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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5장

2021년 6월 19일

이사야 15장



[말씀읽기]

하나님께서 모압을 치실 것이다

1 이것은 모압을 두고 내리신 엄한 경고의 말씀이다. 알이 망하는 그 밤에 모압이 망한다. 길이 망하는 그 밤에 모압이 망한다.

2 바잇과 디본 사람들이 산당에 올라가 통곡하고 모압 사람들이 느보와 메드바의 멸망을 보고 통곡한다. 모두 머리를 밀고, 수염을 깎는다.

3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길거리에 나앉아 울고, 지붕 위에 올라가 통곡하며, 광장에서도 통곡하니, 볼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4 헤스본과 엘르알레에서 부르짖는 소리가 저 멀리 야하스에까지 들리니, 모압의 용사들이 두려워 떨며 넋을 잃는다.

5 가련한 모압아, 너를 보니, 나의 마음까지 아프구나. 사람들이 저 멀리 소알과 에글랏슬리시야까지 도망 치고, 그들이 슬피 울면서 루힛 고개로 오르는 비탈길을 올라가고, 호로나임 길에서 소리 높여 통곡하니, 그들이 이렇게 망하는구나.

6 니므림 샘들이 말라서 메마른 땅으로 바뀌고, 풀이 시들고, 초목이 모조리 사라지고, 푸른 것이라고는 하나도 볼 수가 없구나.

7 그러므로 그들이 남겨 놓은 것과 쌓아 놓은 재물을 가지고, 버드나무 개울을 건넌다.

8 그 곡하는 소리가 모압 땅 사방에 울려 퍼지고, 그 슬피 우는 소리가 에글라임에까지 들리며, 그 울부짖는 소리가 브엘엘림에까지 이른다.

9 디몬의 물이 피로 변하였다. "내가 또 다른 재앙 하나를 더 내리겠다. 모압에서 도피한 자들과 그 땅의 남은 자들에게 사자를 보내어서, 그들을 찢게 하겠다."


[말씀묵상]

15장은 모압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당연히 이들의 교만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만들어간 것에 대한 심판이 선포됩니다. 여기에서 좀 특이한 점은 도시 이름이 많이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모압이 어떤 속성을 가진 나라인지를 보여 줍니다. 많은 도시를 건설했음을 보여 줍니다. 무슨 말입니까? 자신들의 살 길을 찾은 민족이라는 말입니다.

1절에 나오는 알은 모압의 수도입니다. 기르는 거대한 바위 위에 요새화된 도시라고 합니다. 수도와 함께 강한 성읍이 황폐하게 되었다는 것은 완전한 멸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선포에 울며 애통하며 부르짖는다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멸망하는 상황에서 당연한 모습이지만 5절을 보면 선지자의 마음까지 표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좀 다른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압이 이스라엘의 친족이라는 점입니다.

잘 알듯이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후예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그곳에 살던 롯의 가족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들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삼촌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은 언약적 자비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창19장에서 롯의 가족을 구원하는 과정을 보면 롯이 계속 지체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롯의 손과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셨는데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다고 합니다(창19:16). 게다가 도망하는 과정에서도 롯은 죽을까봐 지시한 성이 아닌 자기가 원하는 작은 성, 소알로 가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불신앙적인 모습입니다. 문제는 이후에 생깁니다. 소알에서 나와 산 속 굴에 거주하게 되었는데 두 딸이 자손 번성을 위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자녀를 낳은 것입니다. 큰 딸이 낳은 아들이 모압의 조상이 되고 작은 딸이 낳은 아들은 암몬의 조상이 됩니다.

이렇게 시작된 모압이었기에 태생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민족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가며 이들은 많은 도시를 건설하였던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모습을 교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버리고 스스로 살아가려는 모습 말입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이들에게 재물과 쌓았던 것들을 가지고 피난 가는 모습이 나옵니다. 자신의 것들을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롯의 가정이 소돔을 빠져 나올 때도 아내가 뒤를 돌아보고 소금 기둥이 되었는데 이러한 모습이 그대로 후손들에게도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점이 이사야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압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살아난 롯의 후예이며,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은 구원이 베풀어진 자들임을 알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장치를 모압 옆에 두시고 너희들을 인도하시고 살피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보도록 하셨지만 모압은 자기 살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갔던 것입니다. 가인이 갔던 것처럼 말입니다. 불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롯과 모압만의 모습입니까? 구원받은 신자들의 삶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은혜와 자비가 베풀어지고 있고 그에 대한 고백이 있음에도 내가 만들어 놓은 세상의 가치들을 여전히 중요한 것으로 여기며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장치들을 신자들의 상황에 주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시고 주님만이 주인이심을 깨닫게 하시지만 좀처럼 돌아오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모압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셔서(9절) 철저하게 심판하시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서도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도록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민수기를 보면 광야길을 가던 이스라엘을 모압왕 발락이 선지자 발람을 통하여 저주하려고 했던 사건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발람을 통하여 특별한 예언을 하도록 하십니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민24:17). 이 정도의 예언을 들었으면 자세가 바뀌어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서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끝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범죄하도록 한 것입니다. 자기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며 결국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데까지 간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며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빌3:18)가 아닌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영생을 사는 자로서 십자가를 의지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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