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5장

2018년 12월 18일

욥기 5장



*말씀읽기

1 너는 부르짖어 보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2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3 내가 미련한 자가 뿌리 내리는 것을 보고 그의 집을 당장에 저주하였노라

4 그의 자식들은 구원에서 멀고 성문에서 억눌리나 구하는 자가 없으며

5 그가 추수한 것은 주린 자가 먹되 덫에 걸린 것도 빼앗으며 올무가 그의 재산을 향하여 입을 벌리느니라


6 재난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고생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라

7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

8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9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10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며


11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애곡하는 자를 일으키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느니라

12 하나님은 교활한 자의 계교를 꺾으사 그들의 손이 성공하지 못하게 하시며

13 지혜로운 자가 자기의 계략에 빠지게 하시며 간교한 자의 계략을 무너뜨리시므로

14 그들은 낮에도 어두움을 만나고 대낮에도 더듬기를 밤과 같이 하느니라

15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강한 자의 칼과 그 입에서, 또한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주시나니


16 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희망이 있고 악행이 스스로 입을 다무느니라

17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18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19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20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의 위협에서 너를 구원하실 터인즉


21 네가 혀의 채찍을 피하여 숨을 수가 있고 멸망이 올 때에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22 너는 멸망과 기근을 비웃으며 들짐승을 두려워하지 말라

23 들에 있는 돌이 너와 언약을 맺겠고 들짐승이 너와 화목하게 살 것이니라

24 네가 네 장막의 평안함을 알고 네 우리를 살펴도 잃은 것이 없을 것이며

25 네 자손이 많아지며 네 후손이 땅의 풀과 같이 될 줄을 네가 알 것이라


26 네가 장수하다가 무덤에 이르리니 마치 곡식단을 제 때에 들어올림 같으니라

27 볼지어다 우리가 연구한 바가 이와 같으니 너는 들어 보라 그러면 네가 알리라


*말씀묵상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입니다. 아무리 자신의 옳음을 주장한다 한들 거룩한 자 중에 대답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미련한 자의 집이 잘되는 것을 본 적이 없고 고난과 재난이 아무 이유없이 일어나는 적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반드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지금 엘리바스는 욥에게 일어난 참담한 상황이 전적으로 욥 자신으로부터 원인이 되어 일어났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너무도 일반적이며 모든 인간이 자신을 바라보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나에게 어떤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돌아봄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이나 잘못 등을 확인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정말 그런가요? 모든 일에 자신의 행동이 선악 간에 원인이 되었나요? 인생이 자신에게 달려 있나요?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입니다. 내 인생 내가 책임지며 내 삶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능력이 없으면 도태되고 힘이 없으면 굴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나 하기 나름입니다. 한편 일리가 있지만 분명 성경적인 시각과 기준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세계관에서는 절대적으로 틀린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성경과 완전히 대치되는 내용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했고 하나님을 떠나 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인간은 무능하며 선을 알 수도, 행할 수도 없는 존재임을 말합니다. 따라서 인간이 행함으로 얻어내는 것은 오직 죄악밖에 없습니다. 죄악을 행하였기에 형벌을 받게 된 것이 아니라 원래의 자리가 형벌의 자리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스스로 원인이 되어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에리바스는 이 사실을 가지고 말하지 않습니다. 악을 행해서 그 결과가 나왔다, 만일 선을 행했다면 그러지 않았다는 인과율로 욥을 판단한 것입니다. 욥기가 이 사실을 무시한 채 시작되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의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로부터는 인과율로 말미암은 형벌이 주어질 수 없는 자였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에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기준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인간을 기준으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만이 기준이시며 그의 뜻대로 일하십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엘리바스가 욥에게 하나님을 찾고 의탁하라는 충고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유는 그를 찾는 자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도 분명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의지하는 것은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의지하면 복을 주시는 분이기에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바스의 말은 다 맞는 말인데 기준이 틀렸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신자들의 기준과 생각과 말이 이럴 수 있습니다. 다 하는 말이 옳은데 목적과 수단이 인간적인 것입니다. 신자는 삶의 모습과 나타난 현상으로 판단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 것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얻을 목적으로 내가 이렇게 행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일하심과 계획하심만이 이루어지고 그 가운데 신자들이 사용될 뿐입니다. 하나님의 원하심이 무엇인가, 그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순종할 뿐입니다. 징계라 생각되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순종은 목적을 갖지 않은 행위입니다. 하나님이시기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오늘도 순종하는 하루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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