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읽기]
1 <엘리바스의 첫 번째 발언>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였다.
2 누가 네게 말을 걸면 너는 짜증스럽겠지.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참을 수가 없다.
3 생각해 보아라. 너는 전에 많은 사람을 가르치기도 하고, 힘없는 자들의 두 팔을 굳세게 붙들어 주기도 했으며,
4 쓰러지는 이들을 격려하여 일어나게도 하고, 힘이 빠진 이들의 무릎을 굳게 붙들어 주기도 했다.
5 이제 이 일을 정작 네가 당하니까 너는 짜증스러워하고, 이 일이 정작 네게 닥치니까 낙담하는구나!
6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네 믿음이고, 온전한 길을 걷는 것이 네 희망이 아니냐?
7 잘 생각해 보아라. 죄 없는 사람이 망한 일이 있더냐 ? 정직한 사람이 멸망한 일이 있더냐?
8 내가 본 대로는, 악을 갈아 재난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더라.
9 모두 하나님의 입김에 쓸려 가고, 그의 콧김에 날려 갈 것이다.
10 사자의 울부짖은도 잠잠해지고, 사나운 사자의 울부짖음도 그치는 날이 있다. 힘센 사자도 이빨이 부러진다.
11 사자도, 늙어서 먹이를 잡지 못하면, 어미를 따르던 새끼 사자들이 뿔뿔리 흩어진다.
12 한번은 조용한 가운데 어떤 소리가 들려 오는데, 너무도 조용하여 겨우 알아들었다.
13 그 소리가 악몽처럼 나를 괴롭혔다.
14 두려움과 떨림이 나를 엄습하여, 뼈들이 막 흔들렸다.
15 어떤 영이 내 앞을 지나가니,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16 영이 멈추어 서기는 했으나 그 모습은 알아볼 수 없고, 형체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는데, 죽은 듯 조용한 가운데서 나는 이런 소리를 들었다.
17 인간이 하나님보다 의로울 수 있겠으며, 사람이 창조주보다 깨끗할 수 있겠느냐?
18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당신의 종들까지도 믿지 않으시고, 천사들에게마저도 허물이 있다고 하시는데,
19 하물며, 흙으로 만든 몸을 입고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사람이겠느냐?
20 사람은, 아침에는 살아 있다가도, 저녁이 오기 전에 예고도 없이 죽는 것, 별수없이 모두들 영원히 망하고 만다.
21 생명 줄만 끊기면 사람은 그냥 죽고 그 줄이 끊기면 지혜를 찾지 못하고 죽어간다.
[말씀묵상]
욥의 고난으로 친구들이 찾아왔지만 그 정도가 심해서 말도 붙여보지 못한 채 일주일이 지나게 됩니다. 겨우 욥이 입을 열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자 첫 번째로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을 하게 됩니다. 먼저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가지고 욥을 반박합니다. 죄없이 망한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을 합니다. 욥이 지금의 상황에 대해 뭔가 잘못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주장은 자신이 영적 경험을 하면서 얻은 사실을 가지고 반박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누구도 깨끗한 자가 없다고 합니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는 의롭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의 종도 천사도 부족한 자들로 여겨집니다. 누구도 자신이 행한 만큼 얻게 되고 아무리 옳다 한들 하나님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존재들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욥에게 너 자신을 잘 살펴 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결코 아무 잘못이 없이 이럴 리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당연히 엘리바스의 말을 맞는 이야기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며 하나님 앞에서 누구도 의롭다 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인과응보의 기준을 가지고 신앙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늘 그러한 세상적인 원리에 의해 판단되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방법이 그렇지 않고 의롭다 여기시는 기준도 그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 욥에게 일어난 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결과이지 그가 어떠한 원인도 제공하지 않았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사단의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도 드러내시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와의 관계가 결코 원인과 결과로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보여 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우리가 1-2장을 알고 있고 결론을 알기에 말할 수 있는 내용이지 그것이 없이 현실에서 닥친 상황이라면 결코 간단한 내용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을 믿고 인정한다고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고 욥과 같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삶은 무언가 해야 하는,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그랬다고 모든 것이 완전하게 만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온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밝히며 욥의 죄악에 대해 드러내고자 하지만 욥은 자신의 모습에 대해 그렇지 않음을 항변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기준으로 삶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엘리바스와 욥과의 모습은 신자들 사이에서도 늘 일어나는 모습니다. 신앙적인 모습에 대해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것들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의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백성이며 자녀라는 것입니다. 하지 않으면 원수입니다. 당연히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백성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러한 모습을 보인다고 하나님의 징계가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닌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엘리바스의 충고와 위로는 바르지 않으며 욥으로 하여금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누구나 엘리바스의 충고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이유나 원인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이 시작하셨고 그분이 완성하실 것입니다. 신자의 운명은 주님께 있습니다. 오늘도 그만을 의지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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