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7장

2018년 12월 20일

욥기 7장



*말씀읽기

1 이 땅에 사는 인생에게 힘든 노동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그의 날이 품꾼의 날과 같지 아니하겠느냐

2 종은 저녁 그늘을 몹시 바라고 품꾼은 그의 삯을 기다리나니

3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4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까, 언제나 밤이 갈까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

5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덩이가 의복처럼 입혀졌고 내 피부는 굳어졌다가 터지는구나


6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희망 없이 보내는구나

7 내 생명이 한낱 바람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하리이다

8 나를 본 자의 눈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9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스올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10 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


11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

12 내가 바다니이까 바다 괴물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13 혹시 내가 말하기를 내 잠자리가 나를 위로하고 내 침상이 내 수심을 풀리라 할 때에

14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라게 하시고 환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

15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16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

17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18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19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20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21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거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애써 찾으실지라도 내가 남아 있지 아니하리이다


*말씀묵상

욥의 답변이 계속됩니다. 그러나 내용은 엘리바스의 지적에 대한 답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항변입니다. 10절까지는 자신의 고통받는 현실에 대해 잠을 이루지 못하며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시간을 보내는 신세를 한탄합니다. 11절부터 이러한 영혼의 아픔으로 인해 하나님께 하소연하기 시작합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황, 그것도 모든 것을 잃고 절망적인 상황으로 느낄 때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욥과 같이 생을 끝내게 해달라고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야 할까요? 무언가 특별하게 나타나야만 할까요? 이렇게 살 바에야 죽는 것이 낫다는 말은 불신자들도 하는 내용입니다. 그들의 주된 삶의 기준이기도 합니다. 신자들이 그러한 기준일 수는 없습니다.

욥의 이러한 항변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것이지만 답이 없거나 삶이 의미가 없다고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아닙니다. 인생이 늘 남들보다 나은, 높은, 가치 있는, 우러러보는, 본이 되는 것으로 정의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더라도 그러한 목적을 추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에게 있어서 인생은 하나님의 인도와 계획과 목적에 붙잡혀 있는 자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의 모습과 과정과 결과에 의해 판단되는 자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떠한 모습과 과정과 결과가 있다 하더라도 그의 삶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모습이며 계획하신 결과이며 목적이 이루어진 삶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이 착각하고 오해하는 부분이 삶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맞지 않는 것같이 느껴질 때입니다. 다시 말해서 삶의 모습에 대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 실패, 아픔, 어려움 등에 대해 세상의 기준으로 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잘못 믿었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다, 뭔가 열심을 내지 않았다 등의 욥의 친구들과 같은 판단을 해 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욥의 고난은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 절대적 고난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살에 구더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시체와 같이 죽은 상태임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어떠한 상황이라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때는 어떤 다른 위로나 방법이나 길이 없어 보일 것입니다. 욥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 밖에 없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나를 놔달라고 합니다(16절). 이런 하소연 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입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뭘 해야 하는 상황일까요? 친구들의 모함(?)과 이유를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붙잡고 계심만 있는 상황입니다. 신자들의 현실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것을 감당해 내야한다는 말입니다. 안고 가야 하는 자들입니다. 결론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놔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벗어나게도 않으시고 없애주지도 않으십니다. 죽게도, 편하게도 하지 않으십니다. 이 상황에서 욥은 기가 막힌 고백을 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를 크게 만드시고 마음을 두시고 권징하며 단련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8편의 고백입니다. 고백의 배경은 좀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붙잡고 계시는 가치있는 인생이라는 점에서 같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를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붙잡고 있는 삶, 그의 인도하심으로 이끌리는 삶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코 그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과 과정이 절망적으로 보여도, 답이 없는 것 같아도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나 자신을 두고 같은 질문을 해 봅니다. ‘제가 그리도 대단한 자인가요?’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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