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5장

2019년 3월 22일

잠언 25장



*본문말씀

1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것이니라

2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3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 같이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4 은에서 찌꺼기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5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의 왕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


6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들의 자리에 서지 말라

7 이는 사람이 네게 이리로 올라오라고 말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

8 너는 서둘러 나가서 다투지 말라 마침내 네가 이웃에게서 욕을 보게 될 때에 네가 어찌할 줄을 알지 못할까 두려우니라

9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10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네게 대한 악평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


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12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14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

15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16 너는 꿀을 보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함으로 토할까 두려우니라

17 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18 자기의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화살이니라

19 환난 날에 진실하지 못한 자를 의뢰하는 것은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

20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소다 위에 식초를 부음 같으니라


21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22 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23 북풍이 비를 일으킴 같이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

24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25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


26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이 흐려짐과 샘이 더러워짐과 같으니라

27 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되니라

28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말씀묵상

잠언에서 왕은 하나님의 대사로서 창조주의 지혜를 드러내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왕의 영화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화를 설명합니다.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을 왕은 자신의 존재와 통치를 통하여 드러내야 할 것임을 말합니다. 신약에서 신자들은 바로 이러한 왕의 책임과 사명을 가진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같은 제사장들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삶이 결국은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뜻을 드러내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세상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구원을 깨닫지도 생각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신자들이 세상에서 선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전도나 선교, 봉사와 사랑 등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흔히 삶의 전도라는 말을 합니다. 신자다운 삶을 살아감으로 이웃을 향한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러한 부분을 말해 줍니다. 6절에 스스로 높은 체 하지 말라고 합니다. 교만하지 말고, 자기 것 먼저 챙기지 말고 남을 늘 배려하라는 말입니다. 8절에서는 급하게 이웃과 소송하며 생기는 미련함을 지적합니다. 이웃에 대하여 이기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형제끼리의 고발을 얘기하면서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지적합니다(고전6:6-7). 교회의 고발 사건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세상에서의 체면도 그렇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지 못하게 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나은 정도가 아니라 옳은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의 삶은 이웃에게 드러나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느냐,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느냐에 달려 있지 이웃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11절에 잘 아는 말씀이 나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가치있다는 의미입니다. 12, 13절도 거의 같은 의미입니다. 즉 신자들의 존재는 그를 보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특히 말에 있어서 그러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말이 이웃을 즐겁게 합니까, 화나게 합니까?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합니까, 험악하게 합니까? 유머나 농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듣는 자의 기준이 아니라 보내신 자의 기준입니다.

21절에 원수를 대접하라고 합니다. 그것이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이라고 합니다. 숯을 머리에 놓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증거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즉 원수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은 신자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 당사자들에게는 증거가 되어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완악한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신자들에게 있어서 원수들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야 할 대상이지 미워하고 원망하며 복수해야할 대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늘도 나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과 이웃들에게 좋은 기별이 되는 삶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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