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7장

2019년 5월 21일

전도서 7장



*말씀읽기

1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5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6 우매한 자들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7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11 지혜는 유산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다

12 지혜의 그늘 아래에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 지혜에 관한 지식이 더 유익함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

13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15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17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18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19 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에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21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22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

23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 하였도다

24 이미 있는 것은 멀고 또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25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연구하여 악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얼마나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26 마음은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은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더 쓰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내었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그 여인을 피하려니와 죄인은 그 여인에게 붙잡히리로다

27 전도자가 이르되 보라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연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28 내 마음이 계속 찾아 보았으나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천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을 내가 찾았으나 이 모든 사람들 중에서 여자는 한 사람도 찾지 못하였느니라

29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말씀묵상

신자들이 성경을 보면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은 그 내용이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 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인데 세상 속에서 사는 삶이기에 세상의 기준도 함께 가지고 평가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진리들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마치 역설적인 내용인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니까 역설적 진리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의 기준으로 보면 역설이 아니라 정설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그러한 역설적인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낫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는 말들입니다. 물론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세상의 가치와 기준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의 기준,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 늘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산상수훈의 내용도 역설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 본다면 정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심령이 가난하며 온유하며 핍박을 받는 자들입니다. 전혀 역설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 내용들은 잘 이해가 되는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뭔가를 해내고 만들어 내어 자기 만족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가치는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주셔야 합니다. 세상의 것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며 얻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결국 전도자는 이 세상 가치의 유한함과 인간의 만족의 허무함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아픔과 슬픔을 싫어합니다. 기쁨과 즐거움만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내용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기쁨은 고난을 통해서임을 보여줍니다. 한계를 경험함으로, 죄를 경험함으로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결국 인간의 한계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이 무엇인지, 그곳에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보여주는 현장입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삶의 기준과 판단의 근거는 완전히 뒤바뀌게 된 것입니다. 참 기쁨과 가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이신 것입니다.

죽는 날, 초상집, 슬픔, 근심, 책망 등을 통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깨닫게 하는 상황들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13절에서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역사를 보라고 합니다. 누가 자기 편한 대로 만들겠느냐는 질문입니다. 14절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를 의지하도록 하는 섭리임을 고백합니다.

무엇으로 기뻐하며 무엇을 보고 달리고 있습니까? 전도자는 늘 찾고 연구하였다는 말을 합니다. 엄청난 삶을 살면서 확인하고자 했던 것들이 지혜였음을 보여 줍니다. 물론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그가 찾으려고 했던 궁극적인 해답이 지혜였음을 말합니다. 주님이 주인이 된 삶이 지혜로운 삶이며 하늘의 가치를 좇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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