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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2장

최종 수정일: 2023년 12월 21일



[말씀읽기]


1 시온의 공의가 빛처럼 드러나고,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처럼 나타날 때까지, 시온을 격려해야 하므로, 내가 잠잠하지 않겠고, 예루살렘이 구원받기까지 내가 쉬지 않겠다.

2 이방 나라들이 네게서 공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 것이다. 뭇 왕이 네가 받은 영광을 볼 것이다. 사람들이 너를 부를 때에, 주께서 네게 지어 주신 새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3 또한 너는 주의 손에 들려 있는 아름다운 면류관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될 것이다.

4 다시는 어느 누구도 너를 두고 '버림받은 자'라고 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너의 땅을 일컬어 '버림받은 아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너를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여인'이라고 부르고, 네 땅을 '결혼한 여인'이라고 부를 것이니, 이는 주께서 너를 좋아하시며, 네 땅을 아내로 맞아 주는 신랑과 같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5 총각이 처녀와 결혼하듯이, 너의 아들들이 너와 결혼하며,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이, 네 하나님께서 너를 반기실 것이다.


6 예루살렘아,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들을 세웠다. 그들은 밤이나 낮이나 늘 잠잠하지 않을 것이다. 주께서 하신 약속을 늘 주께 상기시켜 드려야 할 너희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늘 상기시켜 드려야 한다.

7 주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실 때까지 쉬시지 못하게 해야 한다. 또 예루살렘이 세상에서 칭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주께서 쉬시지 못하게 해야 한다.

8 주께서 그의 오른손, 곧 그의 능력 있는 팔을 들어 맹세하셨다.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의 식량으로 내주지 않겠다. 다시는 네가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 사람들이 마시도록 내주지 않겠다."

9 곡식을 거둔 사람이, 곡식을 빼앗기지 않고 자기가 거둔 것을 먹고, 주님을 찬송할 것이다. "거둔 사람이 자기가 거둔 것을 내 성소 뜰에서 마실 것이다."

10 나아가거라, 성 바깥으로 나아가거라. 백성이 돌아올 길을 만들어라. 큰길을 닦고 돌들을 없애어라. 뭇 민족이 보도록 깃발을 올려라.


11 보아라, 주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신다. 딸 시온에게 일러주어라. 보아라, 너의 구원자가 오신다. 그가 구원한 백성을 데리고 오신다. 그가 찾은 백성을 앞장 세우고 오신다.

12 사람들은 그들을 '거룩한 분의 백성'이라 부르며 '주께서 속량하신 백성'이라 부를 것이다. 사람들은 너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사랑한 도성'이라고 부르며,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은 도성'이라고 부를 것이다.



[말씀묵상]


62장에서도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선포되고 있습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끝까지 쉬지 않고 계속될 것임을 말합니다. 여기에서도 새롭게 일컫게 될 이름이 나옵니다. 3절을 보면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4절에서는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않고, 황무지라 부르지 않고, 헵시바라, 쁄라라 부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헵시바는 나의 기쁨이 그에게 있다는 의미이고, 쁄라는 결혼한 여자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과 결혼한 관계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이웃 나라들로부터 얻게 될 영광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직 구원자이시고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뜻에 맞게 만들어가는 존재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내용으로 영광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영광은 이스라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일하심에 돌려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은 지금 회복에 대한 말씀을 듣는 중입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멸망과 포로와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회복은 너무도 초라했습니다. 돌아왔지만 일부만 왔고 재건했지만 그것도 미미했습니다. 이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볼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 후에도 강대국들에 의해 이스라엘은 존재조차 사라지게 됩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당시에도 로마의 속하여 나라도 없이 살아갑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의 예언만 의지하며 메시야가 올 것이라는 상상 속에 살아가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약속이 성취되는 과정들이었다는 말입니다. 신부를 단장하는 과정이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시각들이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이방 나라들이 공의를 보고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런 적이 없습니다. 7절에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겠다고 하셨지만 그런 적이 없습니다. 8-9절의 내용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세상으로부터 칭찬과 찬송과 풍성함을 얻은 적이 없습니다. 전혀 신부같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들이 모두 하나님의 일하심의 내용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5절) 모습일 수 있는가 생각이 당연히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신자들인 자신을 돌아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늘 고백하는 내용대로 우리의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새롭게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이 나의 실력과 능력이 아닌 창세전 선택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믿습니다. 나의 상태와는 전혀 무관하게, 나의 가치와도 상관없이, 내가 결정하며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믿게 하시고 구원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자녀라, 신부라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삶의 내용이나 과정을 볼 때 자녀나 신부의 가치와 조건을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적합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과는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격이 부여된 것입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모든 상황을 통틀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하심과 그 결과로 주어진 하나님의 백성됨, 그의 신부됨, 그 삶이 은혜인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들의 자격이며 특권이며 나아가 책임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8-9절에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만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에 기쁨과 용기와 찬양이 있게 됩니다. 10절 이후의 모습입니다. 기치는 군대에서 행진할 때 맨 앞에 들고 있는 기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끄시는 삶이라는 깃발입니다. 거기에 승리가 있습니다. 가는 도중이 험난하더라도 그 깃발이 있기에 보고 가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상급이며 보응입니다(11절). 그래서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 찾은 바 된 자, 버림받지 아니한 성읍이라 불려진다고 합니다. 오늘도 이러한 신분을 가진 자들임을 기억하시고 전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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