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2장
2021년 7월 14일
이사야 32장
[말씀읽기]
공의로 다스릴 왕
1 장차 한 왕이 나와서 공의로 통치하고, 통치자들이 공평으로 다스릴 것이다.
2 통치자들마다 광풍을 피하는 곳과 같고, 폭우를 막는 곳과 같게 될 것입니다. 메마른 땅에서 흐르는 냇물과 같을 것이며, 사막에 있는 큰 바위 그늘과 같을 것입니다.
3 백성을 돌보는 통치자의 눈이 멀지 않을 것이며, 백성의 요구를 듣는 통치자의 귀가 막히지 않을 것이다.
4 그들은 경솔하지 않을 것이며, 사려깊게 행동할 것이며, 그들이 의도한 것을 분명하게 말할 것이다.
5 아무도 어리석은 사람을 더 이상 고상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며, 간교한 사람을 존귀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6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은 말을 하며, 그 마음으로 악을 좋아하여 불경건한 일을 하며, 주께 함부로 말을 하고,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거리를 주지 않고,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물을 주지 않습니다.
7 우둔한 사람은 악해서, 간계나 꾸미며, 힘 없는 사람들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해도, 거짓말로 그 가난한 사람들을 파멸시킵니다.
8 그러나 고귀한 사람은 고귀한 일을 계획하고, 그 고귀한 뜻을 펼치며 삽니다.
심판과 회복
9 안일하게 사는 여인들아, 일어나서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 걱정거리가 없이 사는 딸들아,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10 걱정거리가 없이 사는 딸들아, 일 년이 채 되지 못하여 몸서리 칠 일이 생길 것이다. 포도농사가 망하여 거둘 것이 없을 것이다.
11 안일하게 사는 여인들아, 몸부림 쳐라. 걱정거리가 없이 사는 여인들아, 몸서리 쳐라. 맨몸이 되도록 옷을 다 벗어버리고 베로 허리를 둘러라.
12 밭농사와 포도농사를 망쳤으니, 가슴을 쳐라.
13 나의 백성이 사는 땅에 가시덤불과 찔레나무가 자랄 것이니, 가슴을 쳐라. 기쁨이 넘치던 모든 집과 흥겨운 소리 그치지 않던 성읍을 기억하고, 가슴을 쳐라.
14 요새는 파괴되고, 붐비던 도성은 텅 비고, 망대와 탑이 영원히 돌무더기가 되어서, 들나귀들이 즐거이 뛰노는 곳, 양 떼가 풀을 뜯는 곳이 될 것이다.
15 그러나 주께서 저 높은 곳에서부터 다시 우리에게 영을 보내 주시면, 황무지는 기름진 땅이 되고, 광야는 온갖 곡식을 풍성하게 내는 곡창지대가 될 것이다.
16 그 때에는, 광야에 공평이 자리잡고, 기름진 땅에 의가 머물 것이다.
17 의의 열매는 평화요, 의의 결실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
18 나의 백성은 평화로운 집에서 살며, 안전한 거처, 평온히 쉴 수 있는 곳에서 살 것이다.
19 (비록 삼림이 우박에 쓰러지고 성읍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도,)
20 씨를 뿌리는 곳마다 댈 물이 넉넉하고, 어디에서나 안심하고 소와 나귀를 놓아 키울 수 있으니, 너희는 복이 있다.
[말씀묵상]
열방이 심판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모습을 선포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 열방이 심판을 받은 것도 아니고 북이스라엘은 멸망한 상황, 유다는 열방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주어진 의의 왕의 통치 약속입니다. 당시의 상황에서는 좀 느껴지지 않는 약속이고 나와 상관이 없는 것 같은 약속인 것입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야지 앞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앗수르의 위협 앞에 애굽에 손을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며 살아남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삶에서도 일어나는 모습입니다. 어려움 속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데 영원한 천국에 대한 약속이나 믿음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지금의 어려움이 더 피부에 와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움을 세상에서, 혹은 이웃으로부터 얻으며 살아갑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신자들은 늘 깊이 고민하며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공의로 통치하실 한 왕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당시 히스기야나 요시야 같은 몇몇 왕에 의해 공의로 다스리는 복의 맛을 보기는 하지만 온전치 못한 일시적인 것입니다. 영원한 통치를 보여주는 예표일 뿐입니다. 2-8절의 내용은 이러한 왕의 다스림으로 드러나게 될 모습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좀처럼 일어나지도 않고 나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공의로 다스리는 왕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성경을 보며 지금의 나의 모습에서 믿음의 모습이 있는가 하는 질문과 의문이 들어야 하고 그로 인한 자신의 한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해서 기도하는 데로 이루어지는 것이 믿음의 삶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님께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뭔가 해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도록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때가 되면 너희들에게 약속된 것이 완전하게 이루어진다는 소망과 믿음으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때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고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사6:9). 내 힘과 능력으로 알고 행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늘 교만하여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의지와 내 뜻이 더 낫고 옳게 여깁니다. 이 모습이 9-14절의 내용입니다. 안일한 여자들은 편안한, 염려없는 여자들이라는 의미로 예루살렘에 사는 지도자들을 빗대어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진 지위와 재산과 능력으로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자들입니다. 당연히 거짓 행복이고 평안입니다. 심판받아야 할 것들입니다.
결국 성령을 주셔서 이 모든 상황들을 역전시키십니다(15절). 하나님께서 하셔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십니다. 성령을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시고 죄인임을 깨닫도록 하셔서 내가 만들던 것들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이 진짜라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하던 것들은 가짜였음을 깨닫고 주님의 다스리는 방법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고백으로 인하여 주님 안에 거하게 되고 그의 다스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풍성함과 화평과 평안과 안전이 주어집니다.
물론 이러한 은혜가 늘 고백되고 경험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불안하고 일시적인 맛을 볼 뿐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함께 하심으로 인하여 계속되어집니다. 나를 주장하는 삶에서 성령이 이끄시는 삶으로, 내가 주인인 삶에서 주님이 주인인 삶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현실 속에서 내 힘으로 살고자 했던 것을 지양하고, 주님의 은혜로 영원한 것을 지향하며 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늘 확인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살고 있는가,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가, 내 생각인가 주님의 뜻인가, 이러한 것을 고민하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가 주인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순종하는 삶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