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8장

2021년 6월 10일

이사야 8장



[말씀읽기]

징조가 된 이사야의 아들

1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큰 서판을 가지고 와서, 그 위에, 두루 쓰는 글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써라.

2 내가 진실한 증인 우리야 제사장과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증언하게 하겠다."

3 그런 다음에, 나는 예언자를 가까이하였다. 그러자 그 예언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때에 주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하여라.

4 이 아이가 '아빠, 엄마'라고 부를 줄 알기도 전에, 앗시리아 왕이 다마스쿠스에서 빼앗은 재물과 사마리아에서 빼앗은 전리품을 가져 갈 것이다."


앗시리아 왕의 침략

5 주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6 "이 백성이 고요히 흐르는 실로아 물은 싫어하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좋아하니,

7 나 주가 저 세차게 넘쳐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 물, 곧 앗시리아 왕과 그의 모든 위력을 이 백성 위에 뒤덮이게 하겠다. 그 때에 그 물이 온 샛강을 뒤덮고 둑마다 넘쳐서,

8 유다로 밀려들고, 소용돌이치면서 흘러, 유다를 휩쓸고, 유다의 목에까지 찰 것이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께서 날개를 펴셔서 이 땅을 보호하신다.

9 너희 민족들아! 어디, 전쟁의 함성을 질러 보아라. 패망하고 말 것이다. 먼 나라에서 온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싸울 준비를 하여라. 그러나 마침내 패망하고 말 것이다. 싸울 준비를 하여라. 그러나 마침내 패망하고 말 것이다.

10 전략을 세워라. 그러나 마침내 실패하고 말 것이다. 계획을 말해 보아라. 마침내 이루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주께서 예언자에게 경고하시다

11 주께서 그 힘센 손으로 나를 붙잡고, 이 백성의 길을 따라가지 말라고, 나에게 경고의 말씀을 하셨다.

12 "너희는 이 백성이 모의하는 음모에 가담하지 말아라.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무서워하지도 말아라."

13 너희는 만군의 주 그분만을 거룩하다고 하여라. 그분만이 너희가 두려워할 분이시고, 그분만이 너희가 무서워할 분이시다.

14 그는 성소도 되시지만, 이스라엘의 두 집안에게는 거치는 돌도 되시고 걸리는 바위도 되시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가미도 되신다.

15 많은 사람이 거기에 걸려서 넘어지고 다치며, 덫에 걸리듯이 걸리고 사로잡힐 것이다.


죽은 자에게 묻는 것을 경고하시다

16 나는 이 증언 문서를 밀봉하고, 이 가르침을 봉인해서, 나의 제자들이 읽지 못하게 하겠다.

17 주께서 비록 야곱의 집에서 얼굴을 돌리셔도, 나는 주님을 기다리겠다. 나는 주님을 의지하겠다.

18 내가 여기에 있고, 주께서 나에게 주신 이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 나와 아이들은, 시온 산에 계시는 만군의 주께서 이스라엘에게 보여 주시는, 살아 있는 징조와 예표다.

19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희에게, 속살거리며 중얼거리는 신접한 자와 무당에게 물어 보라고 한다. 어느 백성이든지 자기들의 신들에게 묻는 것은 당연하다고 한다. 산 자의 문제에 해답을 얻으려면, 죽은 자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20 그러나 너희는 그들에게 대답하여라. 오직 주께서 가르치신 말씀만 듣고, 그 말씀에 관한 증언만 들으라고 하여라. 이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동트는 것을 못 볼 것이라고 하여라.


고난의 때

21 그들은 괴로움과 굶주림으로 이 땅을 헤맬 것이다. 굶주리고 분노한 나머지, 위를 쳐다보며 왕과 신들을 저주할 것이다.

22 그런 다음에, 땅을 내려다 보겠지만, 보이는 것은 다만 고통과 흑암, 무서운 절망뿐일 것이니, 마침내 그들은 짙은 흑암 속에 떨어져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다.


[말씀묵상]

이사야를 통하여 유다가 멸망하게 될 것을 말씀하도록 하십니다. 앗수르를 의지하며 자기의 안위를 찾으려 하지만 그들에 의해 공격을 당하고 멸망하게 될 것을 오늘 본문에서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서판에 통용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쓰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약탈과 노획이 급속히 이를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앗수르가 아람과 이스라엘을 빠른 시일 안에 몰락시킬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다음은 유다 차례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유다의 모습을 고발합니다. 6절에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렸다고 합니다. 실로아 물은 기혼 샘물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 성의 동편을 끼고 흐르는 작고 가느다란 시냇물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들과 함께 하시는 보호하심, 비밀스런 섭리를 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공격했던 연합군, 르신(아람왕)과 르말리야의 아들(이스라엘왕 베가)이 패망한 모습을 기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다는 앗수르를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멸망은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인데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앗수르는 유다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유다까지도 삼켜버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모습이 세상을 의지하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결국 세상에 의해 지배되고 세상이 그들을 삼켜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렇게 세상이 점령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은 성취된다는 사실입니다. 8절 하반부에 보면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구원자의 날개가 유다의 땅에 가득하리라는 것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이방에 의해 멸망하는 상황인데 구원자의 날개가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심판이 실행되는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가? 이것이 앞서 보여 준 계시인 스알야숩입니다. 남은 자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9-10절이 그 내용입니다. 애써보라고 합니다. 허리를 동이고 열심을 내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패망할 것입니다. 함께 계획하고 말을 해 보지만 끝내 망한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임마누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라면 망하지 않아야 하고 모든 일이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하심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만들기는 온실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과 함께 망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보입니다. 때로는 더 저주를 받은 모습으로 보입니다. 십자가가 그랬습니다. 14-15절의 내용처럼 걸림돌과 함정과 올무가 된다고 합니다. 예수 믿어도 별 볼일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왜 믿느냐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세상의 기준과 가치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지금의 내 모습에서 그 경험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세상 속에서 아닌 것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데 다른 게 없다는 지적에 할 말이 없습니다. 달라야 하는 것이 세상적 기준으로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다름은 예수를 믿는 것이지 모습이 하늘과 땅의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임마누엘은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되셨다, 죄인이 되셨다, 저주의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세상에 엄청난 증거를 내놓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대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17절에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기다리며 바라보겠다고 합니다. 현실은 막막하지만,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인내하며 소망하겠다는 말입니다. 이유는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에게 주신 자녀들을 말합니다. 스알야숩과 마헬살랄하스바스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일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내용입니다. 당연히 이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지 않은가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원하셨다면, 상황이 어떠하든지 의지할 것은 구원자 주님밖에 없지 않은가요? 19절을 보니 세상을 좇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어둠과 환난과 고통뿐입니다. 빛을 본 자들입니다. 무엇을 원하시는지 깨달은 자들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의지하는 삶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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