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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7장

작성자 사진: 주언약교회주언약교회


[말씀읽기]


1 a)아이들아, 내 말을 지키고, 내 명령을 너의 마음 속 깊이 간직하여라. (a. 1:8절의 주를 볼 것)

2 내 명령을 지켜서 잘 살고 내 교훈을 너의 눈동자를 보호하듯 지켜라.

3 그것을 너의 손가락에 매고, 네 마음 속 깊이 새겨 두어라.

4 지혜에게는 "너는 내 누이"라고 말하고, 명철에게는 너는 내 친구"라고 불러라.

5 그러면 그것이 너를 음행하는 여자로부터 지켜 주고, 달콤한 말로 호리는 외간 여자로부터 지켜 줄 것이다.


6 <부도덕한 여인> 나는, 나의 집 창가에서 창살문으로 내다보다가,

7 b)어수룩한 젊은이들 가운데, 지혜 없는 젊은이가 있는 것을 보았다. (b. 1:4절의 주를 볼 것)

8 그는 거리를 지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가서, 그 여자의 집으로 가는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9 저녁이 되어 떵거미가 지고, 밤이 되어 어두워진 때였다.

10 한 여자가 창녀 옷을 입고서, 교활한 마음을 품고 그에게 다가갔다.


11 그 여자는 마구 떠들며, 예의 없이 굴며, 발이 집에 머물러 있지를 못한다.

12 때로는 이 거리에서, 때로는 저 광장에서, 길목마다 몸을 숨기고 있다가,

13 그 젊은이를 와락 붙잡고 입을 맞추며, 뻔뻔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말하였다.

14 "오늘 나는 c)화목제를 드려서 당신을 애타게 찾다가, 이렇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c. 또는 친교제)

15 그래서 나는 당신을 맞으러 나왔고, 당신을 애타게 찾다가 이렇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16 내 침대에는 요도 깔아 놓았고, 이집트에서 만든 무늬 있는 이불도 펴놓았습니다.

17 누울 자리에는 몰약과 침향과 육계향을 뿌려 두었습니다.

18 자, 어서 가서 아침이 되도록 한껏 사랑에 빠지고, 서로 사랑하면서 즐깁시다.

19 남편도 먼 여행길을 떠나서 집에 없습니다.

20 돈주머니를 가지고 갔으니, 보름달이 뜰 때라야 집에 돌아올 겁니다."


21 이렇게 여러 가지 달콤한 말로 유혹하고 호리는 말로 꾀니,

22 그는 선뜻 이 여자의 뒤를 따라 나섰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와도 같고, 올가미에 채이러 가는 d)어리석은 사람과도 같다. (d. 70인역과 시리아어역에는 사슴)

23 마치 자기 목숨을 잃는 줄도 모르고 그물 속으로 쏜살같이 날아드는 새와 같으니, 마침내 화살이 그의 간을 꿰뚫을 것이다.

24 a)아이들아, 이제 너희는 나의 말을 잘 들어라. 내가 하는 말을 명심하여라. (a, 4:1절의 주를 볼 것)

25 네 마음이 그 여자가 가는 길로 기울지 않게 하고, 그 여자가 가는 길로 빠져 들지 않게 하여라.


26 그 여자에게 상처를 입고 쓰러진 사람이 많고, 그 여자 때문에 죽은 남자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27 그런 여자의 집은 스올로 트인 길이며, 죽음의 안방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말씀묵상]


계속해서 아버지의 간절한 호소가 들립니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단순한 어른으로서, 경험자로서의 교훈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모습, 세상의 가치와 기준이 가져오는 파괴적인 종말, 세상의 신자들을 향한 유혹 내지 공격 등 영적이며 신앙적인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 말, 내 계명, 내 법, 지혜, 명철에 대해 지키고 간직하고 네 눈동자처럼 지키고 손가락에 매며 마음판에 새기고 내 누이와 내 친족처럼 하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자신과 같이 가깝게 있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소중하게 마음에 깊게 간직하며 생각과 삶에서 떠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유혹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흔하고 강력한 유혹인 음녀의 호리는 말과 행동에 대한 예가 나옵니다. 아버지의 직접적인 설명과 자세한 유혹 과정을 통하여 아들이 얼마나 미련하고 가엽고 부끄럽게 미혹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성적인 유혹만이 아닌 세상의 가치에 대한 치명적인 매력과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 그리고 파멸을 잘 설명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유혹의 환경에 둘러 싸여 있습니다. 애써 찾지 않아도 눈만 조금 돌리면 바로 옆에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음녀의 모습을 보면 아주 치밀한 계획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봅니다. 14절의 내용은 놀랍습니다. 화목제를 드려서 서원한 것을 갚았다고 속삭입니다.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 우선 화목제사를 드리고 나서 당신을 만났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소원을 들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또 다른 해석은 음녀가 자신의 유혹에 대해 정당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당신과의 만남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할 만큼 했고 그러니 나의 하고자 하는 일에 누구도 방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어떤 해석이든지 이 음녀가 자신의 만족과 목적을 위해 제사를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말하고 있는 가치이며 기준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흐릿한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정당성을 가지고 행동의 근거를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생각하며 죄의 길로 가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또한 안다고 하더라도 예배를 드렸고 헌금하고 봉사하였기에 이정도는 괜찮다고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음녀가, 세상이 유혹하는 내용입니다. 이제 이 정도는 즐길 자격이 있다는 속삭입니다.


이러한 생각과 모습도 문제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고백을 세상적 삶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모습에 대해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소 같고, 쇠사슬에 매여 벌을 받으러 가는 미련한 자 같고, 그물로 들어가 생명을 잃는 새와 같다고 설명합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그럴 듯한 모습이라 하더라도 신자의 본질을 잊어버리는 삶이라면 죽은 삶과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혜를 기억하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가장 큰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의 백성으로서 본분을 깨닫고 그의 주권적인 인도하심에 붙들린 삶을 사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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