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9장

2018년 12월 22일

욥기 9장



*말씀읽기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3 사람이 하나님께 변론하기를 좋아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

4 그는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그를 거슬러 스스로 완악하게 행하고도 형통할 자가 누구이랴

5 그가 진노하심으로 산을 무너뜨리시며 옮기실지라도 산이 깨닫지 못하며


6 그가 땅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시니 그 기둥들이 흔들리도다

7 그가 해를 명령하여 뜨지 못하게 하시며 별들을 가두시도다

8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9 북두성과 삼성과 묘성과 남방의 밀실을 만드셨으며

10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


11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움직이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12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하고 누가 물을 수 있으랴

13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시나니 라합을 돕는 자들이 그 밑에 굴복하겠거든

14 하물며 내가 감히 대답하겠으며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택하랴

15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대답하지 못하겠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할 뿐이며


16 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지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

17 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

18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을 내게 채우시는구나

19 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소환하겠느냐

20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온전할지라도 나를 정죄하시리라


21 나는 온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22 일이 다 같은 것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23 갑자기 재난이 닥쳐 죽을지라도 무죄한 자의 절망도 그가 비웃으시리라

24 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갔고 재판관의 얼굴도 가려졌나니 그렇게 되게 한 이가 그가 아니시면 누구냐

25 나의 날이 경주자보다 빨리 사라져 버리니 복을 볼 수 없구나


26 그 지나가는 것이 빠른 배 같고 먹이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

27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불평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28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29 내가 정죄하심을 당할진대 어찌 헛되이 수고하리이까

30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하게 할지라도


31 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

32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

33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34 주께서 그의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의 위엄이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하시기를 원하노라

35 그리하시면 내가 두려움 없이 말하리라 나는 본래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니라


*말씀묵상

욥은 빌닷의 말에 대해 긍정을 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 그의 지혜, 그의 진노하심, 그의 능력, 일하심, 그의 깊이와 넓이 등 누구도 반론할 수 없고 이해하거나 깨달을 수가 없음을 말합니다. 하물며 내가 감히 대답하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14절).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피조물로서의 위치와 자격없음, 무지함을 계속해서 고백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친구들과 욥의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친구들의 주장은 죄와 그에 상응하는 벌의 관점, 즉 인과응보의 세계관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규정하여 욥의 상황을 판단했습니다. 반면에 욥의 주장은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 피조물은 그저 한없이 작은 존재일 뿐이며, 아무리 인간이 의롭다 한들 그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행위나 기준, 판단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말합니다.

욥의 친구들의 관점은 다분히 세상적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율법적인 세계관에 갇혀 있음을 보여 줍니다. 내가 하는 만큼 얻으며 성실과 정직과 의로움으로 살면 그에 합당한 상을 하나님으로부터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뭔가 잘못하면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게 됩니다. 지금 욥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과응보의 세계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금의 형편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세상적인 것(선악)이라는 사실과 그로 인해 안 좋은 모습이나 결과는 무조건 하나님의 심판이나 형벌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정의, 공의의 관점에서는 그런대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는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일하심은 세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공의와 일하심을 인정하지만 인과율로 이해하지 않고 주권자, 통치자, 하나님 되심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즉 그의 하시는 일은 늘 선하며 옳으시다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생각이며 이해이며 판단이고 믿음입니다.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상식적인 내용일 수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세상적 판단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의 뜻과 영광이 드러나는 현장입니다.

그러나 믿음과 삶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믿음대로 삶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믿지만 욥 역시 이런 상황에서 갈등이 드러납니다. 하나님께 항변하는 자세를 취하게 됩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 일어난 것인지, 무슨 이유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일을 허락하신 것인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욥은 여러 시도를 해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전혀 답도 주시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모습에 대한 확인만 하게 됩니다(28, 31절).

적어도 욥과 같은 고민과 갈등은 필요한 것입니다. 죄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인정받지 못하고 하늘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모자람과 부족함, 잘못으로 인한 결과들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인과응보적인 율법적 반응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의 존재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으로 만들어진 자들입니다. 배은망덕하다고 원수갚는 분이 아닙니다. 원수같은 자를 구원하셨는데 모자라다고, 잘못했다고 처단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그를 의지하며 주인되심과 창조주이심,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바입니다.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내 경험과 판단과 이해가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것들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의 목적과 영광을 위해 일하시며 섭리하십니다. 욥기의 결론이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발견하며 그 가운데 자신이 있음을 깨닫게 하신 것임을 욥기 내내 잊지 않아야할 내용입니다. 나의 모습이 근거가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삶의 이유이어야 합니다. 오늘도 이 사실을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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