 마음으로 그대를 의롭다 하리니 그대는 말하라

33 만일 없으면 내 말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지혜로 그대를 가르치리라


*말씀묵상

이제 엘리후의 본격적인 책망이 시작됩니다. 이미 욥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고 있다는 지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참다 참다 하도 잘난 척을 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는 지적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내가 무슨 뛰어나거나 잘나서 지금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나도 똑같은 존재라고 선을 긋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움직이심으로 말하는 것이다, 만일 할 말이 있거든 얼마든지 하라, 내가 위엄으로 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등등 자신이 잘나서 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엘리후의 반응도 결국은 자신이 욥보다 의롭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되고 맙니다. 세 친구들이 욥을 판단했던 기준이 인과율이었다면 지금 엘리후는 비록 인과율은 아니지만 경험주의 내지는 신비주의를 가지고 욥을 책망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나의 이야기는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물론 경험된 것이기에 훨씬 더 강한 설득력과 간절함이 있겠지만 이 역시 욥의 당한 고난을 설명하며 해결하기에는 먼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32장에서도 그는 가만히 있지 못하겠다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8, 18-20절). 33장에서도 내 말을 들으라면서 말을 하는 것을 봅니다. 대단한 열정으로 말을 한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문제는 이것 역시 욥을 지적하는 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맙니다.

욥이 불평한 내용을 말하면서 이러한 너의 모습은 하나님의 크심, 넓으심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12절). 하나님께서 대답하지 않으신다고 논쟁하려는 것도 어리석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침상에서, 꿈이나 환상으로, 귀를 여시고 경고로 들리게도 하십니다. 즉 다양한 방식으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절대 하나님께 원망하지 말아라, 너의 부족과 미련함이 있을 뿐이라고 충고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엘리후의 모습은 세 친구들처럼 대단한 진리를 말하는 것 같았지만 정작 고난을 당하는 욥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물론 세 친구들과는 좀 다른 면들을 생각하도록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내용 중에 인간의 생각과는 다르시다는 사실(12절),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을 깨닫게 하신다는 사실(17절), 대속을 통하여 긍휼을 베푸신다는 사실(24절) 등입니다.

우선 이 엘리후의 말 자체는 너무도 당연하며 옳은 내용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와 너무 다르시며 다양하게 그의 뜻을 깨닫도록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한 교훈으로 받을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욥이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욥이 그것을 하소연하는 것입니다. 실은 수많은 신자들이 겪는 고난이 그러한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도저히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서 하나님의 뜻은 나보다 크고 여러 방면으로 알려 주실 거야라고 한다면 별 의미없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뭔가 뜻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있는 막연한 것이 아니라 욥을 향한 관심과 긍휼과 은혜가 여전히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전제가 있습니다. 욥을 사탄에게 내어 놓으신 것이 골탕을 먹이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욥을 붙잡고 계심을 확인하는 계기였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말입니다. 욥이 이 사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헤매는 중인 것입니다. 엘리후나 세 친구들은 이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창세전 언약으로 자기 아들 삼으신 것을 이 역사 속에서 확인하도록 하신 것이 바로 고난입니다. 가나안을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것은 애굽의 종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종되었던 사실은 약속이 근거가 되어 있기에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근거가 되는 사건입니다. 욥의 고난은 그가 하나님과 관계가 바르게 되어있던 자였음을 확인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지금 존재하는 신자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과정인 것입니다. 이 믿음과 기준으로 오늘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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