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9장

2019년 2월 12일

욥기 39장



*말씀읽기

1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이 새끼 낳는 것을 네가 본 적이 있느냐

2 그것이 몇 달 만에 만삭되는지 아느냐 그 낳을 때를 아느냐

3 그것들은 몸을 구푸리고 새끼를 낳으니 그 괴로움이 지나가고

4 그 새끼는 강하여져서 빈 들에서 크다가 나간 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아니하느니라

5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6 내가 들을 그것의 집으로, 소금 땅을 그것이 사는 처소로 삼았느니라

7 들나귀는 성읍에서 지껄이는 소리를 비웃나니 나귀 치는 사람이 지르는 소리는 그것에게 들리지 아니하며

8 초장 언덕으로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푸른 풀을 찾느니라

9 들소가 어찌 기꺼이 너를 위하여 일하겠으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10 네가 능히 줄로 매어 들소가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써레를 끌겠느냐


11 그것이 힘이 세다고 네가 그것을 의지하겠느냐 네 수고를 그것에게 맡기겠느냐

12 그것이 네 곡식을 집으로 실어 오며 네 타작 마당에 곡식 모으기를 그것에게 의탁하겠느냐

13 타조는 즐거이 날개를 치나 학의 깃털과 날개 같겠느냐

14 그것이 알을 땅에 버려두어 흙에서 더워지게 하고

15 발에 깨어질 것이나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16 그 새끼에게 모질게 대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그 고생한 것이 헛되게 될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나니

17 이는 하나님이 지혜를 베풀지 아니하셨고 총명을 주지 아니함이라

18 그러나 그것이 몸을 떨쳐 뛰어갈 때에는 말과 그 위에 탄 자를 우습게 여기느니라

19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20 네가 그것으로 메뚜기처럼 뛰게 하였느냐 그 위엄스러운 콧소리가 두려우니라


21 그것이 골짜기에서 발굽질하고 힘 있음을 기뻐하며 앞으로 나아가서 군사들을 맞되

22 두려움을 모르고 겁내지 아니하며 칼을 대할지라도 물러나지 아니하니

23 그의 머리 위에서는 화살통과 빛나는 창과 투창이 번쩍이며

24 땅을 삼킬 듯이 맹렬히 성내며 나팔 소리에 머물러 서지 아니하고

25 나팔 소리가 날 때마다 힝힝 울며 멀리서 싸움 냄새를 맡고 지휘관들의 호령과 외치는 소리를 듣느니라


26 매가 떠올라서 날개를 펼쳐 남쪽으로 향하는 것이 어찌 네 지혜로 말미암음이냐

27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따름이냐

28 그것이 낭떠러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 데 살며

29 거기서 먹이를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며

30 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있느니라


*말씀묵상

앞장 39절부터 오늘 읽은 39장 마지막까지 자연 속의 동물들을 예로 들면서 욥에게 그것들의 신비함을 묻고 답하시는 형식으로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38:39-40절은 사자, 41절은 까마귀, 39장에서는 산 염소, 들나귀, 들소, 타조, 말, 매와 독수리를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동물들의 삶의 내용을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능력은 전능하심을 보여 주시기 위함일까요? 물론 이러한 내용들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드러내는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욥에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설명하므로 깨닫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이 전능하심은 능력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원래 그런 분이십니다. 창조자이십니다. 창조 세계가 그가 만드신 대로 움직입니다. 그것을 섭리하시며 이끄십니다.

동물의 삶이 등장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드러내시기 위함보다도 그것들의 신비로운 삶이 욥에게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들이 저절로 아무런 계획이나 체계가 없이 이루어지는 장면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산 염소의 임신 날 수를 세고 계시며, 자유로운 들나귀나 들소가 결코 인간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지만 먹을 것을 잘 먹고 살고 있으며, 모두가 다 자신들의 삶의 지혜로 잘 살아가고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끄시며 살도록 하셨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답변은 욥의 항변에 대한 답변을 주신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러한 고난 속에서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는 말인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따지고 싶다고 했었습니다(31:35). 자신의 답답함을 풀어주시지 않았다는 불만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욥의 모습에 대해 자연계에 있는 동물들의 기이한 삶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들의 삶이 이해가 되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타조가 알을 낳고 아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지 않은 이유라고 하십니다. 말이 자기 죽을 것을 생각지도 않고 탄 자의 명령을 따라 적진을 향해 간다는 사실, 독수리가 높은 낭떠러지 같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들며 새끼들은 시체를 먹는다는 사실들이 누군가 능력있는 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모습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심어 주신 삶의 모습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어떠한 외부적인 개입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섭리만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만을 위해 사는 것 같지만 주어진 한도와 환경 내에서 존재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원리 내에서 통치를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다스림에서 벗어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모습, 상상할 수 없는 모습들 조차도 정해진 그 자리, 정도, 가치가 그대로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은 하나님의 원칙과 원리와 계획 속에서 움직이신 내용입니다. 그래서 그의 목적하심과 뜻하심만 이루어진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과 불합리와 답답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욥의 모습, 신자들의 모습, 그리고 나의 모습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나님 나라 백성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은 죄인들로서 하나님의 주권 하에 각자의 자리와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다스림 속에서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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