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9장

2021년 6월 11일

이사야 9장



[말씀읽기]

장차 올 왕 1 어둠 속에서 고통받던 백성에게서 어둠이 걷힐 날이 온다. 옛적에는 주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받게 버려두셨으나, 그 뒤로는 주께서 서쪽 지중해로부터 요단 강 동쪽 지역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방 사람이 살고 있는 갈릴리 지역까지, 이 모든 지역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2 어둠 속에서 헤매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쳤다. 3 "하나님, 주께서 그들에게 큰 기쁨을 주셨고, 그들을 행복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곡식을 거둘 때 기뻐하듯이, 그들이 주님 앞에서 기뻐하며, 군인들이 전리품을 나눌 때 즐거워하듯이, 그들이 주님 앞에서 즐거워합니다. 4 주께서 미디안을 치시던 날처럼, 그들을 내리누르던 멍에를 부수시고,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던 통나무와 압제자의 몽둥이를 꺾으셨기 때문입니다. 5 침략자의 군화와 피묻은 군복이 모두 땔감이 되어서, 불에 타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6 한 아기가 우리에게서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얻었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7 그의 왕권은 점점 더 커지고 나라의 평화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가 다윗의 보좌와 왕국 위에 앉아서, 이제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울 것이다. 만군의 주의 열심이 이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주께서 이스라엘을 벌하실 것이다 8 주께서 야곱에게 심판을 선언하셨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를 것이다. 9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주민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신 것을 마침내는 알게 될 터인 데도, 교만하고 오만한 마음으로 서슴지 않고 말하기를 10 "벽돌집이 무너지면, 다듬은 돌로 다시 쌓고, 뽕나무가 찍히면, 백향목을 대신 심겠다" 한다. 11 이 때문에 주께서 그들을 치시려고 르신의 적을 일으키셨고, 그들의 원수를 부추기셨다. 12 동쪽에서는 시리아 사람들이, 서쪽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 그 입을 크게 벌려서 이스라엘을 삼켰다. 그래도 주께서는 진노를 풀지 않으시고, 심판을 계속하시려고 여전히 손을 들고 계신다. 13 그런데도 이 백성은 그들을 치신 분에게로 돌아오지 않았고, 만군의 주님을 찾지도 않았다. 14 그러므로 주께서 이스라엘의 머리와 꼬리, 종려가지와 갈대를 하루에 자르실 것이다. 15 머리는 곧 장로와 고관들이고, 꼬리는 곧 거짓을 가르치는 예언자들이다.

16 이 백성을 인도하는 지도자들이 잘못 인도하니, 인도를 받는 백성이 멸망할 수밖에 없다. 17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의 젊은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으실 것이며, 그들의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은 모두가 불경건하여 악한 일을 하고, 입으로는 어리석은 말만 한다. 그래도 주께서는 진노를 풀지 않으시고, 심판을 계속하시려고, 여전히 손을 들고 계신다. 18 참으로 악이 불처럼 타올라서 찔레나무와 가시나무를 삼켜 버리고, 우거진 숲을 사르니, 이것이 연기 기둥이 되어 휘돌며 올라간다. 19 만군의 주의 진노로 땅이 바싹 타버리니, 그 백성이 마치 불을 때는 땔감같이 되며, 아무도 그 형제자매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20 오른쪽에서 뜯어먹어도 배가 고프고, 왼쪽에서 삼켜도 배부르지 않아, 각각 제 팔뚝의 살점을 뜯어먹을 것이다. 21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먹고,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고, 그들이 다 함께 유다에 대항할 것이다. 그래도 주께서는 진노를 풀지 않으시고, 심판을 계속하시려고 여전히 손을 들고 계신다.


[말씀묵상]

8장 마지막에 나온 대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쫓겨 들어간 자들에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흑암 가운데 빛이 비치게 된 것입니다. 1-2절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일어난 것으로 마태가 인용하고 있는 구절입니다(마4:15-16). 즉 이 빛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어두움과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을 찾아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앞서서 이사야의 아들들을 통하여 행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입니다. 스알야숩(남은 자가 돌아오리라)과 마헬살랄하스바스(노략이 속히 임하리라)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하심 가운데 임마누엘의 징조를 주심으로 결코 망하게 하고 없애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보여 주시는 빛을 비추시는 것은 징조로 보여 주신 것들을 성취하시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어두움에 있던 자들이 빛을 보고 나오게 되었고 3-4절처럼 승리자의 기쁨과 자유함을 맛보게 되었는데 이러한 결과가 한 아기가 났고 한 아들을 주심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승리가 세상을 호령하는 장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의와 공의로 세우는 것이랍니다. 압제를 당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말씀이 답답하게 들릴 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기려고 하는 것인가, 우리를 해방시켜 주기는 할 것인가, 빨리 저 압제자들을 물리쳐야 할 텐데, 언제 우리는 자유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생각이 들 것입니다.

신자들은 이러한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십자가로 인하여 얻게 된 승리입니다. 이 승리를 가지고 사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흑암의 고통 속에서 건짐을 받아 영원한 나라에서 다스림을 받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살고 있는 자들이고, 승리를 맛보고 살고 있는 자들이지만 늘 승승장구하고 세상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통치를 받으며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어 가시는 과정 속에 있을 뿐입니다. 스알야숩과 마헬살랄하스바스을 통하여 하나님 백성 만들기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만으로 사는 자임을 고백하며 드러내도록 하실 것입니다.

8절 이후에는 또다시 유다의 죄악을 고발하며 하나님의 진노가 선포됩니다. 선지서의 특징 중에 하나가 구원과 심판이 계속 반복적으로 선포되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계속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구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심판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도 반복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12절 후반부에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는 말입니다. 4번이 반복되는데(12, 17, 21, 10:4) 그때마다 유다의 죄악을 드러내며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교만과 완악함에 대한 진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항복하지 않고 자신들의 방법과 수단으로 다시 세워가는 것입니다. 계속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습이 늘 그렇습니다. 신자들까지도 그럽니다.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습니다. 열심을 내는데 세상의 기준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음에 대한 진노입니다. 지도자들이 부패함으로 잘못 인도하여 미혹합니다. 잘못 가르치며 멸망하게 합니다. 여기에는 지도자의 잘못도 있지만 무조건 따르는 백성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결국 긍휼의 대상인 고아와 과부에게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얼마나 백성들이 부패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세 번째 진노는 형제끼리 서로를 아끼지 않으며 서로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가장 처참한 모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진노하심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들의 죄악을 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여전히 주님의 손이 펴져 있다는 사실은 간섭하시며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이끌어 내시겠다는 의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진노 가운데 있음을 고백할 수 있느냐입니다. 이 사실이 확인되고 고백되는 것이 은혜입니다.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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