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읽기]
1 주께서, 하늘을 가르시고 내려오시면, 산들이 주님 앞에서 떨 것입니다.
2 마치 불이 섶을 사르듯, 불이 물을 끓이듯 할 것입니다. 주의 대적들에게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고,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떨게 하여 주십시오.
3 주께서 친히 내려오셔서, 우리들이 예측하지도 못한 놀라운 일을 하셨을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떨었습니다.
4 이런 일은 예로부터 아무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도 귀로 듣거나 눈으로 본 적이 없습니다. 주님 말고 어느 신이 자기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이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5 주께서는, 정의를 기쁨으로 실천하는 사람과, 주의 길을 따르는 사람과, 주를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 주십니다. 그러나 주님, 보십시오. 주께서 진노하신 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찌 구원을 받겠습니까?
6 우리는 모두 부정한 자와 같고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뭇잎처럼 시들었으니, 우리의 죄악이 바람처럼 우리를 휘몰아 갑니다.
7 아무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주를 굳게 의지하려고 분발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우리에게서 얼굴을 숨기셨으며, 우리의 죄악 탓으로 우리를 소멸시키셨습니다.
8 그러나 주님, 주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님은 우리를 빚으신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이 손수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9 주님, 진노를 거두어 주십시오. 우리의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 보십시오. 우리는 다 주님의 백성입니다.
10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습니다. 시온은 광야가 되었고, 예루살렘은 황폐해졌습니다.
11 우리의 조상이 주님을 찬송하던 성전, 우리의 거룩하고 영광스럽던 성전이 불에 탔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던 곳들이 모두 황폐해졌습니다.
12 주님, 형편이 이러한 데도, 주님께서는 그저 가만히 계십니까? 그렇게 잠잠히 계셔서, 우리가 극심한 고통을 받도록 하시렵니까?
[말씀묵상]
63장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형편없는 모습이었고, 원수들에 의해 성소가 유린당하여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와 같고,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되었으니 돌아와 달라는 간청을 했습니다. 이 간구가 계속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가르고 산들이 진동하며 불이 섶을 가르고 물을 끓게 함같이 강림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이런 간청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알고 경외심을 갖게 하고 주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일하심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편이심을 드러내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신자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합니다. 보통은 내 삶의 평안과 형통을 기도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결과가 나의 편함이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이라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말 그대로 하나님이 누구신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의 백성은 어떤 자들인지가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서 간구자는 시내산에서 강림하신 사건을 기억합니다(3-4절). 주의 강림 사건으로 하나님을 알고 자신들의 모습을 깨닫게 하셨다고 합니다(5절). 하나님의 원하심이 무엇인지,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연약한 모습을 확인하게 됩니다. 6-7절에서 더욱 자신의 못남들을 들춰냅니다. 소멸될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하심을 통하여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만 구원이 있음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간구가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주님만 의지하는 자로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시내산 강림 사건이 있다면 신자들에게는 십자가 사건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오셔서 구원을 베푸신 것입니다. 왜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신 분이 인간에게 오셔야 합니까? 아무런 존재 가치가 없는 자들이 아닌가요? 죄악으로 인해 멸망해야 할 자들입니다. 그런데 친히 내려오시고 관심과 사랑과 구원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누구신지를 알려 주신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만이 온 우주에 참 신이심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신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달은 자들입니다. 삶의 현장이 하나님의 일하심의 현장입니다. 주의 이름의 능력을 확인하며 드러내는 것입니다.
8절을 보면 아주 중요한 고백이 나옵니다. 주는 우리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진흙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는 토기장이이시고 우리는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입니다. 이미 29장과 45장에서도 토기장이와 진흙에 대한 고백이 있었습니다. 이사야가 가지고 있는 신앙적 고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주권적인 창조주 신앙은 가장 기본적이며 기초적인 내용이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고백이 흔들리지 않으면 삶의 불안함이나 두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내 인생을 통해서 주님의 목적과 뜻이 성취됨을 믿기 때문입니다.
불평과 불만, 그리고 싸움과 갈등이 어디에서 시작됩니까? 내 생각과 내 마음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모자람이나 잘못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지적하는 자들에게 분을 내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잘못을 더 크게 지적하여 나의 못남을 완화하고 저 사람보다 내가 낫다는 주장을 하려고 합니다. 아담적인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신의 진흙됨을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이러한 자신을 깨닫고 깨어져야 하는 존재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깨어질 뿐만 아니라 다시 토기장이이신 주님께 자신을 맡기며 그의 뜻에 맞게 만들어져야 할 존재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이 확인될 때 10-12절의 하소연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광야와 같이 황폐하게 된 상태에 대해 주의 은혜와 일하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나를 새롭게 세우셔서 주의 거룩함과 존귀와 영광이 드러나기를 간청합니다. 내 환경에 대한 간구로 보이지만 모두가 다 하나님을 섬기며 말씀을 좇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인되심과 그의 거룩하심을 고백하고 드러내는 것이 삶의 목적입니다. 오늘도 주의 은혜와 긍휼이 삶을 이끄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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