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읽기]
이스라엘을 향하신 주의 사랑
1 임신하지 못하고 아기를 낳지 못한 너는 노래하여라. 해산의 고통을 겪어 본 적이 없는 너는 환성을 올리며 소리를 높여라. 아이를 못 낳아 버림받은 여인이 남편과 함께 사는 여인보다 더 많은 자녀를 볼 것이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다.
2 너의 장막 터를 넓혀라. 장막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펴라. 너의 장막 줄을 길게 늘이고 말뚝을 단단히 박아라.
3 네가 좌우로 퍼져 나가고, 너의 자손이 이방 나라들을 차지할 것이며, 황폐한 성읍들마다 주민들이 가득할 것이다.
4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가 이제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당황하지 말아라! 네가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젊은 시절의 수치를 잊으며, 과부 시절의 치욕을 네가 다시는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5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의 남편이 되실 것이다.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주님이시다. 너를 구속하신 분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온 세상의 하나님으로 불릴 것이다.
6 버림을 받아서 마음이 아픈 너를, 주께서 부르신다. 젊은 나이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받은 너를, 주께서 부르신다. 너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시다.
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다시 불러들이겠다.
8 분노가 북받쳐서 나의 얼굴을 너에게서 잠시 가렸으나 나의 영원한 사랑으로 너에게 긍휼을 베풀겠다. 너의 속량자인 나 주의 말이다.
9 노아 때에, 다시는 땅을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내가 약속하였다. 이제, 나는 너에게 노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너를 꾸짖거나 벌하지 않겠다.
10 비록 산들이 옮겨지고 언덕이 흔들린다 하여도, 나의 은총이 너에게서 떠나지 않으며, 평화의 언약을 파기하지 않겠다." 너를 가엾게 여기는 주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미래의 예루살렘
11 너, 고난을 당하고 광풍에 시달려도 위로를 받지 못한 예루살렘아, 이제 내가 홍옥으로 벽을 쌓고, 청옥으로 성벽 기초를 놓겠다.
12 홍보석으로 흉벽을 만들고, 석류석으로 성문을 만들고, 보석으로 성벽 둘레를 꾸미겠다.
13 주께서 너의 모든 아이를 제자로 삼아 가르치실 것이고, 너의 아이들은 큰 평강을 누릴 것이다.
14 네가 공의의 터 위에 굳게 설 것이며, 억압이 너에게서 멀어질 것이니 너에게서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공포 또한 사라져, 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15 너를 공격하는 자들이 반드시 있겠지만, 그것은 내가 허락한 것이 아니다. 2)너를 공격하는 자는 누구든 너에게 패할 것이다.
16 "나는 대장장이를 창조하였다. 그는 숯불을 피워서 자기가 쓸 연장을 만든다. 군인도 내가 창조하였다. 그는 무기를 가지고 사람을 죽인다."
17 그러나 어떤 무기도 너를 상하게 하지 못하고, 너에게 맞서서 송사하려고 일어나 혀를 놀리는 자를 네가 모두 논박할 것이다. "나의 종들을 내가 이렇게 막아 주고, 그들이 승리를 차지하도록 하겠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다.
[말씀묵상]
54장에서는 고난 받는 종에 의해 이루어진 구원으로 이스라엘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설명합니다. 당연히 지금의 포로 생활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은혜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약속은 모든 고난과 수치가 없어지고 너를 지으신 이가 남편이심을 확인하게 되는 것과 이스라엘은 그에 합당한 신부로서 세워지고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실 것을 왜 멸망시키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죄로 이방의 포로가 되게 하셨고, 포로의 상황에서 이들이 극적으로 돌아와 회개한 것도 아닌데 이들을 향한 회복의 역사를 친히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게 됩니다. 공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옳다고 인정되는 것입니다. 죄를 범한 죄인이 정죄함을 받아 그에 합당한 값을 치르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내용입니다. 문제는 이 죄인이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죄값을 치렀지만 여전히 망해야 할 존재인 것입니다. 공의가 겉으로만 이뤄진 것입니다. 이런 거짓된 공의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통하여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이지만 그에게 긍휼을 베푸심으로 그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 긍휼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십자가인 것입니다. 대신 감당하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오늘 읽은 54장의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이 경험한 고난을 여인이 자녀를 갖지 못한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기뻐하며 노래하라고 합니다.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얻게 되고 자손이 번성할 것이라고 합니다. 수치를 잊게 될 것인데 이유는 너를 지으신 창조주가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재창조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버림받은 아내같았지만, 잠시 버린 상황이었지만 큰 긍휼로 모으시겠다고 합니다. 영원한 자비로 긍휼히 여기겠다고 하십니다. 노아 홍수 때 약속하신 것처럼 너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죄지은 이스라엘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죄 가운데 있는 자를 친히 돌아오도록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것도 영원히 떠나지 않고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죄를 지어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함께 해 주신다고 하셨으니 마음대로 살자는 것일까요? 이런 생각은 인간의 사악한 마음을 보여 주는 모습입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나도 이스라엘과 다르지 않은 이방의 포로가 되어 멸망해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하셔서 우리를 어떻게 하던지 이끌어 주셔서 약속을 이루어 가심을 고백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과 뜻은 남편이신 주님의 신부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11-12절에 나오는 단장한 모습은 계시록 21장에 나오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모습과 같습니다. 계21:2절에서 표현하듯이 남편을 위해 준비한 신부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된 신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신부를 누가 준비시킨 것입니까? 신부 본인이 한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시고 꾸미신 것입니다.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은 현실 속에서 기대와 인내와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상황이 힘들고 포로의 모습이 있다하더라도 화평의 약속은 흔들리지 않기에(10절),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기에(8절), 지금 있는 고난은 잠시 있는 것이기에(7절), 감당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이것을 징계(히12:8)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이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친아들에게 허락하시는 특별한 은혜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모든 삶의 환경은 친자녀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요셉의 고난은 총리를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총리가 목적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목적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역사가 오늘도 목도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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