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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6장

2019년 3월 23일

잠언 26장


*말씀읽기

1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 같으니라

2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3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4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

5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6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과 해를 받음과 같으니라

7 저는 자의 다리는 힘 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

8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으니라

9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가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

10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함과 같으니라


11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12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13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14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15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16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17 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 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

18 횃불을 던지며 화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19 자기의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

20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21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22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23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24 원수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으로는 속임을 품나니

25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니라


26 속임으로 그 미움을 감출지라도 그의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리라

27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

28 거짓말 하는 자는 자기가 해한 자를 미워하고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


*말씀묵상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자들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또는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의 기준이 세상의 윤리 도덕과 같지 않다는 말은 세상의 기준을 무시하며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잠언에서 나오는 너무도 옳고 상식적인 내용은 세상의 도덕과 윤리적으로 볼 때에도 거의 다르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우선 기본적인 의미가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미련한 자에 대한 질책과 게으른 자에 대한 지적은 신자나 불신자나 모두에게 옳은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을 기준으로 자신을 살핀다면 내용면에 있어서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신자들에게 있어서 이것만이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욕만 먹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 신자들의 존재 이유나 목적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물론 당연한 것이며 그래야 합니다. 요즘 기독교계가 너무 사회적으로 모범은커녕 걱정해야할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윤리 도덕이 무너졌고 그와 함께 신앙적 기준과 내용도 무너진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돌아보아야 하며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회개와 갱신의 모습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함께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삶의 기준과 목적이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체면에 매여서 어쩔 수 없이 한다 하더라도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자들은 그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의 예를 든다면 미련한 자에게 영예가 주어질 경우 누구나 비판할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나 그래서 잘 될 수 없다는 이유가 아니라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경외하지 않는다는 사실로 인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가 일을 그르치느냐, 잘 하지 못하느냐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대로 여름의 눈과 같고 추수철의 비와 같이 전혀 무익한 자라는 평가는 일의 결과를 통한 평가가 아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무가치함을 깨닫는 자였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게으름도 같은 기준입니다. 나태함에 대한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였다는 사실로 인해 비판을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게으름은 불신앙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며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자의 모습입니다. 가나안의 정탐꾼 중 반대표를 던진 10명과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13절처럼 사자가 있다며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말은 10명의 정탐꾼의 보고와 같은 말입니다. 거기는 장대같은 거인족이 있고 우리는 메뚜기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약속의 성취를 신뢰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한마디로 불신앙입니다. 15절의 말씀대로 손을 그릇에 넣고 입으로 올리기를 싫어한다는 것도 가서 취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애굽을 나와 기적을 경험하며 광야를 지나 지금 가나안에 들어와 있는데 취하라는 말씀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신자들의 윤리 도덕적인 면들, 마땅히 해야 할 책임, 사명이 이렇게 불신앙으로 드러날 때 미련한 자가 되며 게으른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말씀을 신뢰하는 자, 약속을 좇는 자, 십자가의 구속을 깨달은 자,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인지를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웅이 아닌 연약함을 깨닫고 늘 십자가 앞에 엎드리는 자로 살아가시는 삶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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