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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0장

2021년 6월 26일

이사야 20장



[말씀읽기]

벌거벗은 예언자의 징조

1 앗시리아 왕 사르곤이 보낸 다르단 장군이 아스돗으로 와서, 아스돗을 점령하였다.

2 그 해에, 주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를 시켜서 말씀하셨다. 주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허리에 두른 베 옷을 벗고,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사야는, 말씀대로, 옷을 벗고 맨발로 다녔다.

3 그 때에 주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맨발로 다니면서,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에게 표징과 징조가 된 것처럼,

4 앗시리아 왕이, 이집트에서 잡은 포로와 에티오피아에서 잡은 포로를, 젊은이나 늙은이 할 것 없이, 모두 벗은 몸과 맨발로 끌고 갈 것이니, 이집트 사람이 수치스럽게도, 그들의 엉덩이까지 드러낸 채로 끌려갈 것이다."

5 그리하여 에티오피아를 의지하던 자들과, 이집트를 그들의 자랑으로 여기던 자들이,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다.

6 그 날이 오면, 이 해변에 사는 백성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가 의지하던 나라, 앗시리아 왕에게서 구해 달라고, 우리를 살려 달라고, 도움을 청한 나라가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우리가 어디로 피해야 한단 말이냐?"


[말씀묵상]

본문은 애굽과 구스에 대한 심판을 말하고 있지만 실은 이들을 의지하고 있는 유다를 향한 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앗수르가 블레셋의 한 도시인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때라고 합니다. 시기를 말해주는 내용이지만 앗수르가 계속해서 자기 영역을 넓히면서 유다를 위협하고 있다는 의미로 서술하고 있는 중입니다. 문제는 위협을 받은 유다가 다른 나라에 손을 뻗어서 구원을 요청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유다가 도움을 청할 애굽과 구스의 멸망을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이사야로 하여금 상징적인 모습을 취하도록 합니다. 옷과 신을 벗고 벗은 몸으로 다니라는 것입니다. 3절에 나온 대로 3년간 벗고 다님으로 애굽과 구스에 대한 징조와 예표가 되도록 한 것입니다. 수치스러운 삶을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모습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4절에 설명합니다. 애굽과 구스가 앗수르에 의해 끌려 갈 때 이러한 모습으로 끌려 갈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애굽과 구스를 의지하려고 하지 말라는 경고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을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안 되는 것만이 아니라 삶의 위협을 받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을 찾으며 어려움들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습에 대해 경고를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야 얼마든지 그러한 삶을 살 수밖에 없지만 믿는 자들이 그런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만이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그 과정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데 한 번에 해 낼 수 없으셨을까요? 만일 그러셨다면 하나님은 힘만 있는 분이 되고 이스라엘은 힘에 항복하는 세상이 믿는 신이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잘하면 잘해주고 못하면 벌하는 신관이 세상이 믿는 신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인이기에 결코 복을 받을 수가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세상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은 스스로 살아가며 신을 이용하는 정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스라엘은 깨달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이끄시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고 세상에서는 실패한 민족처럼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즉 세상이 제공하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의지하거나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의지하고 내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내 힘으로, 또는 세상이 가르쳐주는 방법대로 살아가는 것과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쉬운 것일까요? 뒤엣 것이 훨씬 더 쉬운 방법입니다. 그러나 실제 사람들의 삶은 앞엣 것으로 살아갑니다. 늘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고 하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가 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보다 확실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선지자를 통하여 애굽과 구스가 어떤 모습으로 멸망할 것인지를 미리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바라며 자랑하며 의지하던 나라가 수치를 당하도록 하심으로 그들을 의지하지 않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6절의 질문은 이미 그 날이 되어서야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포기하도록 하시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도록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들에게 의지하던 세상을 잃는 것이 진짜 복이라는 사실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에 세상의 가치들을 잃는 일이 있으셨다면 하나님의 은혜로운 간섭이었음을 고백하셔야 합니다. 주님만을 의지하도록 인도하시는 과정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그분의 손을 통하여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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