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읽기]
1 <아굴의 잠언> a)이것은 야게의 아들 아굴이 말한 잠언이다. b)이 사람이 이디엘에게 말하고, 또 이디엘과 우갈에게 말하였다. (a. 또는 이것은 마싸 사람 야게의 아들 아론이 한 말이다. 마싸를 잠언,경고로 이해하지 않고 지명으로 이해한 것임. b. 또는 그가 말하였다. 하나님, 저는 피곤합니다. 하나님, 저는 피곤합니다. 제가 어떻게 다시 힘을 되찾을 수 있습니까 ?. 히브리어 자음 본문을 어떻게 끊어 읽느냐에 따라 번역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음)
2 참으로 나는, 사람이기보다는 우둔한 짐승이며, 나에게는 사람의 총명이 없다.
3 나는 지혜를 배우지도 못하였고, 지극히 거룩하신 분을 아는 지식도 깨우치지 못하였다.
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사람이 누구며, 바람을 자기 손에 움켜 쥐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 물을 그 옷자락으로 싸고 있는 사람이 누구며 땅의 모든 경계선을 그은 사람이 누구인가? 그 사람의 이름은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은 무엇인지, 정말 네가 아느냐?
5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순결하며, 그분은 그를 의지하는 사람의 방패가 되신다.
6 그 말씀에 아무것도 더하지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그분이 너를 책망하시고, 너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7 <헌신의 잠언> 주님께 두 가지 간청을 드리니,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8 허위와 거짓말을 저에게서 멀리하여 주시고,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오직 저에게 필요한 양식만을 주십시오.
9 제가 배가 불러서, 주님을 부인하면서 "주가 누구냐" 고 말하지 않게 하시고, 제가 가난해서, 도둑질을 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거나, 하지 않도록 하여 주십시오.
10 주인에게 그 종을 비방하는 말을 하지 말아라. 그 종이 너를 저주하고 너에게 죄가 돌아갈까 두렵다.
11 아버지를 저주하며 어머니를 축복하지 않는 무리가 있다.
12 더러운 것을 씻지도 않고 깨끗한 체하는 무리가 있다.
13 눈이 심히 높아서, 눈꺼풀을 치켜 올리고 남을 깔보는 무리가 있다.
14 이빨이 긴 칼과 같고 턱이 큰 칼과 같아서, 가난한 사람을 하나도 땅에 남기지 않고 삼키며 궁핍한 사람을 삼켜 씨를 말리는 무리도 있다.
15 거머리에게는 "달라, 달라"하며 보채는 딸이 둘이 있다. 전혀 배부른 줄 모르는 것이 셋,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 넷이 있으니,
16 곧 스올과 아기 못 낳는 태와 물로 갈증을 없앨 수 없는 땅과 만족하다고 말할 줄 모르는 불이다.
17 아버지를 조롱하며 어머니를 멸시하여, 순종하지 않는 사람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새끼 독수리에게 먹힐 것이다.
18 기이한 일이 셋,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넷이 있으니,
19 곧 독수리가 하늘을 날아간 자취와, 뱀이 바위 위로 지나간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하였던 자취이다.
20 간음한 여자의 자취도 그러하니, 먹고도 안 먹었다고 입을 씻듯이 "나는 아무런 악행도 한 일이 없다" 한다.
21 세상을 뒤흔들 만한 일이 셋,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일이 넷이 있으니,
22 곧 종이 임금이 되는 것과, 어리석은 자가 배불리 먹는 것과,
23 꺼림을 받는 여자가 시집을 가는 것과, 여종이 그 안주인의 자리를 이어받는 것이다.
24 땅에서 아주 작으면서도 가장 지혜로운 것이 넷이 있으니,
25 곧 힘이 없는 종류이지만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하는 개미와,
26 약한 종류이지만 바위 틈에 자기 집을 짓는 오소리와,
27 임금은 없으나 떼를 지어 함께 나아가는 메뚜기와,
28 사람의 손에 잡힐 것 같은데도 왕궁을 드나드는 도마뱀이다.
29 늠름하게 걸어 다니는 것이 셋, 위풍당당하게 걸어 다니는 것이 넷 있으니,
30 곧 짐승 가운데서 가장 강하여,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사자와,
31 자랑스럽게 걷는 사냥개와, 숫염소와, 아무도 맞설 수 없는 임금이다.
32 네가 어리석어서 우쭐댔거나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너의 손으로 입을 막고 반성하여 보아라.
33 우유를 저으면 굳은 우유가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오듯, 화를 돋우면 분쟁이 일어난다.
[말씀묵상]
본문은 아굴의 잠언으로 되어 있습니다. 2, 3절을 보면 이 아굴은 인간에게 전혀 하나님을 알만한 총명, 지혜, 지식이 없는 짐승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누가 4절의 내용에 대해 알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것에 대해 알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음을 보여주는 질문입니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간격을 깨닫게 하며 인간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보도록 합니다.
아굴은 자신을 괴롭혔던 이 한계를 하나님의 진정한 역사와 섭리와 능력을 고백함으로 뛰어 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괴로움, 자신의 본질적 모습, 그리고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을 확인하면서 오로지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순종해야 할 존재로 결론짓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전혀 없는 짐승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의 하시는 일을 가늠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물을 옷으로 싸 모으시는 분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억울함과 괴로움이 그의 장중에서 어떤 상황으로 펼쳐지고 있는지 누구도 가늠할 자가 없습니다. 그의 말씀만이 존재하며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면서 그는 두 가지 청구합니다.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게 해달라는 것과 경제적인 상태가 필요한 양식 만큼만으로 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죽기 전에 허락해 달라는 말은 죽을 때까지 이것으로 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해하든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주권에 이끌려 살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자신의 존재가 어떠한지를 깨달았기에 이것만으로도 놀라운 은혜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15절 이하 서너 가지에 대한 것들의 내용은 무엇을 의도하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저자의 관심에 따라 구분한 것 같습니다. 물론 욕심 내지 말라, 불의를 행지 말고 올바른 길로 가라, 비록 약하고 부족하여도 지혜롭게 행하라 등의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행동하고 바르게 살아야 할 것은 당연한 본분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좀 더 큰 이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바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연계나 인간계에 있어서 그 존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계획하신 바대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누가 바꾸거나 스스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함을 말하는 것들도 그들의 태생이 그렇습니다. 기이하여 깨닫기 어려운 것들도, 작지만 지혜로운 것들도 그들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과 뜻을 드러낼 뿐입니다. 이들은 그대로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순리에 역행하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은 욕심과 교만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고 자신의 옳음이나 자랑으로 드러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17절처럼 심판으로 나타나게 되고 21절-23절의 내용처럼 교만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결국 32절의 명령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입을 막아야 합니다.
신자들은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자리와 상황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죄인의 속성은 하나님을 벗어나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내려는 것입니다. 꿈과 비전이라는 미명 하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꿈과 비전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어떠하든지 기뻐하며 만족하며 감사하며 높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피조물인 인간의 자리이며 본분입니다. 나의 기쁨과 만족이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쁨과 만족이 기준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나의 모습을 돌아보시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모습에 있는지 늘 확인하시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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