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0장
창세기 10장
제목 : 언약을 이루어 가심
[말씀읽기]
10:1 <노아의 자손 (대상 1:5-23)> 다음은 노아의 아들들의 족보이다. 노아의 아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다. 홍수가 난 뒤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다.
10:2 야벳의 자손은, 고벨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이다.
10:3 고멜의 자손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이다.
10:4 야완의 자손은, 엘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다.
10:5 이들에게서 바닷가 백성들이 지역과 언어와 종족과 부족을 따라서 저마다 갈라져 나갔다.
10:6 함의 자손은, 구스와 이집트와 리비아와 가나안이다.
10:7 구스의 자손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이다. 라아마의 자손은 스바와 드단이다.
10:8 구스는 또 니므롯을 낳았다. 니므롯은 세상에 처음 나타난 장사이다.
10:9 그는 주께서 보시기에도, 힘이 센 사냥꾼이었다. 그래서 "주께서 보시기에도 힘이 센 니므롯과 같은 사냥꾼"이라는 속담까지 생겼다.
10:10 그가 다스린 나라의 처음 중심지는 시날 지방 안에 있는 바벨론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이다.
10:11 그는 그 지방을 떠나 앗시리아로 가서,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를 세우고,
10:12 니느웨와 갈라 사이에는 레센을 세웠는데 그것은 아주 큰 성이다.
10:13 이집트는 리디아와 아남과 르합과 납두와
10:14 바드루스와 가슬루와 크레타를 낳았다. 블레셋이 바로 크레타에서 나왔다.
10:15 가나안은 맏 아들 시돈을 낳고, 그 아래로, 헷과
10:16 여부스와 아모리와 기르가스와
10:17 히위와 알가와 신과
10:18 아르왓과 스말과 하맛을 낳았다. 그 뒤에, 가나안 족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10:19 가나안의 경계는 시돈에서 그랄을 지나서, 멀리 가사에까지 이르렀고, 거기에서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서, 라사에까지 이르렀다.
10:20 이 사람들이 종족과 언어와 지역과 부족을 따라서 갈라져 나간 함의 자손이다.
10:21 야벳의 맏형인 셈에게서도 아들 딸이 태여났다. 셈은 에벨의 모든 자손의 조상이다.
10:22 셈의 자손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다.
10:23 아람의 자손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이다.
10:24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다.
10: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았는데 한 아들의 이름은 그의 시대에 세상이 나뉘었다고 해서 a)벨렉이라고 하였다. 벨렉의 아우 이름은 욕단이다. (a. 나뉘다)
10:26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웹과 예라와
10:27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10:28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10:29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다. 이 사람들이 모두 욕단의 자손이다.
10:30 그들이 사는 곳은 메사에서 스발에 이르는 동쪽 산간지방이다.
10:31 이 사람들이 종족과 언어와 지역과 부족을 따라서 갈라져 나간 셈의 자손이다.
10:32 이들이 각 종족의 족보를 따라 갈라져 나간 노아의 자손 종족이다. 홍수가 난 뒤에, 이 사람들에게서 여러 민족이 나와서, 세상으로 퍼져 나갔다.
[말씀묵상]
10장은 노아 홍수 후에 새로운 인류가 시작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인류의 번성이 그리 좋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노아의 세 아들에 의해 퍼져 나간 것인 것 그 중간 중간에 이들의 모습이 어떤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건을 보면 그렇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 함의 후손으로 나오는 니므롯입니다.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고 합니다. 용사라는 말은 이미 앞서 나왔던 자들입니다. 6장에서 네피림들을 설명할 때 나온 것입니다. 타락의 자손들에 대한 묘사를 보여 줍니다. 영웅주의가 또다시 시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죄악이 바로 하나님과 같이 되며 하나님없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9절의 표현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로 인간들이 이미 자리잡아 갔음을 보여줍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모습에 대해 어떠한 생각이 드십니까? 정말 말릴 수 없는 인간들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저히 희망이 없는 족속들임을 보여줍니다. 다시 새롭게 해도, 은혜가 이들에게 주어져도 말입니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합니다. 홍수부터 다시 살펴봅니다.
죄악이 관영하여 홍수라는 심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방주가 준비되어 그와 그의 가족들만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노아홍수 자체가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가 함께 제시되고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심판의 대상이지만 은혜로 인하여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홍수 후에 정결한 짐승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부정한 것이 생명을 보존하게 되는 것으로 확인시켜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나도록 하십니다. 무지개 언약입니다. 아무리 죄악이 관영해도 물로 심판하시지 않으시겠다는 증표로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보시고 지키시고자 하신 약속입니다. 인간과 생물들과 함께 하신 약속이지만 약속의 주체와 성취자는 하나님이신 약속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모습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떠한 약속도 감당해 내지 못합니다. 멸망당해야 하는 자들이지만 무지개로 인하여 이들은 이제 멸망당하지 않고 은혜가 베풀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 대가를 감당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의 죽으심입니다. 그게 무지개를 통하여 보여주신 의미입니다. 무지개는 원래 활이라는 단어입니다. 그 활이 바로 땅에서 위로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생명을 두시고 하신 약속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범죄한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담당하심으로 그 죄과를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에 대한 예가 노아의 술취한 사건으로 드러난 내용입니다. 노아의 술취한 모습은 아무리 은혜가 임한 자라 하더라도 그의 능력과 힘으로 그 은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전히 은혜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할 뿐입니다.
그래서 작은 아들인 함이 떠버리며 형제들에게 아버지의 허물을 고한 것은 스스로 은혜가 없는 자임을 보여 준 것입니다. 반면에 셈과 야벳은 그러한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줌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이것은 효도나 서로 허물을 덮어주라는 말을 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입은 자들임을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격도 없고 주정뱅이로 사는 자들이지만 이렇게 덮임을 받는 은혜가 아니면 안 되는 자임을 보여줍니다. 함의 모습은 세상에서 자기의와 능력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의 예로 나오는 것입니다. 남을 깎아 내려야 하고 못남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이러한 허물에 대해 덮임을, 가리움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10장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이러한 가리움의 은혜에 대해 부정하고 거부하는 모습을 진행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앞에 말한 니므롯이 그러한 자들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이 죽어 마땅한 자들이지만 멸망당하지 않고 각 지역으로 종족을 퍼트리며 흩어져 나갔다는 사실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며, 이들에게 있어야 할 저주를 스스로 감당하시며 오히려 복을 주셨음을 증명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모든 죄악과 저주를 담당시키심으로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 은혜로 살고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나의 삶에 하나님의 약속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음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돌아보아야 했던 내용입니다. 불평불만 속에 진행하고 있지만 가나안의 약속은 성취되고 있던 것처럼 지금의 삶이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성취되고 있음을 의지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