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읽기]
구원의 기쁜 소식 1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2 주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3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공의의 나무, 주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 4 그들은, 오래 전에 황폐해진 곳을 쌓으며, 오랫동안 무너져 있던 곳도 세울 것이다. 황폐한 성읍들을 새로 세우며, 대대로 무너진 채로 버려져 있던 곳을 다시 세울 것이다. 5 낯선 사람들이 나서서 너희 양 떼를 먹이며, 다른 나라 사람들이 와서 너희의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다.
6 사람들은 너희를 '주의 제사장'이라고 부를 것이며,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고 일컬을 것이다. 열방의 재물이 너희 것이 되어 너희가 마음껏 쓸 것이고, 그들의 부귀영화가 바로 너의 것임을 너희가 자랑할 것이다. 7 너희가 받은 수치를 갑절이나 보상받으며, 부끄러움을 당한 대가로 받은 몫을 기뻐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땅에서 갑절의 상속을 받으며, 영원한 기쁨을 차지할 것이다. 8 "나 주는 공평을 사랑하고, 불의와 약탈을 미워한다. 나는 그들의 수고를 성실히 보상하여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 9 그들의 자손이 열방에 알려지며, 그들의 자손이 만민 가운데 알려질 것이다. 그들을 보는 사람마다, 그들이 나 주의 복을 받은 자손임을 인정할 것이다." 10 신랑에게 제사장의 관을 씌우듯이, 신부를 패물로 단장시키듯이, 주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 주시고, 의의 겉옷으로 둘러 주셨으니,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11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에 뿌려진 것을 움트게 하듯이, 주 하나님께서도 모든 나라 앞에서 공의와 찬송을 샘 솟듯이 솟아나게 하실 것이다.
[말씀묵상]
60장에서 이스라엘이 회복되어 빛을 발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을 보았습니다. 61장에서는 이스라엘이 빛을 발하게 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 여호와께서 구원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은혜가 선포되기 때문입니다. 1절에 구원자의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여기에서 주 여호와의 영이 내려진 자가 누구입니까? 당연히 구원자를 말합니다. 눅 4장을 보면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설교를 하시는데 이 본문을 가지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구원자로 오셨음을 밝히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믿지 않습니다. 놀라면서도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고 합니다. 그가 메시야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상한 자, 포로된 자, 갇힌 자에게 은혜가 베풀어진다는 사실이 세상에서는 배척의 이유가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이러한 자들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빛이 왔지만 어둠이 빛을 싫어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슬픈 자들에게는 은혜의 해이며, 보복의 날이고, 재대신 화관이, 슬픔대신 기쁨이, 근심대신 찬송이 입혀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메시야가 와서 일어날 모습이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어두움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죄 가운데 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신자들인 우리가 이러한 은혜가 있는지를 돌아 보아야 합니다. 기쁨과 찬송과 즐거움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있다면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메시야의 풀어주는 사역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세상의 가치들을 얻는 것으로 인한 것인지를 보라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의의 나무 즉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는 모습이 있는지를 살피라는 말입니다. 신자들의 기쁨과 즐거움의 이유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것은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존재 가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왜 기뻐하고 슬퍼하는가? 왜 살고 있는가?
4절 이후는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묘사입니다.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이 선포되고 난 후에 그 증거들과 결과들은 당연히 현실적인 회복들로 확인이 됩니다. 성이 재건되고 이방인들이 함께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하나님의 봉사자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벧전2:9절 말씀대로 왕같은 제사장으로,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와 얻을 내용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주어질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묘사입니다. 지금의 신자들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얻게 될 내용들은 현실에서 얻는 물리적인 보상들이 아니라 그러한 가치를 갖게 되는 신자들의 삶을 말합니다.
그래서 8절에 나온 대로 영원한 언약을 맺은 결과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라는 말입니다. 누군가의 열심과 노력과 능력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9절을 보면 이러한 모습을 보고 만민들이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손이라는 칭찬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갖는 세상에서의 위상이며 가치입니다. 이것이 신자들이 늘 잊지 않고 기억하며 고백해야할 내용입니다.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삶의 근거입니다.
10-11절이 그 찬양의 내용입니다. 구원하여 주시고 공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마치 신랑이 사모를 쓰고 신부가 보석으로 단장함같이 우리를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귀하게, 그리고 온전한 자로 여기셨습니다. 당연히 인간의 가치와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닌 오직 은혜로 주어진 가치들입니다. 내가 나를 만들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자랑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주님께서 입혀주시고 인정해주시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기쁨과 감사가 가득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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