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7장

2021년 6월 9일

이사야 7장



[말씀읽기]

아하스 왕에게 내린 경고

1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 왕 아하스가 나라를 다스릴 때에, 시리아 왕 르신이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와 함께 예루살렘을 치려고 올라왔지만, 도성을 정복할 수 없었다.

2 시리아 군대가 에브라임에 주둔하고 있다는 말이 다윗 왕실에 전해 지자, 왕의 마음과 백성의 마음이 마치 거센 바람 앞에서 요동하는 수풀처럼 흔들렸다.

3 그 때에 주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너의 아들 스알야숩을 데리고 가서, 아하스를 만나거라. 그가 '세탁자의 밭'으로 가는 길, 윗못 물 빼는 길 끝에 서 있을 것이다.

4 그를 만나서, 그에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침착하게 행동하라고 일러라. 시리아의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크게 분노한다 하여도, 타다가 만 두 부지깽이에서 나오는 연기에 지나지 않으니,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라고 일러라.

5 시리아 군대가 아하스에게 맞서, 에브라임 백성과 그들의 왕 르말리야의 아들과 함께 악한 계략을 꾸미면서


6 '올라가 유다를 쳐서 겁을 주고,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유다를 흩어지게 하며, 그 곳에다가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세워 놓자'고 한다."

7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이 계략은 성공하지 못한다. 절대로 그렇게 되지 못한다."

8 시리아의 머리는 다마스쿠스이며, 다마스쿠스의 머리는 르신이기 때문이다. 에브라임은 육십오 년 안에 망하고, 뿔뿔이 흩어져서, 다시는 한 민족이 되지 못할 것이다.

9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이고, 사마리아의 머리는 고작해야 르말리야의 아들이다. 너희가 믿음 안에 굳게 서지 못한다면, 너희는 절대로 굳게 서지 못한다!


임마누엘의 징조

10 주께서 아하스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나님에게 징조를 보여 달라고 부탁하여라. 저 깊은 곳 스올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무엇이든지 보여 달라고 하여라."

12 아하스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저는 징조를 구하지도 않고, 주님을 시험하지도 않겠습니다."

13 그 때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들으십시오. 다윗 왕실은 백성의 인내를 시험한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이제 하나님의 인내까지 시험해야 하겠습니까?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한 징조를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

15 그 아이가 잘못된 것을 거절하고 옳은 것을 선택할 나이가 될 때에, 그 아이는 버터와 꿀을 먹을 것입니다.


16 그러나 그 아이가 잘못된 것을 거절하고 옳은 것을 선택할 나이가 되기 전에, 임금님께서 미워하시는 저 두 왕의 땅이 황무지가 될 것입니다.

17 에브라임과 유다가 갈라진 때로부터 이제까지, 이 백성이 겪어 본 적이 없는 재난을, 주께서는 임금님과 임금님의 백성과 임금님의 아버지의 집안에 내리실 것입니다. 주께서 앗시리아의 왕을 끌어들이실 것입니다."

18 그 날에, 주께서 휘파람을 불어, 이집트의 나일 강 끝에 있는 파리 떼를 부르시며, 앗시리아 땅에 있는 벌 떼를 부르실 것이다.

19 그러면 그것들이 모두 몰려와서, 거친 골짜기와 바위틈, 모든 가시덤불과 모든 풀밭에 내려앉을 것이다.

20 그 날에, 주께서 유프라테스 강 건너 저편에서 빌려 온 면도칼, 곧 앗시리아 왕을 시켜서 너희의 머리털과 발털을 미실 것이요, 또한 수염도 밀어 버리실 것이다.


21 그 날에는, 비록 한 농부가 어린 암소 한 마리와 양 두 마리밖에 기르지 못해도,

22 그것들이 내는 젖이 넉넉하여, 버터를 만들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버터와 꿀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23 그 날에는, 은 천 냥 값이 되는 천 그루의 포도나무가 있던 곳마다, 찔레나무와 가시나무로 덮일 것이다.

24 온 땅이 찔레나무와 가시나무로 덮이므로, 사람들은 화살과 활을 가지고 그리로 사냥을 갈 것이다.

25 괭이로 일구던 모든 산에도 찔레나무와 가시나무가 덮이므로, 너는 두려워서 그리로 가지도 못할 것이며, 다만 소나 놓아 기르며, 양이나 밟고 다니는 곳이 되고 말 것이다.


[말씀묵상]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하스 왕은 유다에서 보기 드물게 하나님을 좇지 않고 이방신을 적극적으로 섬겼던 왕입니다.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이방인 앗수르를 의지하며 그들의 우상을 가져와 제사드리는 악행을 저지릅니다. 이 악행의 모습은 왕하 16장에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을 의지하는 전형적인 죄인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1절을 보면 아람의 르신 왕과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연합하여 유다를 침공했지만 능히 이기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유에 대해 왕하 16장에서는 유다가 앗수르에게 구원요청을 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승리의 댓가로 앗수르의 제단을 수입해서 제사드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에서는 능히 이기지 못한 이유를 좀 다르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연합군의 공격을 받은 아하스와 백성들의 마음이 바람에 흔들리는 숲과 같이 흔들렸다고 합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이사야와 그 아들 스알야숩를 보내시면서 약속을 해 주시는데 이들은 연기나는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라 그들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해 주십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일에 대해 징조를 구하라고 하는데 아하스는 구하지 않겠다고 거절합니다.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불신앙을 표현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이사야는 거부하는 아하스에게 주께서 친히 징조를 보여 주시겠다고 하면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전해 줍니다. 이 징조는 잘 아시는 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것을 예견한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 예언의 말씀을 아하스에게 주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내가 모든 역사를 이끌어 간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처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은 기적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낳은 아이가 자라면서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너희를 공격한 두 나라가 황폐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려고 증거로 든 것입니다. 이 징조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지금 나를 의지하지 않고 앗수르를 의하고 있는데 그들이 멸망하게 될 것이고 너희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씀이고 그러한 하나님을 늘 의지해야 할 것을 독려하는 말씀이라고 이해됩니다. 그런데 17-25절의 말씀은 좀 이상하게 들립니다. 앗수르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유다를 공격하고 심판하는 도구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씀을 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 역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교육하시는 방법임을 보여 주십니다. 처음에 이사야에게 아들 스알야숩과 같이 가도록 하셨습니다. 스알야숩은 남는 자가 돌아오리라는 의미입니다. 앗수르가 망한다 하더라도 유다의 남은 자들만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임마누엘의 징조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반드시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시는 것이지만 동시에 남는 자를 만드시기 위해 앗수르를 막대기로 사용하시겠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어떤 문제도 없고 고난과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만드시는 과정은 고난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방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은혜가 필요한 자들임을 깨닫고 고백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역사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중요한 관점입니다. 욥에게 일어난 일들은 역사 속에서 엄청난 고난이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는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과 사랑과 구원을 깨닫게 하는 환경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유다에게 있어서 르신과 베가의 공격, 앗수르의 괴롭힘이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 되지 않는 일을 말합니다. 믿었던 앗수르가 배신하고 오히려 더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며 임마누엘의 징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신자들이 보이는 모습이 감사와 찬양과 소망인 것입니다. 나를 향한 임마누엘의 징조를 보여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상을 의지했고 그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임마누엘이 성취되었는데 그 결과는 죄인들이 자신을 보며 얼마나 처참한 상태에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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