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1장

창세기 21장



제목: 아비멜렉에게 은혜를 베푼 아브라함


[말씀읽기]

20:1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아브라함은 마므레에서 네겝 지역으로 옮겨가서, 가데스와 술 사이에서 살았다. 아브라함은 그랄에 잠시 머문 적이 있는데,

20:2 거기에서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를 사람들에게 자기 누이라 소개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다.

20:3 그런데 그 날 밤에 하나님이 꿈에 아비멜렉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네가 이 여자를 데려왔으니, 너는 곧 죽는다. 이 여자는 남편이 있는 여자다."

20:4 아비멜렉은 아직 그 여인에게 가까이하지 않았으므로 주께 이렇게 아뢰었다. "주님, 주께서 의로운 한 민족을 멸하시렵니까 ?

20:5 아브라함이 저에게 이 여인은 자기 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 또 이 여인은 아브라함을 오라버니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 저는 깨끗한 마음으로 떳떳하게 이 일을 하였습니다."


20: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나는 네가 깨끗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잘 안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지켜서, 네가 나에게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 여인을 건드리지 못하게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0:7 이제 그 여인을 남편에게로 돌려보내어라. 그의 남편은 예언자이므로 너에게 탈이 나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할 것이고, 너는 살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너에게 속한 사람이 틀림없이 다 죽은 줄 알아라."

20:8 다음날 아침에 아비멜렉은 일찍 일어나서, 신하들을 다 불렀다. 그들은 왕에게 일어난 일을 다 듣고서, 매우 두려워 하였다.

20:9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불러들여서, 호통을 쳤다. "당신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소 ? 내가 당신에게 저질렀기에 나와 내 나라가 이 크나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말이오 ? 당신은 나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을 한거요."

20:10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도대체 이런 일을 저지른단 말이오 ?"


20:11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이 곳에서는 사람들이 아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나의 아내를 빼았으려고 할 때에는, 사람들이 나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20:12 그러나 사실을 말씀드리면, 나의 아내가 나의 누이라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아내는 나와는 어머니는 다르지만 아버지는 같은 이복누이이기 때문입니다.

20:13 하나님이 나를, 아버지 집에서 떠나서 여러 나라로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부탁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느 곳으로 가든지, 사람들이 나를 두고서 묻거든 그대는 나를 오라버니라고 하시오. 이것이 그대가 나에게 베풀 수 있는 은혜요 하고 말한 바 있습니다."

20:14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양 떼와 소 떼와 남종과 여종을 선물로 주고, 아내 사라도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냈다.

20:15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나의 땅이 그대 앞에 있으니 그대가 원하는 곳이 어디이든지, 가서 거기에서 자리를 잡으시오."


20:16 그리고 사라에게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그대의 오라버니에게 은 천 세겔을 주었소. 이것은 그대와 함께 있는 여러 사람에게서 그대가 받은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는 나의 성의의 표시요, 그대가 결백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될 것이오."

20: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그의 여종들이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태를 열어 주셨다.

20:18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데려간 일로, 주께서는 전에 아비멜렉 집안의 모든 여자의 태를 닫으셨었다.


[말씀묵상]

20장에서 일어난 아브라함의 거짓말 사건은 그야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처참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앞서 기근으로 애굽에 내려가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바로 왕에게 아내를 빼앗길 뻔했던 일이 또다시 반복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반복은 단

순한 거짓말의 반복이 아니라 애굽 사건 이후에 수많은 사건들을 통하여 자손에 대한 확신과 근거들을 가지고 있었던 상황이었다는 데에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15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의로 여기셨고 그리고 나서 언약체결을 했습니다. 비록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할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언약을 이루어내실 것임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18장에서는 아내 사라에게까지 약속을 하신 상황입니

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과 확증을 소유한 자가 또 다시 아내를 팔아버리는 행동을 했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하나님에 대한 약속과 말씀을 무시하거나 믿지 않는 행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말입니다. 어떻

게 생각하십니까? 참으로 어이가 없는 모습이 아닙니까? 이러한 아브라함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그래도 하나님께서 구해주시고 약속을 이끌어 가시니까 뭐 어떤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요? 결과적으로야 그렇게 하셨으니 생각은 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삶을 본으로 삼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행동과 하나님의 일하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어떤 인물도 영웅으로 만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선택한 자, 내 일을 이루어야 할 자이기에 그를 최고의 인물로, 능력자로 만들어 가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지금 일어난 아브라함의 일을

보며 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는 식으로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자입니다. 누구도말입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 뜻은 인간이 맞춰서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아브라함은 정말 모자라고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모습을 계속 드러내고 있

는 것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아브라함의 노력과 능력과 잘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와 은혜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계속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비멜렉과 하나님과의 대화를 보면 그 깊은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사라를 취한 아비멜렉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그는 남편이 있는 자라고 하시면서 네가 죽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비멜렉은 정당한 이유를 댑니다. 누이라고 해서 나는 온전

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막아 너로 범죄하지 않게 한 것이다, 그를 돌려 보내라, 남편은 선지자로서 너를 위하여 기도하여 살게 될 것이다, 만일 돌려 보내지 않으면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비멜렉은 전혀 잘못이 없습니다. 정당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브라함에게 죄인처럼, 아랫사람처럼,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복을 받아야 할 자로 서게 됩니다. 반면에 잘못을 저지르고 속였던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을 살려내는 중보자로 서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을 통하여 무엇이 확실해집니까? 세상에서 정당하고 바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죽을 뻔한 자로 있게 되고 잘못하고 죽어 마땅한 자가 오히려 중보자로 세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둘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자,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자,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입니다. 물론 이 사실을 아브라함이 제대로 인식했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구별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끌려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판단과 힘으로 만들어 가는 자가 아닙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모습은 바로 신자들의 모습임을 깨닫게 됩니다. 은혜로 만들어진 자들이며 은혜로 사는 자들입니다. 못나고 잘못하는 자들이지

만 하나님만이 내 편이 되셔서 책임지시며 보호해 주십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빛과 소금으로 존재합니다. 복의 근원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이 믿음을 가진 자로 오늘도 현장에서 신자의 모습을 드러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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