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9장

2021년 8월 20일

이사야 59장



[말씀읽기]

예언자가 백성의 죄를 규탄하다

1 주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고, 주의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다.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의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의 죄 때문에, 주께서 너희에게서 얼굴을 돌리셔서, 너희의 말을 듣지 않으실 뿐이다.

3 너희의 손이 피로 더러워졌으며, 너희의 손가락이 죄악으로 더러워졌고, 너희의 입술이 거짓말을 하며, 너희의 혀가 악독한 말을 하기 때문이다.

4 공의로써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진실되게 재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헛된 것을 믿고 거짓을 말하며, 해로운 생각을 품고서, 죄를 짓는다.

5 그들은 독사의 알을 품고, 거미줄로 옷감을 짠다. 그 알을 먹는 사람은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혀서 터지면, 독사가 나올 것이다.


6 그들이 거미줄로 짠 것은 옷이 되지 못하고, 그들이 만든 것으로는 아무도 몸을 덮지 못한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죄악을 저지르는 것뿐이며, 그들의 손에는 폭행만 있다.

7 그들의 발은 나쁜 일을 하는 데 빠르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신속하다. 그들의 생각이란 죄악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며, 그들이 가는 길에는 황폐와 파멸이 있을 뿐이다.

8 그들은 안전한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가는 길에는 공평이 없다. 스스로 길을 굽게 만드니, 그 길을 걷는 모든 사람에게 안전이 없다.


백성이 죄를 고백하다

9 그러므로 공평이 우리에게서 멀고, 공의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다.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둠뿐이며, 밝음을 바라나, 암흑 속을 걸을 뿐이다.

10 우리는 앞을 못 보는 사람처럼 담을 더듬고, 눈먼 사람처럼 더듬고 다닌다. 대낮에도 우리가 밤길을 걸을 때처럼 넘어지니, 몸이 건강하다고 하나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다.

11 우리 모두가 곰처럼 부르짖고, 비둘기처럼 슬피 울며, 공평을 바라지만 공평이 없고, 구원을 바라지만 그 구원이 우리에게서 멀다.

12 주님, 주께 지은 우리의 죄가 매우 많습니다. 우리의 죄가 우리를 고발합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우리가 발뺌할 수 없으며, 우리의 죄를 우리가 잘 압니다.

13 우리가 죄를 짓고 주님을 부정하였습니다. 우리의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물러가서, 포학한 말과 거역하는 말을 하면서, 거짓말을 마음에 품었고, 또 실제로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14 그래서 공평이 뒤로 밀려나고 공의가 멀어졌으며, 성실이 땅바닥에 떨어졌고, 정직이 발붙이지 못합니다.

15 성실이 사라지니, 악에서 떠난 자가 오히려 약탈을 당합니다.


주께서 백성을 건져내려고 하시다

주께서 이것을 보셨다. 공평이 없는 것을 보시고 슬퍼하셨다.

16 압박받는 사람을 도우려는 사람이 없음을 보시고, 중재자가 없음을 보시고, 주께서는 놀라셨다. 주께서는 직접, 억압받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반드시 공의를 이루시려고, 당신의 능력을 친히 발휘하실 것이다.

17 주께서 공의를 갑옷으로 입으시고, 구원의 투구를 머리에 쓰셨다. 응징을 속옷으로 입으셨다. 열심을 겉옷으로 입으셨다.

18 그들이 한 대로 갚으신다. 적들에게 진노하시며, 원수들에게 보복하신다. 섬들에게도 보복하신다.

19 해 지는 곳에서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며, 해 뜨는 곳에서 주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이다. 원수가 강물처럼 몰려오겠으나, 주의 영이 그들을 물리치실 것이다.

20 주께서 시온에 속량자로 오시고, 야곱의 자손 가운데서 죄를 회개한 사람들에게 오신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다.

21 주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과 맺은 나의 언약은 이러하다. 너의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너의 입에 담긴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너의 입과 너의 자손의 입과 또 그 자손의 자손의 입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다.


[말씀묵상]

58장에 이어 죄악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런 죄악은 하나님의 구원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라고 합니다. 1-2절은 자주 듣던 구절입니다. 왜 기도가 응답이 되지 않는가, 왜 내 삶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는가, 등의 질문에 죄로 말미암은 것임을 지적하며 회개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럴듯한 이해이지만 잘못된 해석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하심, 또는 함께 하심에 대해 늘 내가 얻지 못한 것에 초점을 맞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뭔가 내 삶에 만족함이 없기에 회개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자는 식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오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고 늘 함께 하셔서 인도하시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는 것은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며 드러내시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앞 장에서 금식이나 안식일 지킴을 말씀하신 이유도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루시기 위함이었지 그렇게 하면 내가 큰 복을 주겠다는 것이 목적인 것은 아닙니다. 나를 위한 삶인지, 내가 만족하기 위하여 살고 있는지, 하나님의 뜻을 위한 삶인지 항상 돌아보아야 할 기준입니다.

3절부터 죄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손, 손가락, 입술, 혀로 죄를 짓습니다. 우리 몸에서 죄악의 도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정말 죄밖에 나올 것이 없습니다. 4절 이후에 그 모습들을 말합니다. 공의, 진실이 없고 허망함, 거짓, 악행이 나옵니다. 이 모습이 독사의 알을 품고 있고 거미줄을 짜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거미줄을 짠다는 말은 이웃을 죽음으로 걸려들게 하는 행동들을 말합니다. 발은 행악에, 피 흘리기에 신속하게 움직이고 가는 길은 황폐와 파멸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지적들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대를 사는 신자들에게는 잘 느껴지지 않는 내용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 결코 심한 내용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는 다 같은 죄악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삶은 아무리 말씀대로 산다고 하더라도 책망만 있을 뿐입니다. 세상의 기준이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십자가의 삶,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은 삶, 성령을 의지하는 삶, 주님이 주인인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신자들입니다.

9-15절은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돌아보는 내용입니다. 이 사실을 볼 수 있고 회개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구하는 것이 신자의 기도입니다. 문제가 있고 해결해야 할 것들이 있을 때가 은혜를 구할 때입니다. 세상과 신자의 다름이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은 출세의 기회, 만족의 기회, 성공의 기회를 찾을 때 신자들은 세상의 어두움과 불의와 허물과 죄악과 배반을 볼 수 있는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습을 확인하게 될 때 진정한 사명을 깨닫고 감당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6-18절을 보면 결국 하나님께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고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그 뜻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분별하며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신자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이며 의미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세상을 위하여 교회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이루어질 때에 한하여 그렇습니다. 단순히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는 것이 목적일 수는 없습니다. 호감을 얻어 하나님을 알게 하고 믿도록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삶에는 있을 수 있지만 교회가 그럴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존재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생겨난 존재이기에 세상의 만족이나 인정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20-21절의 내용이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턱을 낮춘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턱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되는 곳, 주님만이 주인이신 곳, 주님이 머리이신 곳임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내가 있는 곳에 주님의 함께 하심의 증거가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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